한수진과 ECO, '사계'로 다시 만나는 15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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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과 ECO, '사계'로 다시 만나는 15년의 시간

문화저널코리아 2026-09-21 19:16:01 신고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영국의 명문 실내악단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가 ‘사계’를 매개로 다시 만난다. 영국에서 음악적 뿌리를 내린 한수진과 60년 넘게 영국 실내악 전통을 이어온 ECO가 함께한 이번 프로젝트는 음반과 공연을 하나의 음악적 여정으로 연결한다.

 

한수진과 ECO는 지난해 9월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비발디의 ‘사계’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녹음했다.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가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피아졸라의 작품과 비발디의 원곡을 한 음반에 담아,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사계’를 한 무대에 놓았다.

 

앨범 <사계(The Seasons)>는 오는 9월 25일 오키드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글로벌 발매된다. 한수진의 두 번째 음반이자 첫 협연 음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난해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선보인 데뷔 앨범 이후, 솔리스트 한수진의 음악적 시야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 속에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자연’이라는 한수진의 개인적 기억이 자리한다. 부산과 영국 맨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자연 속에서 성장한 경험을 비발디의 ‘사계’와 연결한다. 동시에 10대 시절 처음 만난 피아졸라의 음악에서 강렬한 리듬과 에너지를 발견했고, 이후 그의 음악을 깊이 공부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두 작품은 모두 ‘사계’를 말하지만 음악적 풍경은 전혀 다르다. 비발디가 새소리와 폭풍, 더위와 추위 등 자연의 구체적인 표정을 바로크 협주곡의 언어로 그려냈다면,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시적 감각과 탱고의 리듬을 통해 계절을 재구성한다. 한수진에게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감각을 각기 다른 언어로 바라본 두 개의 시선인 셈이다.

 

녹음에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라는 공간적 상징성도 더해졌다. 수많은 명반이 탄생한 이곳에서 한수진과 ECO는 두 작품의 색채와 리듬, 앙상블의 밀도를 담아냈다. 음반 프로듀서 사이먼 킬른은 녹음 과정을 긴 마라톤에 비유하면서도 한수진이 매 순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ECO 악장 오퍼 폴크 역시 한수진의 풍부하고 감각적인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을 언급하며 함께 작업한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음반의 탄생은 오는 10월 한국 무대로 이어진다. ECO가 한국을 찾는 것은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한수진과 ECO는 10월 24일 통영국제음악당을 시작으로 25일 아트센터인천, 28일 대구콘서트홀,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전국 투어를 펼친다.

 

공연은 먼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으로 문을 연다. 이어 로시니의 ‘현악 소나타 제1번 G장조’, 벤저민 브리튼의 ‘심플 심포니’를 거쳐 2부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된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는 비발디 ‘사계’에서는 한수진이 솔리스트이자 음악적 리더로 ECO와 호흡을 맞춘다.

프로그램의 구성 역시 ECO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모차르트와 로시니, 브리튼으로 이어지는 현악 중심 레퍼토리는 실내악적 긴밀함과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앙상블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리고 비발디 ‘사계’에서 한수진의 독주 바이올린이 전면에 등장하며 앙상블과 솔리스트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무대를 완성한다.

 

한수진은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영국으로 건너갔다. 여덟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와 퍼셀 음악학교, 옥스퍼드대학교, 런던 왕립음악원,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국제 솔로이스트 과정 등을 거치며 음악적 기반을 쌓았다.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2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연주해왔다. 안드라스 시프, 기돈 크레머, 유리 바슈메트 등 세계적 음악가들과 실내악 무대를 함께했으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도쿄 필하모닉, 서울시립교향악단 등과도 협연했다. 202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젊은 예술가상 클래식 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특히 한수진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여주는 정체성은 단순히 ‘한국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틀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그의 음악적 배경은 이번 ECO와의 협업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영국 음악 전통을 공유하는 연주자와 악단이 비발디와 피아졸라라는 서로 다른 음악적 세계를 함께 탐험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한수진의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ECO 역시 영국 음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1948년 골즈브러 오케스트라를 모태로 출발해 1960년 현재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한 ECO는 벤저민 브리튼이 초대 후원자로 참여한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1977년부터는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 3세 국왕이 후원자로 함께하고 있다.

ECO는 다니엘 바렌보임,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이차크 펄먼, 미쓰코 우치다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협업하며 국제무대에서 활동해왔다. 로열 페스티벌 홀과 퀸 엘리자베스 홀, 카도건 홀 등 런던의 주요 공연장은 물론 유럽과 미주, 아시아 무대에서도 정교한 앙상블을 선보여왔다.

 

영화음악 분야에서도 ECO의 이름은 익숙하다. 영화 ‘오만과 편견’과 ‘어톤먼트’ 등의 사운드트랙 녹음에 참여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넘어 대중문화 속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왔다. 공연과 교육을 연결하는 ‘Close Encounters’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 학교를 대상으로 음악교육과 사회참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한국 공연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사계’라는 너무나 익숙한 작품을 오늘의 연주자는 어떻게 다시 들려줄 것인가.

 

한수진과 ECO가 택한 답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바로크 시대 베네치아의 비발디에서 20세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아졸라로, 그리고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녹음에서 2026년 한국의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여정이다.

한편 한수진과 ECO의 ‘사계’는 음반으로 먼저 기록되고, 무대에서 다시 살아난다. 15년 만에 한국을 찾는 ECO와 영국의 음악적 정체성을 간직한 한수진이 만들어낼 이번 만남이 익숙한 ‘사계’에 어떤 새로운 표정을 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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