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인공지능(AI)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산으로 방송과 통신, 콘텐츠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부처 간 ‘정책 칸막이’ 허물기에 나섰다.
과거 방송과 통신은 비교적 명확한 정책 영역으로 구분됐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은 방송 정책으로, 이동통신과 인터넷망은 통신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기반의 OTT가 등장하고, 최근 AI까지 전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콘텐츠는 방송망뿐 아니라 이동통신망과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AI는 콘텐츠 제작·추천부터 광고와 검색, 통신 서비스까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산업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는데 정책은 기존 방송·통신 구분에 머물고 있어 규제 공백이나 중복 규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 왔다.
21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과기정통부와 방미통위는 지난 17일 고위급 정책협의회 후속 조치로 제1차 실무협의회를 열고 AI와 미디어·OTT, 디지털 규제·이용자 보호 등 3개 분야의 협력 상황을 점검했다. 양 부처는 지난 6월 10일 차관급 정책협의체를 출범시키며 부처 간 공조에 시동을 걸었다. 이번 실무협의회는 당시 합의한 협력 과제를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한 후속 단계다.
대표적인 협력 분야가 AI다. 방미통위가 보유한 방송영상 데이터가 과기정통부의 AI 정책 인프라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방미통위는 지난 8월 방송영상 AI 학습용 데이터 117만여건을 과기정통부가 운영하는 ‘AI허브’에 제공했다. 방송 분야에서 구축한 데이터를 국가 AI 생태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부처 간 장벽을 낮춘 것이다.
제도 측면에서도 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방미통위는 과기정통부가 운영하는 ‘AI기본법 제도개선 연구반’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 AI 서비스가 미디어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AI 정책과 미디어 정책을 별도로 설계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영상과 음악, 뉴스 등 콘텐츠를 만들고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AI 정책은 곧 미디어 정책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OTT 역시 양 부처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다. 과거에는 방송사업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방송망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OTT는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전통적인 방송망이 아닌 인터넷망을 이용한다. 콘텐츠 정책과 플랫폼 정책, 네트워크 정책, 이용자 보호가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특히 글로벌 OTT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내 콘텐츠 산업 육성과 플랫폼 경쟁력, 네트워크 투자, 이용자 보호를 개별 정책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6월 과기정통부가 개최한 ‘코리아 국제 스트리밍 페스티벌’에 방미통위가 참여한 데 이어 오는 11월 방미통위가 개최하는 국제 OTT 포럼에는 과기정통부가 참여할 예정이다.
양 부처 협력의 첫 번째 시험대는 한국방송미디어통신진흥원 설립이 될 전망이다. 신설 진흥원은 방미통위 소관 시청자미디어위원회와 한국방송진흥공사를 통·폐합해 출범하는 기관이다.
관련 법안이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설립 준비도 본격화하고 있다. 양 부처는 방미통위가 구성하는 진흥원 설립위원회에 과기정통부 추천 위원 2명을 포함하기로 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능 재편이다.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사업과 보유 재산 가운데 어느 범위까지 신설 진흥원으로 넘길지를 놓고 추가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차세대 지상파 방송도 두 기관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양 부처는 ‘차세대 지상파 방송 정책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방송망 구축과 주파수 정책 등을 공동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지상파 방송 정책은 방미통위와 밀접하지만 주파수와 네트워크 정책은 과기정통부 영역과 맞닿아 있다.
최근 잇따른 통신·플랫폼 침해사고 역시 부처 간 협업 필요성을 보여주는 분야다. 사이버 침해사고가 발생하면 기술적 원인 분석과 정보보호 대책뿐 아니라 가입자 피해와 이용자 보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에 양 부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신설되는 ‘침해사고 이용자 보호 업무 평가제도’의 설계와 운영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해당 제도는 2027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최우혁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실장은 “앞으로도 정책협의회와 실무협의회를 통해 AI, 미디어·OTT, 디지털 규제 등 주요 이슈에 대한 대응 방안을 함께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동주 방미통위 사무처장은 “지난 고위급 정책협의회 이후 양 부처 간 연속성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주요 현안은 물론 이용자 보호와 민원 대응 등 국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에서도 실무협력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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