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을 두드리는 의사
19세기 빅토리아시대 영국에는 별의별 발명품이 다 나왔다. 증기기관, 전신,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의 신경을 전기로 두드려서 병을 고친다는 기계까지. 이 기계를 만든 사람이 조셉 모티머 그랜빌(Joseph Mortimer Granville, 1833~1900)이다.
그랜빌은 잉글랜드 데번포트에서 태어나 1856년 의사 자격을 딴 뒤 브리스틀에서 개업했다가 나중에 런던으로 옮겨 활동했다. 젊어서는 언론에도 발을 담가 의학 잡지에 글을 쓰던 문필가이기도 했다. 그러다 1880년대 초, 그는 신경자극을 통해 근육통과 신경쇠약을 고칠 수 있다는 이론을 세우고 손에 들고 쓰는 전동 두드림 기계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퍼커서(percussor)", 속칭 "그랜빌의 망치".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도시생활이 급격히 팍팍해지면서 늘어난 각종 신경피로, 요즘 말로 하면 번 아웃 증상을 이 기계로 두드려 고치겠다는 발상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괴짜 발명가의 시대착오적 취미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계가 훗날 엉뚱한 방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여성에게는 쓰지 말라 했건만
19세기 서양의학계에는 "히스테리"라는 병명이 있었다. 여성이 불안하거나 예민하거나 심지어 그냥 화만 내도 붙이던 진단명이다. 이 개념은 멀리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경~기원전 370년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랜빌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신경학자 장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에 이르러서는 아예 정식 신경질환으로 취급받았다. 훗날 정신분석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도 젊은 시절 샤르코 밑에서 이 히스테리 연구를 보고 배웠다.
그랜빌 본인은 자신의 기계가 여성 히스테리 치료에 쓰이는 것에 극구 반대했다. 남성환자의 근육과 척추 신경에만 쓰라고 자신의 저서에 못을 박았을 정도다. 그런데 세상일이 늘 그렇듯, 발명가의 의도는 발명품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했다. 일부 의사들은 이 기계를 여성 골반 마사지 시술에 몰래 갖다 썼고, 이는 당시 유행하던 "히스테리 치료법", 의사가 손으로 여성 환자를 자극해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지금 들으면 황당한 시술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즉 그랜빌의 발명품은 결과적으로, 그가 그렇게 막으려 했던 바로 그 용도로 인기를 끌게 된 셈이다.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이야기가 21세기에 다시 화제가 된 건 기술의 역사, 즉 사람이 만든 도구나 기계, 발명품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하고 쓰였는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즉 미국의 기술사학자인 레이철 메인스(Rachel Maines, 1950~)의 1998년 저서 『오르가슴의 기술』 덕분이다. 메인스는 그랜빌의 발명품이 여성 오르가슴을 유도해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주장을 펼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이야기는 2011년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대중적으로 퍼졌다. 문제는 훗날 여러 연구자들이 메인스의 핵심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그랜빌이 여성용으로 이 기계를 발명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엄밀히 말하면 신화에 가깝다.
여기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흥미롭고 통쾌한 이야기일수록 검증 없이 퍼지기 쉽다는 것. 여성 억압의 역사를 고발한다는 좋은 취지의 서사조차, 사실관계가 허술하면 결국 신화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교훈
이 옛날 영국이야기가 오늘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첫째,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자체가 산업사회의 노동 강도를 병명으로 감춘 것이었듯, 오늘날 한국의 과로와 번 아웃 문제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랜빌이 두드림 기계로 고치려 했던 것은 사실 질병이 아니라 노동조건이었다.
둘째, "히스테리"라는 진단명이 여성의 정당한 감정과 목소리를 병리화하는 도구로 오랫동안 쓰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여성의 발언이나 분노를 "예민함"이나 "감정적"이라는 말로 깎아내리는 습관이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 뼈아픈 거울이 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사학자 레첼 메인스의 신화이야기다. 통쾌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일수록 검증하지 않고 퍼뜨리는 순간, 우리는 진실보다 서사를 택하는 셈이 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젠더갈등, 정치적 논쟁 어디를 봐도 근거보다 감정에 편승한 서사가 훨씬 빨리, 훨씬 멀리 퍼진다. 옳은 방향을 가리키는 이야기라 해도 사실관계가 무너지면 결국 반대편에게 공격의 빌미만 내주는 꼴이 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지만, 그 법정에 서기 전에 증거부터 제대로 챙겨야 한다. 그랜빌의 망치는 그 사실을 140년이 지난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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