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경제력과 직업, 학력처럼 사회적 조건으로 드러나는 기준이 있는가 하면 키와 체중, 외모처럼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기준도 있다. 오광욱의 네 번째 희곡집 '인간등급 C'는 바로 이 익숙한 평가의 방식을 무대 언어로 옮겨 놓는다.
'인간등급 C'에는 '스파르타의 불구 아이'와 '뚱뚱한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 두 편이 실렸다.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지만 두 작품은 인간을 인간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떤 조건을 붙여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희곡집의 제목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학교 성적처럼 인간에게도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무엇이 그 기준이 될까. 돈이 될 수도 있고 직업이나 학력이 될 수도 있다. 외모나 신체 조건 역시 누군가에게는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오광욱은 그 기준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누군가의 연봉을 듣고 관계의 거리를 정하거나, 직업을 알고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외모를 보고 어울릴 만한 상대인지 가늠하는 일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이뤄지는 판단까지 바라본다. 노골적인 차별이 아니더라도 타인을 나와 비교하는 순간 평가의 시선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작품 '스파르타의 불구 아이'는 이러한 문제를 고대 스파르타라는 사회로 가져간다. 작품이 바라보는 것은 개인의 신체 조건만이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어떤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고, 또 다른 인간은 그 기준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파르타라는 역사적 배경은 인간을 바라보는 사회의 기준을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인간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존재 가치까지 판단할 수 있는가. 작품은 이 질문을 통해 사회가 만든 기준이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작품은 공연으로 먼저 관객을 만났다. 공유페스티벌에서 우수연기상을 받은 작품이며, 오광욱이 직접 극작과 연출을 맡아 무대화했다. 공연으로 구현됐던 이야기가 이번에는 희곡집을 통해 독자의 독서 경험으로 옮겨왔다. 배우의 연기와 연출을 거쳐 전달됐던 질문을 텍스트 자체로 다시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두 번째 작품 '뚱뚱한 로미오를 사랑한 줄리엣'은 시간과 공간을 훨씬 가까운 곳으로 옮겨온다. 제목부터 신체 조건을 드러내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전면에 놓는다. 사랑이라는 관계 안에서도 외모에 대한 평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희곡의 소재로 삼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품이 외모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는 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기준에 맞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과정 자체를 들여다본다. '뚱뚱하다'는 말이 한 사람을 설명하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하나에 머물지 않고, 때로는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말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데 질문을 던진다.
두 작품의 소재는 크게 다르다. 한 작품은 고대 사회의 특권과 신체 조건을 다루고, 다른 작품은 오늘날의 사랑과 외모를 바라본다. 그러나 두 희곡 모두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오광욱은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논의된 자연적·신체적 불평등과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여기에 자크 라깡의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명제가 더해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인간의 모습은 두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이런 철학적 배경은 희곡의 문장 뒤에 숨어 관객이나 독자가 정답을 찾아야 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관계와 선택을 통해 드러난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거나 밀어내는 과정,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태도,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거나 의심하는 선택이 작품의 질문을 구체적인 인간관계로 바꾼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인간등급 C'를 인간을 등급화해 만들어 놓은 불평등 구조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 보내는 작은 외침이자 저항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자신 역시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돌아보며 오만과 허영, 특권 의식을 바라본다.
여기서 희곡집의 제목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서 벗어난다. 'C'라는 등급은 누군가에게 붙이는 낙인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이 된다. 나는 타인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을 때는 어떤 기준을 불공정하다고 느끼는가.
희곡이라는 형식도 이 질문과 잘 맞는다. 소설이 인물의 내면을 서술할 수 있다면 희곡은 인물이 서로 마주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보여준다. '인간등급 C' 역시 설명으로 판단을 끝내기보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과 행동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의 과정을 따라가게 한다.
오광욱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연극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희곡을 전공했다. '덕혜옹주', '유관순 9월의 노래', '사법살인 59', '17번', '스파르타의 불구 아이' 등을 발표했으며 제6회 윤대성희곡상을 수상했다. 극작과 연출을 함께 이어오면서 배우 교육과 창작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희곡집은 그가 무대에서 다뤄온 문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공연은 시간이 지나면 막을 내리지만 희곡은 다시 읽히고 다른 배우와 연출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 가능성을 남긴다. 140쪽 분량의 '인간등급 C'는 공연예술의 기록인 동시에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창작의 원천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등급 C'가 바라보는 불평등은 거대한 제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조건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순간, 혹은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순간에도 시작될 수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 오늘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두 희곡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같은 질문으로 향하는 이유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고 그 구분에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 오광욱의 '인간등급 C'는 바로 그 익숙한 태도를 무대 밖 독자의 일상으로 가져온다. 두 편의 희곡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책을 덮은 뒤에도 남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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