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경성부터 영친왕 이진 장례까지, 필름에 남은 '우리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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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경성부터 영친왕 이진 장례까지, 필름에 남은 '우리의 얼굴'

뉴스컬처 2026-09-19 20:11:51 신고

사진=우리의 얼굴
사진=우리의 얼굴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00년 전 카메라는 무엇을 남겼을까. 왕실의 공식 기록만이 아니라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 가족을 돌보던 아이들,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주민들의 모습도 필름 안에 머물러 있다. KBS가 오래된 영상 기록을 다시 살펴보며 한 세기 전 사람들의 삶을 되짚는다.

KBS1 '다큐 인사이트'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의 얼굴'은 1900년대 초부터 1950년대까지 촬영된 국내외 기록영상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경성의 거리에서 신안과 울릉도, 제주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하루가 오래된 화면을 통해 되살아난다.

사진=우리의 얼굴
사진=우리의 얼굴

영상에는 거창한 역사적 사건보다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의 모습이 먼저 등장한다. 나막신을 신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길, 지게를 짊어진 노동자들, 빨래와 다듬이질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맷돌과 절구를 사용하는 손길,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 가운데 미국인 여행작가 버튼 홈즈가 남긴 영상은 당시 경성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으로 소개된다. 홈즈가 바라본 조선의 거리는 관광지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하고 이동하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화면 곳곳에 남아 있다.

왕실의 기록은 또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1922년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아들 이진과 함께 한국을 찾았을 당시의 모습이다. 순종에게 혼인 사실을 알리고 어린 아들을 처음 인사시키기 위한 방문이었다.

칠궁과 종묘를 찾은 영친왕 가족의 모습은 당시 자료와 유물을 바탕으로 색을 되살렸다. 흑백 화면에 머물던 기록에 색채가 더해지면서 1922년의 왕실 풍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귀국 일정은 비극으로 끝났다. 방문 기간 어린 이진이 세상을 떠났고, 장례 행렬 역시 필름에 남았다. 한 가족의 짧은 귀국 기록이 왕손의 죽음과 장례라는 역사적 사건까지 품게 된 것이다.

1936년 신안 다도해를 담은 영상에서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주민들의 생활이 펼쳐진다. 민어가 몰려들던 바다와 수백 채의 임시 건물이 들어선 파시, 주민들이 함께 일하던 '뻘마당'의 모습이 당시의 생업과 지역사회의 모습을 전한다.

영상 속 인물과 현재의 기억이 만나는 대목도 있다.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박차규 어르신은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며 번성했던 파시를 회상한다. 오래된 영상 속에는 그의 어머니가 키질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오래된 기록은 개인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화면 속 어머니와 아버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 기억은 영상이 단순한 과거의 자료를 넘어 한 사람의 가족사와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52년 울릉도의 영상에는 전염병 방역과 검사를 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바닷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어진다. 제주에서는 해녀들의 물질과 시장의 풍경, 길거리에서 간식을 나누며 웃는 사람들의 표정이 기록됐다.

사진=우리의 얼굴
사진=우리의 얼굴

특별한 인물이나 이름난 사건만이 역사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던 하루가 카메라를 통해 보존되면서 오늘날에는 귀중한 기록이 된다. 당시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시대를 설명하는 자료가 된 셈이다.

'우리의 얼굴'이 보여주는 것은 오래된 영상 자체만은 아니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들의 삶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다. 경성의 거리와 섬마을, 왕실의 이동과 가족의 일상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사진=우리의 얼굴
사진=우리의 얼굴

한 세기 전 카메라 앞에 섰던 사람들의 얼굴은 이제 이름과 사연을 넘어 오늘의 시청자와 마주한다. 흑백 필름 속 표정과 움직임, 그리고 그 영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겹쳐지면서 과거는 기록물이 아닌 살아 있는 기억으로 돌아온다.

특집 다큐멘터리 KBS 영상 아카이브 '우리의 얼굴'은 19일 오후 9시 30분 KBS1에서 방송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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