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햅쌀로 송편을 빚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한가위가 찾아온다. 한 해 농사를 마치며 수확에 감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별 기후와 농사 시기가 다른 만큼 수확을 기념하는 때와 음식도 제각각이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과자를 나눠 먹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쌀로 만든 장식을 집에 걸고, 커다란 칠면조를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곳도 있다.
우리 송편처럼 한 해의 결실과 가족의 의미를 음식에 담아온 세계 각국의 명절 음식을 알아본다.
1. 일본 쓰키미 당고
일본에서는 가을 달맞이 행사인 ‘쓰키미’에 둥근 당고를 차려 놓는다. 쓰키미는 ‘달을 본다’는 뜻으로, 음력 8월 15일에 해당하는 주고야 무렵 보름달을 감상하는 풍습이다. 이때 달이 보이는 곳에 억새와 제철 농산물, 당고 등을 함께 올린다.
쓰키미 당고는 쌀가루를 반죽해 둥글게 빚은 음식이다. 하얗고 동그란 모양이 보름달을 닮았으며, 관동 지역에서는 주고야의 숫자에 맞춰 15개를 층층이 쌓아 차려 놓기도 한다.
당고 옆에는 억새도 함께 놓는다. 억새 이삭이 벼 이삭과 비슷하게 생겨 가을 수확철을 떠올리는 장식으로 쓰여 왔다. 여기에 호박이나 풋콩, 밤 등 가을에 거두는 농산물을 곁들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당고의 모양과 먹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둥글고 흰 당고를 그대로 먹는 곳이 있는가 하면 팥소나 콩가루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다만 간장 소스를 발라 꼬치에 꽂은 ‘미타라시 당고’와 쓰키미 당고는 서로 다른 음식이다. 쓰키미 때 달 앞에 올리는 당고는 진한 소스를 바른 꼬치 당고보다는 하얗고 둥글게 빚은 쓰키미 당고에 가깝다.
2. 미국 칠면조 구이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이 되면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다. 이때 식탁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칠면조 구이가 놓인다. 감자와 호박, 옥수수, 크랜베리 등도 함께 차려져 식탁을 채운다.
칠면조는 통째로 오븐에 넣어 오랜 시간 굽는다. 속에는 빵과 채소, 허브 등을 섞은 스터핑을 채우기도 한다. 잘 익은 고기는 얇게 썬 뒤 그레이비를 끼얹고, 크랜베리 소스와 으깬 감자, 구운 채소 등을 곁들여 먹는다.
이처럼 칠면조 구이는 오늘날 미국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빠지기 어려운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처음부터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사슴고기와 여러 종류의 야생 조류 등도 식탁에 올랐고, 시간이 지나면서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을 떠올리는 음식으로 널리 자리 잡았다.
3. 베트남 반쭝투
베트남에도 음력 8월 15일에 맞춰 보내는 중추절인 ‘뗏쭝투’가 있다. 한 해 농사를 마친 뒤 가족이 함께 쉬며 보름달을 바라보던 풍습에서 이어졌으며, 지금은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가을 축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뗏쭝투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은 베트남식 월병인 반쭝투다. 반쭝투는 크게 오븐에 구워 만드는 반느엉과 찹쌀가루로 만드는 반제오로 나뉜다.
반느엉은 밀가루 반죽 안에 연꽃씨나 녹두, 견과류 등을 넣어 굽는다. 제품에 따라 소시지나 소금에 절인 달걀노른자를 넣기도 해 단맛과 짠맛이 함께 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반제오는 익힌 찹쌀가루를 반죽해 굽지 않고 만들기 때문에 겉이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난다.
모양에도 저마다 뜻을 담는다. 둥근 월병은 하늘을, 네모난 월병은 땅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가족들은 준비한 월병을 차와 함께 나눠 먹으며 보름달을 감상한다.
명절 풍경은 한국의 추석과도 차이가 있다. 해가 지면 아이들이 별 모양 등불을 들고 거리를 걷고, 곳곳에서는 사자춤 공연도 펼쳐진다.
4. 중국 월병
중국에서는 음력 8월 15일 중추절이 되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보름달을 바라보고 월병을 나눠 먹는다. 가을 수확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해 저녁이 되면 가족끼리 음식을 차려 놓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중추절의 대표 음식은 둥근 월병이다. 보름달을 닮은 모양 때문에 가족이 다시 모이는 뜻과 연결해 받아들이기도 한다. 큰 월병 하나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식구들이 나눠 먹는 모습도 흔하다.
월병 속은 지역과 제품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연꽃씨 앙금이나 팥, 견과류를 넣기도 하고 가운데에 소금에 절인 달걀노른자를 넣는 경우도 있다. 특히 둥근 노른자가 보름달을 닮아 중추절에 어울리는 재료로 많이 쓰인다.
겉면에는 꽃이나 글자, 기하학 무늬 등을 찍어 굽는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속이 빽빽하고 단맛이 진한 편이라 한 사람이 한 개를 모두 먹기보다 얇게 잘라 차와 함께 나눠 먹는 경우가 많다.
중추절을 앞두고는 월병을 선물로 주고받는 문화도 널리 퍼져 있다. 가족뿐 아니라 친척이나 지인에게 상자에 담긴 월병을 건네며 명절 인사를 전한다.
5. 필리핀 키핑
필리핀의 수확 축제는 한국의 추석과 열리는 시기가 다르다. 루손섬 케손주 루크반에서는 매년 5월 15일 ‘파히야스 축제’가 열린다. 농부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성 이시드로 라브라도르를 기리고,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친 데 감사하는 행사다.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은 ‘키핑’이다. 쌀가루 반죽을 잎 모양으로 얇게 빚어 말린 뒤 빨강과 노랑, 초록 등 여러 색으로 물들여 만든다.
키핑은 먹는 음식이지만 축제 기간에는 집을 꾸미는 장식으로도 쓰인다. 주민들은 여러 장의 키핑을 이어 붙여 꽃이나 샹들리에 모양으로 만들고, 이를 창문과 벽에 걸어 집 외벽을 꾸민다. 여기에 바나나와 코코넛, 채소 등 직접 거둔 농산물도 함께 내건다.
축제가 시작되면 루크반 거리의 모습도 크게 달라진다. 집마다 색색의 키핑과 농산물이 빼곡하게 걸리면서 거리 전체가 커다란 수확물 전시장처럼 바뀐다. 음식이 식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축제를 꾸미는 장식으로 쓰인다는 점이 파히야스 축제의 눈에 띄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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