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간 이어진 제도 공백에 변화가 시작됐다. 정부가 그동안 국내에서 정식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임신중지 약물’을 국가 의료체계 안으로 들여와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약물의 음성적 유통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의료기관을 통해 안전하게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인공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보고했다. 식약처는 현재 수입품목 허가·심사가 진행 중인 약물이 임상시험자료 등을 근거로 임신 63일, 즉 9주 이내 사용하는 것으로 신청됐다고 밝혔다.
■‘음성적 유통’ 막고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
이번 조치의 핵심은 임신중지 약물을 단순히 국내에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권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입법 공백과 임신중지 약물 도입 지연이 이어지면서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과 대체재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여성의 건강상태 등에 따라 수술 또는 약물 복용을 선택할 기회가 제한됐다는 것이다. 임신중지 시기가 늦어지면서 비용 등 사회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도입 배경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정식 도입을 통해 사용실태를 파악하고 약물 사용과 사후관리를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신 9주 이내 사용으로 허가 신청…한국인 별도 임상은 안 할 듯
현재 식약처에서 허가·심사가 진행 중인 임신중지 약물(미프진)은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하는 것으로 신청됐다. 식약처는 임상시험자료 등을 토대로 안전성·유효성과 품질을 검토하고 ‘의약품 위해성 관리계획’ 등 허가 신청자료도 심사할 계획이다. 위해성 관리계획에는 시판 후 이상사례 수집·평가, 안전성 정보 조사, 환자와 전문가를 위한 설명·교육자료 등이 포함된다.
관심을 모았던 한국인 대상 별도의 ‘가교시험’은 시행하지 않는 방향이다. 가교시험은 해외에서 개발된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한국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임상시험이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교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다”며 미프진이 1988년 이후 일본·유럽·미국 등 약 100개국에서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사용돼 왔다는 점 등을 토대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가교시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단 이는 별도의 한국인 가교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허가심사나 안전성 검토 자체를 생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식약처는 제출된 임상자료를 비롯해 안전성·유효성, 품질, 시판 후 안전관리계획 등을 심사할 예정이다.
■도입 초기에는 병원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
실제 도입 이후에도 당장 일반 의약품처럼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후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검토한 뒤 사용·유통체계를 점진적으로 확대할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따라서 정식 도입 이후에는 의료진의 진료를 통해 임신기간과 건강상태 등을 확인하고 정해진 관리체계 안에서 약물을 사용하는 구조가 마련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처방·투약 및 사후관리 절차는 향후 허가 내용과 정부의 세부 관리방안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내년 1분기 목표지만…허가 시점은 아직 ‘미정’
식약처는 내년 1분기까지 약물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허가 시점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오유경 처장은 국회에서 업체가 식약처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보완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만큼 허가 일정을 특정 월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식약처가 진행할 수 있는 절차는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역시 임신중지 약물 도입 자체뿐 아니라 이후 안전관리체계 마련에 무게를 두고 있다. 허가 후 초기 2년간 의료기관 내 직접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하고 이상사례 수집·평가와 안전성 정보 조사 등을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허가 여부와 시점뿐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처방받을 수 있는지, 복용 전후 의료적 확인과 사후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상반응 발생 시 대응체계를 어떻게 구축할지 등 구체적인 사용·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