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으로 돈줄기 바꾸려면…정부·은행·연기금 등이 손실 나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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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기업으로 돈줄기 바꾸려면…정부·은행·연기금 등이 손실 나눠야"

이데일리 2026-09-16 19:04: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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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준 인하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 김보경 금융전문기자]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권에서 ‘건전한 대출’은 사실상 ‘담보가 확실한 대출’과 같은 말이 됐다. 특히 부동산이 가장 좋은 담보로 대접받았다. 기술과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담보가 없으면 위험한 기업이 됐고, 금융거래 이력이 짧은 청년과 소상공인도 높은 금리를 감수하거나 대출을 거절당했다.

그 결과 금융회사는 부실을 줄였지만 경제의 자금줄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파트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돈이 공급되고, 미래의 대기업이 될 수 있는 새싹기업은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는다. 모두가 건전성을 좇았지만 그 결과 경제 전체의 역동성은 약해지는 역설이다.

정부가 얼마전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의 비상장주식·정책목적펀드 투자 규제를 손질하고 보험사의 벤처·인프라 투자 위험계수를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은행의 주담대를 줄인다고 그 돈이 자동으로 혁신기업에 흘러가지는 않는다. 돈이 갈 수 있는 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건전성 문제에 대한 책임도 나눠야 한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가장 먼저, 실패했을 때 손실을 나눠 갖는 구조가 필요하다. 담보는 없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A스타트업에 대해 대출과 투자 심사를 한다고 치자. 이때 여러 금융사가 함께 지원하고, 책임도 공동으로 지는 거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 등 정책금융은 후순위 투자나 보증으로 첫 손실의 일부를 맡고, 은행은 기업의 현금흐름을 평가해 대출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위험이 더 큰 자금은 증권사·보험사·연기금이 채권과 펀드, 지분투자 방식으로 나눠 맡아야 한다. 기업이 성장한 뒤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IPO(기업공개) 이외의 회수시장도 넓혀야 한다.

다만 정부가 손실을 모두 막아줘서는 안 된다. 정부 보증이 지나치면 금융회사는 기술과 사업모델을 제대로 심사할 이유가 없어진다. 정부는 마중물을 붓되, 금융회사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부동산 대출에도 위험에 맞는 가격표를 붙여야 한다. 현재처럼 주담대 위험가중치의 하한을 일률적으로 20%로 정하는 방식은 충분히 정교하지 않다. 1주택자의 실수요 대출과 다주택자 대출은 위험이 다르다. 안정적인 급여로 갚는 대출과 임대수익·분양수입에 의존하는 대출도 같지 않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상환능력, 상환재원, 담보가격 변동성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달리 매겨야 한다.

기존 대출에도 위험가중치 상향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하한을 30%까지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은행의 자본 부담은 커지겠지만, 부동산 대출만 반복하는 것보다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발굴하는 편이 유리해질 수 있다.

셋째, 포용금융 등을 하면서 연체율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신용자와 금융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일정한 연체와 손실 발생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러한 연체율 상승을 무조건 실패로 평가하면 금융회사는 결국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주게 된다.

대형은행과 중소형은행, 저축은행은 고객군과 손실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다르다. 똑같은 연체율 잣대를 적용하기보다 기관별로 감당 가능한 기대손실을 정하고 그에 맞는 기대이익과 금리책정, 그리고 충당금과 예산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은행에 손해를 감수하라거나, 건전성을 버리라고 하면서 생산적·포용적 금융을 추진하지 않았다. 대신 별도의 평가·전문기관·공적 지원을 결합했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은 은행이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저소득 지역의 신용 수요를 얼마나 충족했는지 평가한다. 대형은행은 지역개발금융기관(CDFI)의 활동에 얼마나 자금을 제공하지를 감독당국이 평가하고, 중소형 금융기관인 CDFI는 일반 금융회사가 외면하는 저소득 지역에 대한 자금 공급을 전담하고, 그 성과를 평가받는다.

일본 금융청은 2019년 획일적인 검사 기준을 담은 ‘금융검사 매뉴얼’을 폐지했다. 대신 금융회사별 경영전략과 지역 특성, 기업의 미래 정보를 놓고 금융회사와 감독당국이 대화하는 감독 방식으로 전환했다. 모든 금융회사에 같은 답을 요구하는 대신 각자 어떤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돈을 공급할지 따져 묻는 것이다. 건전성의 방패는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방패가 기업과 서민 앞을 가로막는 벽이 돼서도 안 된다.

은행이 아파트 대신 기업의 미래를 들여다보게 하려면 “대출을 늘려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과 기업, 고신용자와 저신용자에게 붙은 위험의 가격표를 다시 매겨야 한다. 그리고 금융기관별로 고유한 특성을 반영해서 자금운용 방식의 폭을 확대하되 그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금융회사가 손실을 분담하는 구조 설계도 필요하다.

생산적 금융은 돈의 목적지를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건전성을 덜 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더 정확하게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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