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할머니가 불쑥 내민 500만원…“오래된 빗, 이제야 갑푸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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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할머니가 불쑥 내민 500만원…“오래된 빗, 이제야 갑푸려 합니다”

경기일보 2026-09-15 13:39: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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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역에 80대 여성이 현금 500만원과 함께 건넨 자필 편지. 한국철도공사 제공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역에 80대 여성이 현금 500만원과 함께 건넨 자필 편지. 한국철도공사 제공

 

48년 전 형편이 어려워 내지 못했던 아들의 기차표값 500원을 평생 마음에 품어온 80대 여성이 500만원을 들고 영등포역을 찾았다. 당시 자신을 배려해준 역무원에게 “죽기 전에 갚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15일 한국철도공사 수도권서부본부 등에 따르면 8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역을 찾아 현금 500만원과 직접 쓴 편지가 든 봉투를 건넸다.

 

편지는 “아주 오래된 빚을 이제야 갚으려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사연은 197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씨는 초등학생 아들과 전북 정읍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승차권만 구입하고 아들의 표값은 마련하지 못했다.

 

A씨는 “역장님은 아이 차비로 500원을 내라고 했으나 우리가 가진 것은 토큰 한 개밖에 없었다”며 “역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고맙게도 그냥 가라고 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날 받은 배려는 A씨에게 오랫동안 빚으로 남았다.

 

그는 “절을 하고 돌아서면서 ‘이 돈은 내가 죽기 전에 갚겠다’고 다짐했다”며 “많이 늦고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받아달라. 그동안 많이 감사했다”고 적었다.

 

편지에는 이름 대신 ‘난곡동 할매’라고 썼다. 당시 500원이었던 아들의 기차표값은 48년이 흐른 뒤 1만배인 500만원이 돼 영등포역으로 돌아왔다.

 

A씨가 오랜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암으로 투병하던 아들이 최근 세상을 떠난 뒤 마음속에 묻어뒀던 빚을 더 늦기 전에 갚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뜻밖의 편지와 현금을 받은 영등포역 직원들도 A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난 13일 역사 게시판에 ‘난곡동 할매께’라는 제목의 글을 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직원들은 “그날 어머니께서 영등포역에 건네주신 용기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큰 감동 덕분에 매일 선물처럼 보내고 있다”며 “어머니께서 저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받은 배려와 친절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저희가 역무원으로서 고객 한 분 한 분께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지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셨다”며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 저희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과 좋은 기억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코레일 측은 처음에는 A씨가 건넨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철도공사 수도권서부본부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현금을 주셨을 때 완강히 거절했지만, 꼭 영등포역에 주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끝내 받게 됐다”며 “신원 밝히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감사함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역사 내에 답장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서부본부는 A씨가 건넨 500만원을 기타수익으로 처리했으며 구체적인 사용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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