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의 수량이 계속 줄면서 강 하류에서 갈치가 잡히는 등 '바다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MBC가 14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 재첩 어민들은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어 올리며 재첩을 채취해왔다. 유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인정받은 '재첩잡이 손틀어업'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로 걸려 나오는 것이 돌멩이뿐이라고 한다. 꼬박 4시간 재첩을 잡아야 겨우 대야 하나를 채우는 실정이다.
섬진강 하구 / MBC
한 재첩 어민은 MBC에 "어머니 세대 땐 거랭이 전체가 재첩일 때가 있었다. 조개만 있을 때니까 그때는"이라고 말했다.
하구 어민들은 이제 재첩잡이를 포기하고 아예 바다낚시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옛 재첩 어민 허상원씨는 MBC에 "강 하구가 완전히 바다화가 다 됐다"며 "저 하동 송림까지 짠물이 올라간다. 더 위까지 올라간다"고 말했다. 상류에 댐이 들어서 강물이 농업·공업용수로 상당 부분 쓰이는 데다 가뭄 등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강물이 줄어들자 짠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오는 '염해'가 발생해 강 생태계가 망가진 것이다.
전남 광양시 중도마을의 한 어민은 MBC에 "염도가 심해지다 보니까 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지금 이 섬진강에도 광어, 갈치 안 올라오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재첩을 따라 경남 하동 어민들이 광양 쪽 섬진강 상류로 몰려오면서 어민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섬진마을 어촌계장 박찬식씨는 MBC에 "하동 사람들은 자기네가 채취를 못 하니까, 줄어드니까 우리 지역에 많이 있으니까 이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섬진강댐 물의 85%는 전북 농업용수로 쓰이고, 남은 물마저 광양·여수 산단의 공업용수로 대부분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광양환경운동연합 백양국 의장은 MBC에 "섬진강 수계권 중하류에 있는 주민들이 그 혜택을 봐야 하는데 물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남·광주 반도체 공장까지 들어서면 물 자원이 더 줄어들 수 있어, 섬진강 물을 둘러싼 갈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사는 재첩
재첩이 사라지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재첩이 어디에 사는 조개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재첩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점인 기수역(汽水域)에 주로 서식하는 조개다. 하동 지역에서는 '갱조개'로 불린다. 소금기가 적당히 섞인 기수역은 재첩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섬진강은 우리나라 재첩의 주생산지다. 섬진강 재첩은 국내 재첩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한때 낙동강에서 더 많은 재첩이 잡혔으나, 낙동강 하굿둑을 막은 이후 섬진강 하구가 최대 산지가 됐다.
섬진강 하구 / MBC
재첩은 오래전부터 우리 밥상에 오른 대중적인 식재료였다. 1908년 대한제국 통감부가 발간한 '한국수산지' 제1집에는 유용수산물 106종 가운데 재첩이 포함돼 110여년 전부터 재첩이 널리 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재첩을 잡는 손틀어업은 사람이 직접 강물에 들어가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채취하는 전통 방식이다. 거랭이는 대나무 대에 대나무 살을 엮어 망을 만들어 연결한 도구다. 긴 막대 끝에 부챗살 모양의 긁개를 달아 강바닥을 긁으면 모래는 망 사이로 빠져나가고 재첩만 걸러진다.
해양수산부는 2018년 '하동·광양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7호로 지정했다. 이어 2024년에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국내 어업 분야 최초로 등재됐다. 재첩은 섬진강의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는 행위 자체가 생태계 순환에 도움을 준다는 평가도 받는다.
소금기 올라오자 바닷물고기가 강으로
기수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공간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서 섬진대교부터 다압면사무소 일대까지 약 23㎞에 이르는 기수역에는 재첩을 비롯해 기수갈고둥, 황어, 숭어, 큰가시고기 등 여러 어종이 관찰됐다. 섬진강 하구 기수역은 우리나라에서 한강 하구 다음으로 큰 규모다.
문제는 강물이 줄면서 기수역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상류 섬진강댐 건설로 수량이 줄고, 하구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강물의 흐름이 바뀌었다. 강물이 바닷물을 밀어내는 힘이 약해지자 소금기가 강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염해가 심해졌다.
섬진강 하구 재첩 잡이 모습. / MBC
염분이 올라오면서 강 하류의 어종 구성도 바뀌었다. 어민들은 염화 현상이 심할 때, 주로 밀물 때는 바닷물고기를 잡고, 그렇지 않을 때는 민물고기를 잡는 일이 많아졌다. 광어와 갈치처럼 바다에 살던 어종이 강에서 잡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염분에 약한 재첩은 이런 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하동군은 한국수자원공사의 광양시 다압 취수장 증설·이설 이후 염해 피해가 본격화됐다고 보고 염분 농도와 재첩 생존율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해왔다. 하동군은 하천 유지용수 증량과 취수량 증대 철회 등을 담은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하고, 염해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내기도 했다.
섬진강 물을 둘러싼 갈등은 재첩 어민 사이의 다툼을 넘어 지역 간 물 배분 문제로 번지고 있다. 상류 물이 농업·공업용수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반도체 공장 등 새로운 물 수요까지 예고돼 하류 생태계 회복을 위한 유지용수 확보가 과제로 떠올랐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