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블러드 : 김원빈] 손상의 시간을 금빛으로 복원하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영블러드 : 김원빈] 손상의 시간을 금빛으로 복원하다

투데이신문 2026-09-12 19:41:15 신고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김선 비평가, 정해연 큐레이터 등 관련 전문가들의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안녕하세요. 국가유산수리기능자(모사공)로서 유물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고, 이를 회화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김원빈입니다. 저는 완벽하고 매끈한 아름다움보다는, 깨지고 찢기고 얼룩진 ‘손상’의 상태에 집중합니다. 저의 작업은 우리 삶의 도처에 존재하는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적 답변이자, 그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한 숭고한 생명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김원빈, 흉 시리즈,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흉 시리즈,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

예술가로서 저의 근원적인 질문은 ‘추(醜)는 과연 아름다움의 반대말인가’라는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손상된 유물이나 신체의 흉터를 결함으로 치부하고 감추려 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숨길 수 없는 존재의 서사를 읽어냅니다. 저에게 손상은 단순한 파괴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지나갔음을 증명하는 가장 정직한 ‘존재의 증표’입니다.

저는 ‘흉’이라는 개념을 작업의 중심에 둡니다. 본래 ‘흉할 흉(凶)’자는 가슴에 칼자루가 박힌 모양에서 유래된 부정적이고 두려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흉’을 삶을 지탱해 온 훈장이자, 멈추지 않고 살아남았음을 뜻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치환하고자 합니다. 작품 속 손상된 국보나 낡은 유물의 상흔들은 금빛으로 빛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가 가진 내면의 상처를 대면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합니다.

김원빈, 흉 시리즈,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흉 시리즈,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
김원빈, 흉 시리즈(부분),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흉 시리즈(부분),2025, 비단에전통안료와금박 ,80x65cm [사진 제공=배렴가옥]

 # ARCHIVE 

작품의 시작은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발견에서 시작됐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남겨진 유품 중 빛바랜 고서 한 권을 마주했을 때였습니다. 그 낡은 종이 위에는 할아버지의 투박한 메모와 함께 오랜 세월이 만든 얼룩과 좀이 먹은 구멍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손상’들이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세월의 무게이자 저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국가유산수리기능자로서 현장에서 마주한 퇴색된 단청, 불에 타거나 박락된 초상화나 불화 등은 저에게 단순한 ‘수리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흉(凶)> 연작은 손상된 초상화나 유물의 박락된 부분을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보여줍니다.

작품의 작업과정은 모사공이 현장에서 진행하는 현상모사 복원과정과 같습니다. 저는 바탕재의 손상이나 얼룩 등을 제거하지 않고 시간의 켜가 느껴지도록 작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파여진 틈새와 찢긴 경계에 금박과 금니를 입힙니다. 이는 단순히 금을 붙이는 행위를 넘어 손상의 가치를 귀하게 대접하고 예우하는 ‘회복의 의식’에 가깝습니다. 금빛으로 강조된 ‘흉’은 이제 더 이상 감춰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 고통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선 존재의 아름다운 광휘로 탈바꿈합니다.

또한 저는 장황기법을 작품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활용합니다. 전통적으로 장황은 그림을 보존하고 꾸미는 보조적인 수단이지만, 저의 작업에서는 상처 입은 몸에 붕대를 감아 보호하듯 작품 전체를 감싸 안는 ‘예우의 프레임’이 됩니다. 비단과 종이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이 공간은 과거의 손상과 현재의 치유가 공존하는 안식처가 됩니다.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40x60cm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40x60cm [사진 제공=배렴가옥]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각40x60cm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각40x60cm [사진 제공=배렴가옥]

최근의 <개인의 흔적> 시리즈와 <컬러블럭> 작업에서는 이러한 철학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조부의 필사본과 같은 개인적인 사물을 박제하듯 보존하는 형식을 취하거나, 전통 오방색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손상이 만들어낸 우연적인 형태들을 기하학적인 질서 속에 배치합니다. 이를 통해 ‘국가적 유산’이라는 거대 서사와 ‘개인의 기억’이라는 미시 서사가 ‘손상과 회복’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아카이빙,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 [사진 제공=배렴가옥]<br>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아카이빙,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 [사진 제공=배렴가옥]
김원빈, 컬러블럭 시리즈,2025, 복원한 고문서에 전통안료,각40x60cm [사진 제공=배렴가옥]

 

 # ARTIST STORY 

저의 작업실 책상 위에는 늘 낡은 도구들과 오래된 종이 조각들이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져야 할 쓰레기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가장 고귀한 조형적 영감을 주는 오브제들입니다. 최근 저는 ‘손상’ 그 자체가 가진 추상적 미학에 더욱 몰입하고 있습니다. 사물이 부서질 때 발생하는 불규칙한 선들, 안료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드러나는 거친 바탕의 질감들은 그 어떤 정교한 묘사보다도 강력한 생명력을 발산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한지와 천연 안료, 그리고 금(金)을 매개로 삼아 ‘추의 미학’을 실천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본래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고통(苦) 또한 인간 존재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작업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결국 저의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입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이 가진 마음의 흉터와 삶의 균열이 결코 당신을 깎아내리는 결점이 아님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그 틈새에서 가장 단단한 자아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저의 금빛 ‘흉’들을 통해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과거의 시간을 복원하는 모사공의 손길과 현재의 아픔을 보듬는 화가의 마음으로 저는, 앞으로도 멈춰버린 유물에 숨을 불어넣고 우리 삶의 깨어진 조각들을 예술의 이름으로 수습해 나갈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손상된 존재’들에게 저의 작품이 따뜻한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원빈 작가 [사진 제공=본인]
김원빈 작가 [사진 제공=본인]

 ART CRITICISM 

김원빈의 작업에서 주목할 지점은 전통적인 보존과 복원의 경험을 동시대 회화의 언어로 전환하는 방식에 있다. 그의 화면에서 시간의 흔적은 과거에 머무는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과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조형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전통을 재현하거나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김원빈은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동일시해 온 익숙한 미적 기준에 질문을 던진다. 결핍과 불완전함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대상을 평가하고 구분하기보다, 한 존재가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때 작품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전통과 현대, 보존과 창작의 경계를 오가는 이러한 태도는 김원빈의 작업을 단순한 기법적 차별화 너머로 이끈다. 앞으로 작가가 축적해 온 고유한 경험과 문제의식이 더욱 밀도 높은 조형 언어로 발전하며, 동시대 미술 안에서 폭넓은 공감과 새로운 해석을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정해연 큐레이터)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