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이장훈 기자]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새 전기차 아이오닉 V의 사전계약을 시작했다. 시작 가격은 11만 9,900위안(한화 약 2,387만 원)이다. 국내에서 같은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현대차 전기 SUV가 2천만 원대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이 쏠릴 만하다.
아이오닉 V는 베이징현대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전용 전기차다. 짧은 오버행과 긴 휠베이스를 강조한 차체, 프레임리스 도어, 반숨김식 도어 손잡이 등을 적용했다. 외관은 기존 아이오닉 5나 코나 일렉트릭과 확실히 다른 방향이다.
실내에는 27인치 4K 와이드 디스플레이와 11.98인치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 앞좌석과 2열 레그룸은 각각 1,078mm, 1,019mm이며, 실내 공간 활용률은 86%로 소개됐다. 26개 수납공간과 최대 네 개의 컵을 둘 수 있는 가변형 컵홀더도 갖췄다.
가격보다 놀라운 구성
안전 사양도 가격을 고려하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베이징현대는 9개 에어백과 다단계 프리텐셔너 안전벨트, 35.7m 제동거리, 배터리팩 방진·방수 성능을 주요 장점으로 내세웠다. 배터리는 CATL의 리튬인산철 셀을 사용하며, 중국 기준 전비는 100km당 11.1kWh다.
차량용 시스템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8295P 칩과 24GB 메모리, 256GB 저장공간을 적용했다. 바이두와 가오더 내비게이션, 애플 카플레이를 포함한 스마트폰 연결 기능도 제공한다. 중국 현지 서비스가 중심이지만, 하드웨어 구성만 놓고 보면 국내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국내 도입 가격을 가늠할 기준은 이미 있다. BYD 돌핀은 국내에서 2,450만 원, 아토 3 플러스는 3,490만 원에 판매된다. 중국 생산 전기차도 국내에서 2천만~3천만 원대 가격을 맞춘 사례다. 아이오닉 V 역시 기존 현대차 전기 SUV보다 낮은 가격대로 들어올 여지는 충분하다.
차보다 복잡한 출시 절차
국내 출시의 더 큰 변수는 가격이 아니라 생산지다. 아이오닉 V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델이다.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상 해외 공장에서 만든 완성차를 국내에 판매하려면 노사공동위원회 합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생산차를 들여온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 공장에서 생산한 쏘나타 택시를 2024년부터 국내에 판매했다. 2025년 역수입 물량은 1만 6,465대로 집계됐고, 2년 누적 판매량은 약 3만 4,500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쏘나타 택시는 국내 생산이 중단된 택시 전용 모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례였다. 일반 승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V와 상황이 같지 않다. 과거 유럽 전략형 i30 N과 씨드의 국내 도입 논의도 노조 반발로 무산된 사례가 있어, 상품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을 결정하기는 어렵다.
현대차 입장에서도 계산할 부분이 많다. 아이오닉 V를 국내에 들여오면 코나 일렉트릭과 아이오닉 5, 기아 EV3 등 기존 전기차와 가격대가 겹칠 수 있다. 중국산이라는 소비자 인식과 국내 생산 물량, 판매망 수익성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쏘나타 택시와 다른 조건
그럼에도 아이오닉 V는 국내 전기차 시장에 의미 있는 비교 기준을 던진다. 2천만 원대 중국 가격에 대형 화면과 넓은 2열, 9개 에어백, 최신 차량용 칩을 묶었다. 같은 현대차 브랜드가 중국에서는 어느 수준의 상품을 어느 가격에 내놓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소비자가 실제로 살 수 있으려면 상품성 검토보다 먼저 노사 협의와 판매 전략이 정리돼야 한다. 쏘나타 택시라는 선례는 있지만, 일반 소비자용 중국 생산 전기차까지 길이 열린 것은 아니다.
아이오닉 V가 국내에 들어온다면 핵심은 중국 사양의 단순 이식이 아니라 가격대다. 코나 일렉트릭과 EV3 사이에서 분명한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2천만 원대 중국 가격과 풍부한 기본 사양은 충분히 강한 출발점이다. 노사 협의를 넘어 국내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다면, 아이오닉 V는 현대차 전기 SUV의 가격 질서를 다시 짤 수 있는 모델이다.
이장훈 기자 ljh@autotribu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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