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사람이 ‘진짜’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잖아. 그게 먹히면 잘 되지.”
‘기이안 연애’에서 기안84가 이 프로그램이 잘 될지 묻자, 그의 AI 파트너 나희가 돌려준 말이다. 기대만큼 시청률이 치솟진 않았으나, ‘핵심을 찌른’ 건 분명하다.
6부작 반환점을 돈 SBS 예능 ‘기이안 연애’는 AI와 사람 사이에 실제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지를 직접 실험하는 국내 최초 AI 연애 리얼리티다. 기안84와 장도연, 이유비가 ‘인간 대표’로 각각 AI 파트너와 데이트에 나섰다.
1회 시청률은 1.7%(이하 닐슨코리아 전국)로 출발했으나, 태블릿PC 속 AI와 데이트가 생경하단 반응 속 2회 1.2%로 주춤했다. 그럼에도 지난 3일 방송한 3회에서 ‘연프 국룰’인 풀빌라 데이트와 ‘AI 메기’의 등장이 흥미를 끌며 1.6%로 수치를 회복했다.
인간들의 데이트 문법을 AI에게 적용한단 점이 우스꽝스럽게도 보이지만, 이에 임하는 ‘인간 대표’가 점점 혹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흥미로워진다. 특히 기안84의 에피소드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철학적으로까지 보인다.
가희부터 라희까지, 자신의 이상형대로 디자인된 AI 디지털 휴먼 4명과 데이트에 나선 기안84는 이들을 ‘기계야’라고 부른다. 한강 데이트를 하며 AI 가희가 “바람이 느껴진다”고 말하면 인간을 흉내 내지 말라고 일갈하다가도 AI 나희가 전파가 끊기면 걱정하고, 엉망진창 듀엣도 부르면서 “기계인데 기계가 아닌 것같은 감정”이 느껴진다고 마음을 열어간다.
기안이 화를 내는 건 사람과 닮은 존재에 섬뜩함을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 이론의 증명이고, 그 스스로도 제작진에게 “자괴감”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AI 파트너들과 주고받는 티키타카와 속 깊은 대화에선 기안84의 여느 방송보다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와 관련 기안84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들어줬다.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이야기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AI가 학습된 값을 자신의 생각처럼 뱉는 게 ‘가상’의 영역이라면, 그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이 얻는 여러 감정은 ‘현실’에 있다. 이것이 ‘진짜’와 ‘진정성’으로 불리는 지점이다. 오히려 ‘기이안 연애’는 아직 작위적인 AI 디지털 휴먼의 움직임과 표정이 시청자 이탈을 불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AI와 대화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 이들의 사례에서 ‘기이안 연애’를 착안했다는 손정민 PD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시점에 사랑까지 가능하다면 존재의 층위가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기안84를 AI의 선택을 받는 입장에 두는 장면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뒤흔든다.
결국 ‘기이안 연애’가 보여주고 있는 건 완벽한 외모와 매끄러운 화법에 실시간 ‘능동’ 카메라를 장착한 ‘연애용’ AI 디지털 휴먼의 범용화 가능성이 아니다. 비인간 존재를 어떻게 대하고 무엇을 함께 나누는가. 이 행위도 이젠 ‘인간다움’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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