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정명달 기자]철강·석유화학 등 전력다소비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활용한 전력구매계약(PPA)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특히 기업이 장기간 전기요금을 선납하고 원전 운영자는 이를 장기운전과 설비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의 원전 PPA를 도입해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 공급과 산업계의 비용 부담 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파주시을)은 9일 안호영·김주영·박해철·김소희 의원과 공동으로 ‘무탄소 PPA 확대와 전통산업 경쟁력 강화’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에너지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K-GX 시대 에너지 국가전략 연속토론회’의 두 번째 행사로, 탄소중립 시대 국가 에너지 정책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재생에너지 중심 PPA 넘어 원전 등 무탄소 전원 활용해야
이날 논의의 핵심은 현재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PPA의 범위를 원전 등 다양한 무탄소 전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강민구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감축이 어려운 산업은 생산 특성상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간헐적인 전력 공급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PPA 대상에 포함하고, 기업이 신규 원전이나 재가동 원전의 투자비와 위험 일부를 부담하는 대신 장기간 전력을 공급받는 민간 투자연계형 모델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도화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도 과제로 제시됐다. 강 변호사는 전기사업법과 원자력안전법 개정 또는 가칭 ‘원전 재가동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관련 제도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CAPN 사례 주목…“장기계약으로 원전 투자재원 확보”
해외 사례를 활용한 제도 설계 방안도 제시됐다.
황재훈 변호사는 프랑스의 ‘원자력발전량 할당계약(CAPN)’을 소개하며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전력다소비 기업이 장기간 안정적인 원전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모델을 설명했다.
CAPN은 원전의 국영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10~15년 동안 원전 발전량의 일부를 전력다소비 기업에 배분하고, 기업이 발전비용과 발전 위험의 일부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를 국내 여건에 맞게 활용할 경우 원전 운영에 필요한 장기 재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력다소비 기업에는 안정적인 전력 조달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산업계 “무탄소 전력 확보가 탄소중립·산업경쟁력 좌우”
전문가와 산업계에서는 무탄소 PPA 확대가 단순한 에너지 조달 수단을 넘어 국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손병수 포스코홀딩스 전략에너지사업실장은 철강산업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탄소감축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실장은 기업이 정부의 관리체계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통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뿐 아니라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큰 만큼 산업 경쟁력을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SMR과 원전, 수소 기반 전원 등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원의 PPA 활용을 확대하고, 정부의 정책 로드맵을 기업에 명확하게 공유해 중장기 투자와 사업계획 수립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에는 요아킴 피셔 주한덴마크대사관 상무참사관과 고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수소경제기획과장도 참여해 무탄소 에너지 확대와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박정 의원 “에너지 정책과 산업정책 함께 설계해야”
박정 의원은 무탄소 PPA 확대를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체계 개선과 함께 관련 법·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철강과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과 고용을 이끌어 온 핵심 산업”이라며 “이들 산업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탈탄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활용하는 PPA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산업계가 감당해야 할 비용과 투자 불확실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탄소 PPA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입법·정책 수단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번 토론회가 K-GX 시대 국가 에너지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연속 논의의 두 번째 자리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재생에너지 국산화와 해상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주제로 후속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며 “현장의 의견을 정책과 입법에 반영해 실질적인 에너지 국가전략과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