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민경원 기자] 산이 붉고 노랗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 경남 함양으고 가보자. 대한민국 최초 국립공원인 지리산을 품은 함양은 깊은 계곡과 천년의 숲, 오래된 서원과 산중 고찰이 한데 어우러져 걷는 곳마다 서로 다른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올가을에는 산을 하나씩 정복하는 재미도 더해졌다. 함양군의 15개 명산을 오르는 산악관광 콘텐츠 ‘오르GO 함양’의 15좌 완등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군은 이를 기념해 기존 완등자에게 산삼을 증정하고 신규 참가자에게 포인트를 제공하는 가을 이벤트를 마련했다.
지리산의 가을 속으로…칠선계곡·한신계곡 따라 걷다
함양 여행의 시작점은 역시 지리산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전체 면적이 483.022㎢에 이르며 3개 도, 1개 시, 4개 군에 걸쳐 거대한 산세를 펼쳐놓는다.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서는 칠선계곡과 한신계곡을 만날 수 있다.
산세가 웅장한 만큼 가을 풍경도 입체적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는 물과 바위, 숲이 만들어내는 지리산 특유의 깊은 풍광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다. 단풍이 시작되면 산 전체가 계절의 색으로 바뀌면서 걷는 구간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지리산을 즐기는 방법은 아니다.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숲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함양의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5개 산 모두 올라볼까”…‘오르GO 함양’ 완등자 1500명 돌파
등산을 좋아한다면 여행을 일종의 ‘도전’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함양군이 운영하는 ‘오르GO 함양’은 지역의 15개 명산을 하나씩 오르고 인증하는 산악관광 콘텐츠다. 최근 15좌를 모두 오른 완등자가 15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참여가 늘었다.
군은 가을 산행철을 맞아 완등자와 새롭게 도전하는 여행객 모두를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한다.
9월 30일을 기준으로 2026년 15좌 완등에 성공한 참가자 전원이 추첨 대상이다. 이 가운데 15명을 선정해 함양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산삼을 증정한다.
처음 산행에 도전하는 여행객을 위한 혜택도 있다. 9월 9일부터 30일까지 ‘오르GO 함양’ 앱에 새로 가입한 뒤 1개 산의 인증을 마치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참가자 중 15명을 추첨해 함양사랑상품권으로 환급할 수 있는 앱 포인트 1만 점을 지급한다.
단순히 정상에 오른 뒤 돌아가는 산행에서 벗어나 ‘15개 산 완등’이라는 목표를 만들고, 산행 이후 지역 곳곳으로 여행 동선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함양군 관계자는 “앞으로도 ‘오르GO 함양’을 더욱 발전시켜 함양의 산을 알리고, 산행을 계기로 지역 곳곳을 방문하고 머무르는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며 “선선한 가을을 맞아 함양의 아름다운 산을 오르며 건강도 챙기고 이벤트의 즐거움도 함께 누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120여 종 나무가 1.6km…천년의 숲 ‘상림공원’
산에서 내려왔다면 함양읍 교산리 상림공원으로 여행의 속도를 낮춰보자.
상림공원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으로 알려져 있다.
갈참나무와 졸참나무를 비롯해 120여 종의 나무가 약 1.6km에 걸친 둑을 따라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 사람이 만든 숲이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도심 공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가을에는 숲의 매력이 더욱 짙어진다. 나무마다 단풍이 드는 시기와 색이 달라 초록과 노랑, 주황, 붉은빛이 겹쳐지고 그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높은 산을 오르지 않고도 함양의 가을을 느끼고 싶다면 부담 없이 걸어볼 만한 곳이다.
1552년부터 이어진 시간…남계서원에서 만나는 함양의 선비문화
함양의 가을은 자연에서 역사로 이어진다.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함양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조선시대 학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사액을 받은 서원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돼 있다.
역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유재란 당시 건물이 소실됐고 이후 17세기에 복원과 중건 과정을 거쳤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존속하며 지역 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다.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공간이 가진 절제된 분위기에 집중해볼 만하다. 서원 건축과 주변 자연이 어우러져 지리산 산행이나 상림공원과는 또 다른 차분한 여행을 만들어준다.
해발 920m 산중에서 만나는 고요함…지리산 영원사
함양의 고찰을 찾아가는 길은 그 자체가 여행이 된다.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영원사는 해발 920m 고지에 위치한다.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서산대사를 비롯한 선지식들이 머물며 수행했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너와를 얹은 100칸 이상의 전각을 갖췄을 만큼 규모가 컸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피해 가지 못했다.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이 소실됐다.
현재 남아 있는 주춧돌과 부도 등에서는 과거 사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번화한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산중의 정적이 오히려 영원사의 매력이다.
단풍이 내려앉은 지리산을 걸은 끝에 고찰을 만나는 과정까지 여행의 일부로 삼기에 어울린다.
877년 창건된 영각사…불타고 다시 일어선 천년 고찰
서상면 상남리의 영각사에서는 또 다른 시간을 만난다. 영각사는 신라 헌강왕 3년인 877년 심광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조선시대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며 사세를 키웠고, 한때 대웅전을 비롯한 19동의 건물과 13개의 소속 암자를 거느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1834년 화재로 피해를 입었고 1950년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졌다. 당시 귀중한 문화유산이었던 화엄경판도 소실됐다. 이후 화엄전과 극락전 등이 복원되면서 다시 수행 공간으로서 모습을 갖춰왔다.
영각사의 매력 역시 거대한 건축물보다는 산과 사찰이 함께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있다. 가을 산의 정취 속에서 오랜 시간 흥망을 반복한 사찰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