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방·안보, 경제·산업, 첨단 과학기술, 인적교류, 문화, 국제평화 등 6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데 이어, 불과 5개월 만에 이 대통령이 프랑스를 국빈방문하면서 양국 관계의 구체적인 협력 청사진을 마련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한-프랑스 공동언론발표에서 "마크롱 대통령님과 저는 오늘 회담을 통해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와 역량을 토대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내실 있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여섯 가지 협력 방향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먼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국방·안보 협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지난 4월 정상회담에서 타결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개정의정서에 서명하고 정보교환 체계를 정교화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양국 군 간 협력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논의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다음 주 서울에서 양국 공군의 '페가스' 합동훈련이 실시되고 올해 하반기에는 양국 해군의 상호 기항도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군 사이 상호이해와 운용성을 높이고 더욱 긴밀해진 전략적 공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프랑스의 기술력과 한국의 제조역량을 결합한 호혜적 방산 협력사업도 적극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산업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양국 교역액 2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국빈방문을 계기로 양국 20여개 기업이 참여하는 한-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열려 첨단기술과 미래산업 분야의 협력과 투자 기회를 모색한다.
산업경쟁력 제고와 지식재산 협력 분야 양해각서도 체결됐으며, 코트라와 비즈니스 프랑스 간 협력 문건을 통해 상대국 진출기업에 대한 지원체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양국 기업들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고 서로의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양자, 우주, 원자력, 바이오 등 첨단산업과 과학기술 분야 협력도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양국은 지난 4월 체결한 AI·반도체·양자기술 협력의향서에 이어 양국 스타트업의 상호 시장 접근 확대와 기업·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0년째 이어온 한-불 우주포럼의 공동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간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우주산업 진흥 협력 이행 약정도 맺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지난 4월 합의한 원자력 전 주기 협력을 발전시켜 연구개발과 연료 공급 분야 협력문건을 추가로 체결했다. 차세대 원자로 개발과 중장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민간 원자력 협력을 위한 고위급 대화채널도 개설하기로 했다.
양국 국민, 특히 미래세대 간 교류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1974년 체결된 한-불 항공협정은 10년 넘는 협상 끝에 개정됐다. 양국은 편명 공유를 통한 노선 확대와 중장거리 항공 네트워크 확충, 위험 발생 시 상호지원 강화, 친환경 운항 요건 등을 새 협정에 반영했다.
오는 10월 1일부터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참여 대상 확대를 위한 개정 협정도 발효된다. 지난 4월 체결된 언어 보조교사 교환 파견 양해각서에 따라 오는 10월부터 프랑스에 한국인 보조교사가 시범 파견된다. 열두 차례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파리-사클레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양국 청년 연구자들의 교류와 공동연구도 확대하기로 했다.
양국 경찰 간 치안협력 합의문을 통해 초국가범죄 대응 공조도 강화한다. 학생과 기업인, 예술가 등 장기체류자의 정착 지원을 위한 영사 협력 채널도 확대하기로 했다.
문화산업 협력 역시 이번 국빈방문의 핵심 성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전날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을 언급하며 양국이 영상산업 발전과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한 총 10억유로 규모의 '뤼미에르 파트너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 문화부는 영화산업 인재 양성과 공동투자 활성화 등을 담은 문화협력 문건도 새롭게 체결했다.
이 대통령은 "영화산업의 태동과 성장을 이끌어온 프랑스와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뛰어난 제작 역량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이 함께 손을 맞잡고 '제7의 예술'로 불리는 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 대응도 협력 의제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이 올해 G7 정상회의에 참여한 것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G7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 해결에 책임 있게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 회복을 위해 공조를 이어가고,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평화 회복과 재건을 위해서도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한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지지와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동북아와 유럽의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히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 양국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계속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5개월 전 서울에 이어 오늘 다시 파리에서 지난 140년간 쌓아온 양국의 깊은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140년을 다시 준비해 가기로 했다"며 "한국과 프랑스가 더 깊이 연결되고 협력의 지평이 넓어질수록 양국 국민들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미래세대들은 더 많은 기회와 희망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이날 프랑스 국빈방문 첫 공식 일정으로 파리 개선문 광장의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약 1분 30초간 묵념한 뒤 헌화했으며, 방명록에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한국전 기념 동판을 둘러보고 현장에 나온 참전용사와 유족들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이들과 한 명씩 손을 잡으며 "감사합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인정받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참전용사 유족에게는 "삼촌의 희생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한번 오세요"라고 말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자신의 X에 헌화 사진을 공유하며 "프랑스는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를 함께 지켜준 나라"라며 "파리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의 묘를 찾아 국경을 넘어 평화를 지켜주신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렸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며 "그 위에 쌓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적었다.
이후 이 대통령은 파리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마크롱 대통령과 약 2시간간 단독 오찬을 함께했다. 이어 양국 대표단이 합류한 가운데 약 66분간 확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정상회담 계기 16건 협력 문건…삼성-미스트랄AI 협약도
확대회담 후에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국방·안보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 문화·인적교류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건의 협정과 MOU가 체결됐다. 이 가운데 정상회담 후 양 정상이 임석한 가운데 채택한 문건은 9건이다.
양국은 우선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개정의정서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양국 간 군사정보 교류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향후 국방·방산 협력 확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항공협정도 약 10년간의 협의 끝에 개정했다. 개정의정서에는 공정경쟁 질서 확립과 보안·안전 기준 강화, 환경 및 지속가능한 발전 등 항공협력 현대화 내용이 담겼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AI·반도체·양자기술 협력을 구체화했다. 양국 정부와 연구기관, 스타트업 간 공동 연구개발(R&D)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투자 유치 등을 통해 AI와 양자 분야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업과 연구기관 간 교류 및 사업기회 발굴을 추진한다.
우주산업 진흥 협력 이행약정도 체결해 양국의 우주산업 정책 정보를 교환하고, 우주 분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호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등 첨단산업 분야의 협력 기반을 넓히기로 했다.
산업협력 분야에서는 장관급 산업전략대화를 신설하고 분야별 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산업정책과 교역·투자, 공급망·핵심광물, 산업기술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
이 밖에도 문화창조산업 활성화와 공동투자를 위한 '문화 협력에 관한 의향서', AI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지식재산 정책 분야 교류를 확대하는 '지식재산 협력 MOU', 원자력 연료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장기 농축역무 공급 협력 의향서' 등도 채택됐다.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협약도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반도체 관련 노하우 보호가 가능한 삼성전자 전용 사내용 AI 모델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대통령 임석 하에 서명·교환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별도로 체결된 협력 문건도 있었다. 먼저 양국 경찰청은 '치안협력 합의문'에 서명하고 초국가범죄에 공동 대응하고 도피사범 추적 등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양국 경제사절단 파견과 스타트업 정보 공유 활성화를 위한 '비즈니스 협력 MOU', 바이오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생명공학 분야 협력 MOU'와 '식물과학 분야 협력 MOU', '바이오기술 분야 양자기술 협력 MOU' 등도 포함됐다. 양국 과학기술 대학 간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대학 간 협력 MOU'와 기초학문 연구인력 교류 확대를 위한 '수학·물리 분야 협력 MOU' 등도 채택됐다.
이 밖에도 양국은 전·평시 군수지원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조속히 체결하기로 합의하고 세부 문안을 협의 중이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공동연구 등을 위한 원자력 연구개발 협력 MOU도 별도의 계기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전했다.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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