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선택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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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선택이 아니라 아동의 권리다

베이비뉴스 2026-09-09 08:10:00 신고

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편집자 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이 시기의 아동을 미성숙한 인간에서 성숙한 성인의 상태로 가는 사회화의 단계로 인식하는 전통적 관념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다. ⓒ베이비뉴스

우리 사회는 영유아기 아동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오늘을 누려야 할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내일의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미완의 존재로 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영유아 아동의 일상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영아기부터 “OO 발달”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교재·교구 마케팅에 노출되고,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생길 만큼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렇게 인지 발달과 성취만을 독려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영유아기 아동을 독립된 권리 주체가 아닌,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훈련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05년 채택한 일반논평 제7호 “유아기 아동권리의 이행”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 시기의 아동을 미성숙한 인간에서 성숙한 성인의 상태로 가는 사회화의 단계로 인식하는 전통적 관념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영아를 포함한 아동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권리를 지닌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동, 특히 영유아기 아동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 왔을까.

◇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은 문제

올 가을부터 유아 대상 학원의 레벨테스트가 금지된다. 정부는 만 36개월 미만 영아에 대한 인지 중심 교습을 금지하고, 그 이상 연령대에도 하루 3시간을 넘는 수업을 제한하는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지난 4월 발표했다.

2025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른바 '4세 고시', '7세 고시'로 불리는 극단적 조기 사교육이 아동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유아기 사교육 실태조사와 정보공개 의무화, 관련 법령 마련을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심의에서 이미 한국 아동의 학업 부담과 사교육 과잉을 우려사항으로 명시했다. 또한 2019년 5·6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따른 최종견해에서도 입시 경쟁에 매몰된 아동의 삶은 다시 지적됐다.

이번 정부의 규제 조치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 부작용으로 불거진 뒤에야 나온 뒤 늦은 대응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사이, 학업 경쟁과 그에 따른 부담을 느끼는 연령대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한때 입시를 앞둔 청소년의 문제였던 것이 초등학생 의대반 현상을 거쳐, 이제는 취학 전 영유아의 문제가 된 것이다.

◇ "발달에 나쁘다"를 넘어 "놀 권리 침해다"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아동발달, 아동심리, 유아교육 등의 영역에서 우려 섞인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영유아기 과잉 조기학습이 정서 및 뇌 발달에 적합하지 않으며, 신체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05년 채택한 일반논평 제7호 '유아기 아동권리의 이행'은 이 문제를 다른 층위에서 짚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이 일반논평을 만든 배경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당사국 심의 보고서에 유아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았고, 있더라도 아동 사망률, 출생등록, 보건의료에 대한 설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에 위원회는 협약의 더 넓은 함의를 유아기에도 적용할 필요성을 느꼈고, 유아를 협약상 권리를 온전히 지닌 주체로 다룰 필요성을 명시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영유아를 지금 이 순간 놀이와 휴식을 누려야 할 권리 주체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가”

일반논평 제7호는 특히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휴식, 여가, 놀이, 오락 활동, 문화생활 및 예술에 대한 아동의 권리)의 이행에 당사국들이 충분히 유의하지 않았음을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놀이는 아동이 가지는 고유한 권리일까?

권리는 사회나 어른들이 보기에 유익하거나 미래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권리는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인정받아야 얻어지는 자격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 역시 미래를 준비하는 존재이기 전에,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인격체다.

놀이는 아동이 자신의 시간과 일상을 스스로 선택하고, 탐색하고 상상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정해진 목적이나 성과를 전제로 하지 않는 놀이가 그 자체로 아동의 권리로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다.

놀이는 인지나 정서 등 아동의 발달을 돕기 위해 허용되는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완결된, 침해해서는 안 되는 영유아기 아동의 권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 남은 과제

규제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유아기 아동의 시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는 이제 개별 가정의 몫이나 보호자의 사적 선택으로만 남겨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시간을 아동권리의 관점에서 어떻게 채울 것인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의 이행은 형편이 될 때 베푸는 복지의 개념이 아니라 국제법상 국가의 의무다.

이번 조치가 그 의무를 뒤늦게라도 이행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그리고 규제 한 줄에서 멈추지 않고 '아동의 권리'라는 관점의 전환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동의 하루와 일상은 어른의 불안이 아니라 아동 자신의 권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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