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인 지역 갈등 이슈가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대구·경북, 이른바 'T·K'라 불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의 주요 정책과 국책사업 과정에서의 '홀대론'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해당 지역민들은 지역의 대표 국립대인 경북대가 정부의 대규모 대학 육성 사업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신 데다 신공항 지원과 미래산업 육성 등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얼마 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에서도 대구·경북 출신 인사를 찾아보기 어렵고 정부 주요 인사에서도 T·K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은 정부·여당에 대한 반감 여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T·K 지역민들의 반감이 정부·여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수도권·호남 지역에 대한 반감으로 전이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 한동안 잠잠했던 지역 갈등이 다시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T·K 청년들 중심으로 홀대론 확산…"굵직한 국책 사업서 왜 자꾸 우리만 소외되나"
지난 1일 교육부는 현 정부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선도할 거점국립대 3개교로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를 선정했다. 이번 선정은 교육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의 후속 조치로 9개 거점국립대 가운데 3곳을 선도대학으로 선정해 '브랜드 단과대학'과 '인공지능(AI) 거점대학' 사업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에 선정된 3개 대학은 연간 400억원 수준의 국비를 지원받는 나머지 6개 거점국립대보다 무려 600억원 가량을 추가로 지원받을 전망이다.
T·K 지역 내에서는 이번 선정 결과를 승복할 수 없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정부의 거점국립대 선정 결과 발표 직후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경북대 게시판에는 정부의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 대상에서 경북대가 제외된 것을 비판하거나 선정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시물이 잇따라 인기 게시물에 올랐다. 각종 대학평가와 입시 지표에서 거점국립대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유지해 온 경북대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영국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지난 6월 발표한 '2027 QS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경북대는 세계 공동 481위로 부산대(공동 449위)에 이어 국내 거점국립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전북대는 677위, 전남대는 781~790위, 충남대는 801~850위 등이었다. 입시 경쟁률 부분에서도 경북대 다른 거점국립대에 크게 앞서고 있다. 경북대는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4510명 모집에 6만302명이 지원해 평균 13.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거점국립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경쟁률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T·K 지역 청년들 사이에서는 지난 6·3 지방선거 결과와 이번 대학 선정 결과를 연결 지어 해석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경북대가 위치한 대구만 제외하고 이번에 선정된 3개 대학이 위치한 광역자치단체에선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가 단체장에 당선됐다는 게 근거로 지목됐다. 부산대가 위치한 부산에선 국민의힘 박형준 전 시장을 꺾고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시장이 당선됐다. 충남대가 위치한 대전도 국민의힘 이장우 전 시장에서 민주당 허태정 시장으로 지방권력이 교체됐다. 전남대가 자리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민형배 시장이 당선됐다.
지역 학계에서도 이번 결과를 두고 정치적 영향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번 거점국립대 육성 사업 뿐 아니라 크고 작은 국책 사업에서도 고배를 마시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지역 청년들의 반감이 커질 대로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경북대는 대형 국책사업인 국가연구소(NRL 2.0) 사업에서도 탈락했다. 해당 사업은 대학 부설 이공계 연구소를 세계적인 연구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선정 기관에 10년간 최대 100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경북대는 지난해 2개 연구소가 1차 평가를 통과하고도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데 이어 올해 재도전에서는 지난 4월 말 발표된 예비평가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제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요소가 작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동안 경북대가 거점국립대 가운데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해 온 학생들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인 만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조건적인 의심 보단 지역별 안배가 고려됐을 가능성도 염두할 필요가 있다"며 "최종적으로 영남과 호남, 충청에서 각각 한 곳씩 선정된 것을 보면 지역균형 차원에서 일정 부분 권역별 안배가 고려됐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공항 지원, AI 거점서도 밀린 T·K…새로운 與 지도부 지역 출신 '0명'에 지역 감정 고개
T`K 지역 사회에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대구·경북 지역의 주요 현안과 국책사업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일례로 지역 최대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두고 정부의 재정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현재 대구에 있는 K-2 군공항과 대구국제공항의 민간공항 기능을 경북 군위·의성 일대로 함께 이전해 군·민간 공항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역 주민들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은 부분은 바로 사업비 조달 방식이다. 당초 군공항 이전은 대구시가 새로운 군공항을 건설해 국가에 기부한 뒤 국방부로부터 기존 K-2 군공항 부지를 넘겨받아 개발해 사업비를 충당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군공항 이전 사업비만 약 11조5000억원에 달해 사업 시행자인 대구시가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과 사업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구시는 현행 방식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사업비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와 함께 신공항 건설을 국가 주도 사업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하게 결정된 사항은 없다.
T·K 지역에서는 정부의 미래 성장산업 육성 정책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로봇 등 정부가 국가 차원의 투자를 예고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T·K 지역에만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이다. 앞서 대구상공회의소와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대구경영자총협회, 경북경영자총협회 등 지역 경제단체들은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 직후 공동 입장을 내고 T·K 지역이 반도체와 AI·로봇 등 국가 핵심 성장산업 육성 과정에서 사실상 소외됐다며 정부 차원의 균형 있는 투자와 지원을 요구했다.
'T·K 소외론'은 최근 새롭게 꾸려진 여당 지도부에서 대구·경북 출신 인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달 17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출생지역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대구·경북 출신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석 당대표와 최민희 수석최고위원은 서울 출신이며 박선원 최고위원은 전남 나주, 서미화 최고위원은 전남 무안 출신이다. 이성윤 최고위원과 한민수 최고위원은 각각 전북 고창과 익산에서 태어났다. 당연직으로 최고위원회에 참여하는 한병도 원내대표 역시 전북 익산 출신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에는 경남 마산 출신인 전용기 의원과 강원 삼척 출신인 권미경 한국노총 전국공공연대노조연맹 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이재명정부 2기 내각에서도 T·K 출신 인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각에서 대구 출신인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내정자가 새롭게 이름을 올리면서 대구·경북 출신 인사가 보강됐지만 수도권과 호남은 물론 같은 영남권인 부산·울산·경남(PK)과 비교하면 그 수는 월등히 적었다. 국무총리와 장관급 인사 21명을 출생지역 기준으로 살펴보면 대구·경북 출신은 이 내정자와 경북 안동 출신인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등 2명으로 전체의 9.5%에 그쳤다. 반면 수도권과 호남 출신은 각각 6명으로 두 지역을 합치면 전체 21명 가운데 12명(57.1%)을 차지했다.
최근 이러한 'T·K 소외론'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수도권·호남 지역에 대한 반감으로 전이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 한동안 잠잠했던 지역 갈등이 다시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 관계자는 "최근 T·K 지역 분위기를 보면 과거 지역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와 크게 다를바 없다"며 "가뜩이나 좁은 국토에 지역 간 갈등까지 심화될 경우 국론 분열에 따른 국가 경쟁력 약화라는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반복되면 개별 정책이나 사안에 대한 불만이 단순한 실망을 넘어 집단적인 상대적 박탈감으로 굳어질 수 있다"며 "특히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지원이나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험이 누적될수록 '우리 지역만 차별받고 있다'는 집단 정체성이 강화되고, 그 원인을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인식되는 다른 지역이나 집단에서 찾으려는 심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감정이 장기간 누적되면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지역 간 반감과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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