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요청으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비롯한 군사적 기여 방안을 검토 중인 한국 정부를 향해 이란이 한국을 콕 집어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한글로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호르무즈 파병 논란이 국제사회뿐 아니라 국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까지 확산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조속한 회복,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자유로운 통항을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 한국 겨냥해 이례적 '한글 경고'…"미국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 계정에 직접 한글로 작성한 입장문을 올리고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작전 참여 가능성을 강하게 견제했다.
바가이 대변인은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면서도 "현재 이란 국민이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의 파병 검토 가능성을 겨냥했다.
그는 특히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주권과 책임을 가진 어떠한 국가도 미국의 압력과 협박에 굴복해 위대한 이란 국민을 상대로 한 침략 행위와 끔찍한 범죄의 공모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바가이 대변인은 한글 메시지와 함께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경고성 문구가 담긴 사진도 게시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호르무즈 해협 역할 확대를 압박하는 가운데 한국을 특정해 공개적으로 파병 반대 메시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부 "관련국 포함 국제사회와 긴밀히 소통"
우리 정부는 이란의 공개 경고에 즉각적인 맞대응보다는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날 "정부는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조속한 회복,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우리 포함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위해 관련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 군의 병력과 자산을 활용한 군사적 기여 방안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이란이 한국을 직접 지목해 경고하면서 정부의 선택에도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이 전투병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적 주둔이나 작전 참여 자체를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가 검토 중인 비전투 임무나 군사적 지원 역시 이란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7일 청와대 앞 시민사회 "어떤 방식으로든 참전해서는 안돼"
국내에서도 파병 반대 목소리가 잇따랐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반대했다.
이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벌이는 이란에 대한 침략 전쟁은 국제법상 불법적인 전쟁"이라며 "한국이 이 전쟁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전쟁 지역에 병력이나 군사 자산을 보내 미국의 군사작전을 뒷받침할 경우 이는 단순한 비전투 임무가 아니라 "불법 침략 전쟁에 가담하는 것"이라며 파병 검토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정부의 호르무즈 파병 검토설이 잇따라 보도된 가운데 열린 것으로, 파병 문제가 정치권을 넘어 시민사회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민주당 내부도 충돌…이기헌 "전쟁 참여" vs 박지원 "어느 정도 파병 불가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파병을 둘러싼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기헌 의원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해 "어떠한 명목으로도 우리 군의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비전투 병력이나 군사 자산을 보내더라도 결과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비전투 병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병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불가피론을 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일정 수준의 파병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다만 전투병과 파견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김병주 의원도 현재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의 파병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전쟁이 종료된 이후 우리 상선 보호를 위한 목적이라면 파병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아직 공식적인 당론을 정하지 않은 채 국회 국방위원회 등을 통한 의견 수렴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파병안이 국회 동의 절차에 들어갈 경우 민주당 내부의 찬반 구도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동맹·국익 고려해야…정부엔 투명한 설명" 요구
국민의힘에서는 파병 자체에 반대하기보다 한미동맹과 국익,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김건 의원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행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한국도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고, 안철수 의원 역시 앞서 "파병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미국의 경제·통상 분야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파병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정부가 파병을 검토한다면 국회에 관련 상황과 파병의 배경 및 실익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파병에 무조건 찬성하기보다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우리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혁신당·진보당 "파병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선"
조국혁신당은 파병 자체에 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장식 대표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반대한다며 미국의 파병 요구를 "동맹국 사이라도 도를 한참 넘어선 망언이자 무례"라고 비판했다. 파병할 경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만만한 나라'로 인식될 수 있고 향후 미국의 추가적인 참전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김준형 원내대표 역시 호르무즈 파병을 "정부가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한국군이 전쟁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전쟁 관여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진보당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르무즈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윤종오 원내대표와 전종덕·정혜경·손솔 의원은 파병이 장병과 교민, 기업, 선박뿐 아니라 국내 미군기지까지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국회가 파병 반대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란의 '한국 직접 경고'로 파병 논쟁 새 국면…정부 선택 주목
호르무즈 파병 논란은 이제 단순한 한미 간 군사 협력 문제를 넘어 한국이 이란과의 관계 악화와 군사적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것인지를 둘러싼 외교·안보 현안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의 파병 요구에 대해 국내에서는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 일정 수준의 군사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 한국군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 이란이 한국을 직접 지목해 "심각한 결과"를 경고하면서 실제 파병 시 우리 장병과 선박, 기업 등에 미칠 위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향후 구체적인 파병 규모와 임무, 병력·자산의 성격 등을 결정할 경우 국회 동의 여부를 둘러싼 여야 공방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폴리뉴스 박비주안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