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 내 1,300억 달러(약 175조원) 규모의 대형 원전 8기 건설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국내 기업들이 시공 및 기자재 공급에 대거 참여하는 방안이 확정 단계에 들어서며 국내 원전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신규 원전 총 8기 중 6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 모형인 AP1000, 2기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독자 모델인 APR1400을 채택하는 혼합 배치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7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이번 협력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폭증과 첨단 산업 진흥으로 심각한 전력난에 직면한 미국과, 해외 신규 원전 건설 시장에서 독보적인 적기 시공 역량을 입증해 온 한국의 이해관계가 정밀하게 맞물린 결과다. 양국은 이르면 오는 18일 전후로 예정된 정상회담 계기에 포괄적 협력 프레임워크 서명을 목표로 막판 조율을 진행 중이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합의에 따라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2,000억 달러는 에너지·첨단산업 분야로 할당되어 있다. 이번 1,3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8기 프로젝트가 최종 확정되면 전체 에너지 분야 투자 공약의 65% 이상을 단숨에 이행하게 된다.
정부와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그간 상업적 합리성, 투자 회수 가능성, 국내 기업의 직접 참여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원전 사업이 양국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최적의 대안으로 낙점됐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 8기 건설 추진이라는 대틀의 방향성에 합의한 뒤, 개별 프로젝트의 상업적 타당성과 투자금 분산 리스크를 다각도로 검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현재 94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 중이지만 평균 설비 연령이 40년을 상화하는 등 노후화가 심각하다. 1979년 스리마일섬(TMI) 사고 이후 30여 년간 신규 건설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현지 원전 기자재 제조 및 건설 엔지니어링 생태계는 고사 상태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와 글로벌 시장 분석 기관인 딜로이트 등은 미국 조지아주 보그틀(Vogtle) 3·4호기 건설 당시 수년의 공기 지연과 180억 달러 이상의 예산 초과를 겪렸던 사례를 지목하며, 미국 자체 공급망만으로는 폭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비롯해 국내 다수의 원전을 적기 및 예산 내 시공(On Time, Within Budget)하는 등 탁월한 원전 제조·시공 공급망을 유지해 온 세계 유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의 APR1400 모델은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Standard Design Approval)을 통과한 바 있다. 이는 미국 내 신규 건설 시 추가적인 기술 심사 절차 없이 즉각 건설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결정적 강점으로 평가된다. 경쟁국인 프랑스의 경우 NRC 심사가 중단된 상태이며,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적 이유로 미국 시장 진출이 전면 제한되어 있어 한국이 미국의 유일한 안보 파트너로 꼽힌다.
금융기관과 전력회사 입장에서도 이미 인허가와 시공 경험이 축적된 AP1000과 APR1400 원자로를 반복해서 건설하는 방식이 리스크 부담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프로젝트에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업체 선정 시 한국 업체를 우선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건설 자금은 한국 측 투자로 집행되지만, 미국 내 시공 역량을 보유한 회사가 드문 만큼 설계·조달·시공(EPC) 및 핵심 기자재 공급은 한국 기업들이 대거 수주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집행된 자금이 다시 국내 산업계로 환수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대형 주조·단조 주기기 공급 및 모듈화 제작을 맡을 것으로 보이며, 현대건설은 대형 원전 상업 시공 및 EPC 총괄 수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전기술·한전KPS는 원전 종합 설계와 유지보수·정비 서비스 분야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업적 수익성과 투자 리스크 분산에 관한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기당 15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초대형 사업인 만큼,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력 구매 계약(PPA)과 정부 보증 등 구체적인 조건 마련이 향후 협상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미 투자 1호 에너지 프로젝트가 연쇄적인 한국 원전 생태계의 미국 진출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뉴스로드] 고찬규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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