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연예기획사들이 밀집하며 '엔터테인먼트의 메카'로 불렸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상권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K팝 시장 성장과 함께 몸집을 키운 주요 기획사들이 넓은 사옥과 업무공간을 찾아 청담동을 떠나면서 과거 이들이 사용하던 건물에는 동물병원과 미용실 등 전문 서비스업이 하나둘 자리 잡고 있다. 연예기획사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청담동 상권이 높은 임대료와 지역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는 소비형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더걸스 소속사로 유명한 JYP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연예기획사가 청담동에 사옥을 마련했다.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청담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에 주요 업무시설을 운영했다. 이후 FNC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기획사들도 청담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일대에는 연예기획사뿐 아니라 헤어·메이크업숍과 스튜디오 등 관련 업종까지 모여들었다.
K팝 산업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주요 기획사들의 사옥 입지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 연예인 매니지먼트가 주요 업무였던 기획사들이 음반·공연·영상·팬 비즈니스 등을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임직원뿐 아니라 연습실과 녹음실, 촬영·제작시설 등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업무공간의 필요성이 느낀 대형 기획사들이 청담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JYP엔터테인먼트다. JYP는 2002년부터 청담동 도산대로 537을 비롯해 청담동 일대 여러 건물을 업무공간으로 사용했지만 2018년 강동구 성내동으로 본점을 이전했다. 당시 JYP는 청담동 사옥을 포함해 총 5개 건물에 사무공간과 트레이닝센터 등을 분산해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곳에 흩어진 업무·연습공간을 한곳으로 통합할 필요성이 커졌고 JYP 측은 사옥 이전 배경으로 경영환경 개선과 업무 효율성 증대를 꼽았다.
그룹 아이들(i-dle) 소속사로 알려진 큐브엔터테인먼트 역시 과거 청담동에 사옥을 두고 있었지만 2016년 성동구 성수동으로 본점을 옮겼다. 당시 성수동은 청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넓은 업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블락비 리더 출신 지코(본명 우지호)가 설립한 KOZ엔터테인먼트도 과거 청담동 도산대로90길 일대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이후 2020년 11월 하이브에 인수됐으며 현재 홈페이지에 안내된 주소는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42로 청담동을 떠나 하이브가 위치한 용산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과거 청담동에 자리했던 일부 연예기획사들이 성수동과 용산구 등으로 이동하면서 청담동에 집중돼 있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입지도 서울 곳곳으로 분산되는 모습이다.
청담동 일대 부동산 관계자들은 연예기획사의 잇따른 이전 배경으로 회사 규모 확대에 따른 공간 부족과 높은 임대료 부담 등을 꼽았다. 특히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사무실뿐 아니라 연습실과 녹음실 등 다양한 시설을 한곳에 확보해야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청담동의 입지적 한계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함형례 영동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과거에는 청담동에 연예기획사가 워낙 많아서 연예인들도 이곳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관련 업종도 함께 몰려 있었다"며 "지금은 과거와 비교하면 기획사가 많이 빠져나갔고 성수동이나 논현동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규모가 커지면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청담동은 임대료가 비싼 만큼 상대적으로 임대료 부담이 낮거나 큰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청담동 상권의 임대료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청담 상권의 임대료는 2024년 3분기 ㎡당 6만1900원에서 올해 2분기 6만5500원으로 5.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인근 압구정 상권은 ㎡당 5만2600원에서 5만7400원으로 9.1%, 도산대로 상권은 5만5600원에서 5만6400원으로 1.4% 각각 올랐다. 상승 폭은 압구정이 가장 컸지만 임대료 자체는 청담이 세 상권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과거 상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연예기획사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연예기획사들이 떠난 공간에는 과거와 성격이 다른 업종이 들어서고 있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과거 청담동 연예기획사들이 사용했던 건물에는 미용실과 동물병원, 항노화 클리닉 등 전문 서비스업이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과거 JYP엔터테인먼트가 사용했던 건물에는 현재 동물병원이 입점해 있다. 해당 병원은 일반적인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동물병원과 달리 반려동물 피부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특화 병원이다. 특정 질환에 대한 전문성을 앞세운 만큼 인근 주민뿐 아니라 전문 진료를 목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수요도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이다.
JYP가 청담동에서 사용했던 또 다른 건물은 현재 보이그룹 하이라이트(구 비스트)의 소속사인 어라운드어스엔터테인먼트가 사용하고 있다. 과거 JYP가 여러 건물에 분산해 운영했던 업무공간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공간은 전문 동물병원 등 과거와 전혀 다른 성격의 업종으로 채워지고 있는 모습이다.
큐브엔터테인먼트가 위치했던 청담동 125-20 건물 역시 현재 미용실과 항노화 클리닉 등 뷰티·의료 관련 업체들이 입점해 있다. 특히 미용실의 경우 최근 높아진 K뷰티 인기에 힘입어 내국인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관광객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고객들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거나 다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식 메이크업과 웨딩 스타일링, 헤드스파 등 다양한 K뷰티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담동의 산업 변화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입지 특성과 지역 내 소비 수요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특정 지역에 모여 얻는 집적 효과가 크지 않은 만큼 임대료와 업무공간 등을 고려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쉽지만, 미용·뷰티와 반려동물 등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업종은 지역의 소비력과 외부 방문 수요가 입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청담동은 구매력 높은 배후수요에 더해 K뷰티 등을 경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꾸준해 이들을 겨냥한 상권이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유정석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특정 지역에 업체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큰 시너지가 발생하는 업종은 아니기 때문에 입지를 결정할 때 임대료와 같은 비용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과거 청담동에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었지만 현재는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청담동에 있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는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담동은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고 유행과 소비문화의 변화가 빠른 지역인 만큼 미용·뷰티나 반려동물처럼 소비자의 취향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업종이 자리 잡기 좋은 환경이다"며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수요도 꾸준한 만큼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미용·뷰티 등 관련 업종이 상권을 형성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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