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공지유 김상윤 기자] 미국이 한국의 2000억달러(약 268조원) 규모 대미투자 가운데 1200억달러(약 161조원)를 활용해 미국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는 원전 8기 건설을 추진한다는 큰 방향에는 의견을 모았지만, 한국은 1200억달러 투자를 확약하기보다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합의문에 담는 쪽으로 미국과 조율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원전 투자액 1200억달러와 대미투자 1호인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발전소의 총사업비 223억달러를 단순 합산하면 1423억달러다. 전체 대미투자액의 71.2%에 해당한다. 미국의 원전 제안이 실제 사업으로 구체화하면 대미투자 2000억달러의 70% 이상이 원전과 가스발전을 중심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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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8기 투자 방향은 합의…1200억달러 투자 확약 관건
7일 국회와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미국 측은 지난달 한국의 대미투자기금 1200억달러를 활용해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한미 포괄적 협력체계를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 전체 투자액의 60%를 원전 사업에 배정하자는 요구다. 단순 계산하면 원전 한 기당 150억달러가 투입되는 규모다.
미국은 9월 중 관련 프레임워크에 서명하고 조속히 발표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오는 18일 최종 서명과 발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미는 미국에 원전 8기를 건설한다는 방향성을 합의문에 담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원전 부지와 사업자, 원자로 종류, 착공 시점 등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하지 않고 포괄적인 협력 목표만 제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원전 건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안까지 명시하기보다 프레임워크 차원에서 ‘8기 건설 추진’이라는 큰 방향을 합의문에 포함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관건은 원전 8기 건설이라는 협력 방향과 1200억달러 투자 확약을 분리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대미투자 2000억달러의 60%가 사업 조건도 확정되지 않은 원전 프로젝트에 한꺼번에 묶인다. 대형 원전은 사업 기간이 길고 공사비 증가와 준공 지연 위험도 크다. 부지와 사업자, 원자로 종류, 전력판매계약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액부터 못 박으면 한국이 향후 협상에서 움직일 공간도 줄어든다.
이에 정부는 원전 8기 건설을 공동 목표로 제시하되 투자액과 개별 사업을 확정하지 않은 포괄적·개괄적 프레임워크를 토대로 미국과 협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투자 여부와 규모는 향후 각 프로젝트의 수익성과 사업 조건을 따져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는 미국 투자위원회가 한국 측 협의위원회와 협의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사업만 추천하도록 규정한다. 이후 미국 대통령이 사업을 선정하면 한국도 국내 심의 절차를 거쳐 실제 투자 여부와 집행 규모를 결정한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 8기 건설을 추진한다는 방향과 1200억달러 투자를 확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우선 포괄적인 협력 틀을 만들고 개별 프로젝트의 상업성과 투자 조건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1호 엔시날도 사업비 223억달러…CCUS·알래스카 투자 등 남아
대미투자 1호 사업도 윤곽을 드러냈다. 한미전략투자운영위원회는 이날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발전소 사업을 1호 프로젝트로 의결했다.
엔시날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 대응해 총 6.3기가와트(GW) 규모의 발전소를 짓는 사업이다. 가스터빈 발전 1.4GW를 먼저 개발한 뒤 고효율 복합화력 4.9GW를 순차적으로 확대한다. 사업비는 최종 223억달러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 당초 198억달러 규모를 검토했지만 미국이 250억달러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한미는 최종적으로 223억달러 선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검토액보다 34억달러, 약 17% 늘어난 규모다.
원전 1200억달러와 엔시날 사업비 223억달러를 더하면 1423억달러다. 대미투자 2000억달러의 71.2%에 해당한다. 미국의 원전 제안이 모두 반영되고 엔시날 사업비 전액을 대미투자기금과 연결해 단순 계산하면 남는 금액은 577억달러에 불과하다.
다만 엔시날 사업비 전액이 한국 투자액으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확보할 지분과 프로젝트 차입 규모, 미국 측 출자액 등에 따라 실제 기금 투입액은 달라진다. 원전 1200억달러 역시 미국의 제안 단계인 만큼 1432억달러는 확정된 투자액이 아니라 현재 논의 중인 사업 규모를 단순 합산한 수치다. 여기에 탄소포집·저장(CCUS) 프로젝트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후속 후보까지 고려하면 2000억달러의 재원 배분을 둘러싼 한미 간 줄다리기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프로젝트 수익은 한데 모아 회수…‘리스크 풀링’ 방식은 유지키로
운영위원회는 이날 전체 투자 수익을 관리할 투자 특수목적법인(I-SPV) 운영계약안도 보고받았다. 개별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수익을 우산형 I-SPV에 모아 전체 투자 원리금의 회수 재원으로 활용하는 ‘리스크 풀링’ 구조는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후속 협상 과정에서 수익을 프로젝트별로 따로 배분하자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를 받아들이면 한 사업에서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부족분을 보완하기 어려워진다. 사업 하나가 실패할 때마다 한국이 해당 투자금의 손실을 떠안을 수 있어 정부가 확보한 원금 회수 안전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예를 들어 엔시날에서 충분한 수익이 났지만 CCUS나 원전 사업에서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면 엔시날 수익으로 전체 원리금의 회수 부족분을 보완할 수 있다. 엔시날 수익을 손실 사업에 다시 투입해 빚을 대신 갚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사업의 수익을 한데 모아 한국의 전체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원전이 전체 대미투자액의 60%를 차지하면 일부 원전 사업의 공사 지연이나 비용 증가가 전체 투자의 수익성과 회수 기간을 좌우할 수 있다”며 “정부가 원전 8기 추진 방향에는 뜻을 모으면서도 1200억달러를 합의문에 곧바로 못 박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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