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회사·외국은행 거쳐 달러 결제망 접근…제재 집행 딜레마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미국이 이란을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은행을 통해 매년 수십억 달러의 이란 자금이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서방 당국자와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란이 위장회사와 외국 금융기관을 통해 미국의 달러 결제망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활용하는 수법은 미국 은행에 직접 계좌를 개설하는 대신 위장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홍콩이나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위장회사를 세운 뒤 미국 은행과 환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현지 금융기관을 이용해 자금을 움직인다는 것이 WSJ의 설명이다.
이란이 위장회사와 환전업체 등을 복잡하게 연결하는 수법으로 실제 거래 주체를 감출 경우 최종적으로 환거래 결제를 처리하는 미국 은행도 이를 알지 못한 채 거래를 승인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집트 국영은행 방크 미스르의 UAE 지점이 이란의 미국 금융망 접근을 도운 것으로 지목됐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방크 미스르 UAE 지점은 2024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란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103개 업체를 위해 약 18억달러(약 2조4천억원)를 처리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방크 미스르 UAE 지점이 미국 금융기관에 환거래 계좌를 개설하거나 유지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미 재무부는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 은행을 거쳐 이동한 이란 관련 자금이 약 9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이란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융 기관에 이란 관련 거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도 이란의 달러 결제에 이용된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실제로 재무부는 방크 미스르 UAE 지점에 2차 제재를 부과하는 대신 미국 은행의 환거래 계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외국 은행을 완전히 차단할 경우 해당 은행이 사실상 존립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국제 금융 시스템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 은행 입장에서 환거래 서비스는 수수료뿐 아니라 예금을 통한 자금 조달 등 수익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미국 은행을 처벌할 경우 미국의 금융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단속을 강화하면 각국이 중국 위안화 등 대체 수단을 찾게 되면서 달러의 지배력이 약화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로펌 아킨검프의 제이슨 프린스 파트너는 "미국 정부가 한꺼번에 모든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면 목표와 반대되는 연쇄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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