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은의 영화보기] 왜 사는지 모르겠다면 한 대 맞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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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아은의 영화보기] 왜 사는지 모르겠다면 한 대 맞아볼 것,

여성경제신문 2026-09-06 16: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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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 사먹을 돈이면 다른 시간과 다른 세계, 다른 나를 살아볼 수 있는 좋은 세상입니다. 장르, 국가, 러닝타임 불문 보통의 애호가 입장에서 이런저런 영화를 보고 이모저모 이야기합니다.[편집자주]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IMDb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IMDb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충치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균 가운데 하나인 뮤탄스균은 자일리톨을 당으로 착각해 섭취하지만 에너지원으로는 활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뮤탄스균은 자일리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쓰기만 한다. 그것이 자일리톨의 충치 예방 원리다. <파이트 클럽> 속 현대인들은 뮤탄스균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직장과 예쁜 가구, 멋진 차와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집어삼키지만 허기는 가시지 않는다. 가진 것은 점점 많아지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고갈이다.

“어릴 땐 포르노를 봤다. 이제는 가구 목록을 본다.” <파이트 클럽> 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월급이 나오고 집에는 고심해서 고른 가구가 차곡차곡 들어차 있지만 정작 자기 삶에서는 별다른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고민하는 대신 어떤 소파와 어떤 식탁을 소유할지를 고민한다. 삶의 위기가 대단한 비극의 형태로 찾아온 것조차 아니다. 그의 재난은 별일이 없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채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간다. 환자도 아니면서 각종 중증질환 환자들의 모임에 참석해 남의 슬픔을 재료 삼아 운다. 처음 본 사람의 품에서 가짜 슬픔을 재료 삼아 오열하고 나면 그날만큼은 깊이 잠든다. “난 매일 밤 죽었고, 매일 밤 새로 태어났다.” 남의 죽음 가까이에 몸을 갖다 놓고서야 자기 삶의 감각을 되찾는 셈이다. <파이트 클럽> 은 시작부터 삶과 죽음, 잠과 깸, 섹스와 공허들을 정신없이 펼쳐놓는다.

그는 비행기에서 일회용 설탕을 뜯고, 일회용 크림을 넣고, 일회용 버터를 바른다. 낯선 도시에서 잠깐 만난 사람은 ‘일회용 친구’가 된다. "여행은 삶을 축소시킨다." 집도 사람도 음식도 모두 잠깐 쓰고 버릴 수 있는 크기로 줄어든다. 그렇게 보면 그의 삶 역시 그럴듯한 일회용품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동안 일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고 그것들을 모아 ‘나’라는 상품의 진열장을 완성한다.

그 진열장을 깨부수며 등장하는 사람이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이다.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소일을 하지만 밤이 되면 남의 집 뒤뜰에서 골프공을 날리는 남자다. 주인공의 집이 폭발해 가구와 살림살이가 통째로 날아간 날 타일러는 신나서 위로를 건넨다. “완벽을 찾지 마시오. 그런 건 다 유치한 허영심이라고.” 자기계발에 대해서는 더 야박하다. “자기개발은 자위행위에 불과해.” 평생 더 좋은 내가 되라고 독촉받아온 인간에게 타일러는 정반대의 처방을 내민다. 더 나아지려고 하지 말고 일단 망가져 보라는 것이다.

그 방법도 썩 우아하지 않다. “나를 최대한 세게 한 번 때려봐.” 주먹질이 시작된다. 시작은 타일러와 주인공이 술집 주차장에서 서로 얼굴을 후려갈기던 정도의 '파이트 클럽’, 그곳에 하나둘 사람이 모이고 지하에선 서로를 두들겨 패는 집단이 결성된다. 멀쩡한, 혹은 멀쩡해 보이는 회사원이 심리상담과 명상과 자기계발서 코너를 전전하다가 결국 발견한 마음의 평화가 주차장에서 다른 남자에게 얻어맞는 일이라니.

타일러는 말한다.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돼. 상처는 훈장이야." 한바탕 얻어맞고 나면 화자는 오히려 세상이 덤덤해졌다고 느낀다. 구원받은 것 같다고도 한다. 직장 상사가 무슨 말을 하든, 집이 터져버렸든,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보여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금 전까지 누군가의 주먹이 자기 얼굴을 정확하게 타격했고 입에서는 피가 난다.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얻어맞기와 쥐어패기의 강도가 높아질 수록 살아있다는 감각은 강해지고 그 감각은 중독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망가져.” 특히 타일러가 화자의 손등에 화상을 입히는 장면은 <파이트 클럽> 이 고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확히 보여준다. 고통에서 정신을 돌리려는 화자에게 타일러는 말한다. “피하지 마. 이건 네 고통이야.”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하지 말고, 다른 생각으로 도망치지도 말고, 지금 내 살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느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파이트 클럽> 의 폭력은 적어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제압하기 위한 폭력이라기보다 자기 몸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가깝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얻어맞으면서라도 무감각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소비와 직업과 생활양식이 대신 설명해주던 ‘나’를 걷어낸 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피 흘리고 아파하는 몸이라면 그 몸만큼은 확실히 자기 것이다. 타일러가 “다 잃어봐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돼”라고 주장할 때 그 말이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유다.

작품은 이 개인적인 공허를 일반적 문제로 키운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고아다.” 대공황도 세계대전도 겪지 않았지만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는 세대라는 것이다. 커다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진 사람들과 달리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벌고,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자신이 특별히 중요한 인간이라는 감각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타일러는 그 질서를 향해 계속 침을 뱉는다. “직업이 다가 아니야. 돈도 다가 아니야. 무슨 차를 타는지, 지갑이 얼마나 두둑한지 그딴 건 상관없어.” 그리고 덧붙인다. “우린 움직이는 쓰레기야.” 물질문명 속에서 사람에게 가격표는 잔뜩 붙었지만 정작 인간 자체의 가치는 증발해버렸다는 진단이다. 영화 속 남자들이 밤마다 지하실에 모여 얼굴을 갈아버리는 건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기괴하지만 합리적인 노동조합 활동처럼 보인다. 낮에는 회사의 부속품으로 일하고 밤에는 서로의 얼굴을 부숴가며 ‘나는 부품이 아니다’를 확인한다.

문제는 이 치료법이 너무 잘 먹혔다는 것이다. 파이트 클럽에 모였던 남자들은 어느 순간 타일러를 교주처럼 따른다. 이들은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데서 만족하지 못하고 프랜차이즈 카페와 공공 조형물을 부수고 마침내 신용사회의 기록 자체를 날려버리려 한다. 부채 기록을 없애 모두를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계획이다. 여기까지 오면 남자 몇 명이 주먹질하던 이야기는 거의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근간을 리셋해버리겠다는 프로젝트로 커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후반부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앞부분의 <파이트 클럽> 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무감각한 인간이 무엇을 느끼며 다시 살아나는지를 관객이 몸으로 납득하게 만든다. 그런데 신용기록을 지워 사회 전체를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은 비교적 늦게 등장하고 따라서 그것이 현실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를 관객이 충분히 상상해볼 만한 시간은 충분치 않다. 정말 신용기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미시적 '파이팅'보다 훨씬 무시무시하고 흥미로운 사건일 텐데 그 질문은 딥을 구하기 전 건물들과 함께 화면 뒤편으로 무너져내린다.

그럼에도 작품이 개인의 몸에 붙어 있을 때 보여주는 날카로움은 여전하다. 화자가 슬픔에 기대 잠드는 데서 시작해 주먹을 맞고, 화상을 입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까지 가는 과정에는 한 가지 일관된 욕망이 있다. 무엇이라도 느끼고 싶다. 행복해야 한다는 것도, 성공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아프면 적어도 아프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애쓰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때로는 멀쩡한 자신을 조금 망가뜨려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인간은 상처가 있어야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감각을 통해 깨우쳐준다. 그러니 왜 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한 대 맞아볼 것.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질 테니.

※ [영화보기]는 기자 개인의 감상을 담은 코너입니다.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감독    데이비드 핀처
각본    짐 유힐
원작    첫 팔라닉의 소설 <파이트 클럽>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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