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보호자들은 무더운 여름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 또 여름 동안 반려동물을 괴롭혔던 피부병도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동물병원에서는 오히려 이 시기에 피부가 붉어지고 가려움이 심해지거나 귀에 염증이 생겨 내원하는 반려동물을 흔히 만나게 된다. 늦여름과 초가을은 반려동물의 피부질환이 쉽게 악화하는 시기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남아 있는 높은 기온과 습도다. 한낮에는 여전히 덥고 습하지만 아침저녁 기온은 조금씩 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피부 표면의 세균과 효모균이 증식하기 쉽다. 특히 털이 많거나 피부가 접히는 품종, 평소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있는 반려동물은 더 주의해야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피부병이 말라세지아 피부염이다. 말라세지아는 정상적인 피부에도 존재할 수 있는 효모균이지만 피부 장벽이 손상되거나 습도가 높아지면 지나치게 증식한다. 피부가 붉어지고 끈적거리거나 특유의 냄새가 나며 발을 계속 핥거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긁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만성화되면 피부가 검게 변하고 두꺼워지기도 한다.
세균성 피부염도 흔하다. 여름 동안 잦은 목욕과 물놀이, 높은 습도, 반복적인 긁기 등으로 피부 장벽이 약해진 상태에서 세균 감염이 발생하기 쉽다. 피부에 붉은 반점이나 작은 농포, 딱지가 생기고 털이 동그랗게 빠지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단순히 ‘여름이라 피부가 좀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방치하면 감염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외이염 역시 늦여름에 자주 문제가 된다. 귀 안쪽은 원래 통풍이 잘되지 않고 따뜻하기 때문에 세균과 효모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특히 귀가 덮여 있는 견종이나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강아지는 반복적인 외이염이 흔하다. 귀에서 냄새가 나거나 갈색 또는 노란 분비물이 증가하고, 머리를 자주 흔들거나 귀를 긁는다면 검사가 필요하다.
초가을에는 알레르기성 피부질환도 주의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꽃가루와 풀, 집먼지진드기 등 환경성 알레르겐의 종류와 노출 정도가 달라진다. 아토피성피부염이 있는 반려동물은 특정 계절에 증상이 반복적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발을 핥고 얼굴이나 귀를 긁거나 배와 겨드랑이가 붉어지는 증상이 매년 비슷한 시기에 반복된다면 계절성 알레르기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가려움 자체보다 그 뒤에 발생하는 이차 감염이다. 가려워서 피부를 긁고 핥으면 피부장벽이 손상되고 손상된 피부에서는 세균과 효모균이 증식한다. 그러면 가려움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피부질환은 심해진 뒤 치료하는 것보다 초기에 악순환을 끊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호자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관리도 있다. 산책 후에는 발과 피부를 살펴보고 젖었다면 충분히 말려준다. 목욕 후에는 털의 겉 부분뿐 아니라 피부 가까운 곳까지 완전히 건조해야 한다. 귀 안쪽에 습기가 남지 않도록 관리하고 평소보다 발을 많이 핥거나 몸을 긁는다면 피부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지나친 목욕이나 무분별한 소독은 피부장벽을 더 손상할 수 있다. 피부질환이 반복되는 반려동물이라면 단순히 항생제나 항진균제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보다 알레르기, 피부 장벽 이상, 내분비질환 등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늦여름과 초가을은 사람에게는 한숨 돌릴 수 있는 계절이지만 반려동물의 피부에는 여름 동안 누적된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냄새가 심해지거나 피부가 붉어지고, 발을 반복적으로 핥거나 귀를 긁는 행동이 나타난다면 단순한 계절 변화로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피부질환은 작은 가려움에서 시작하지만 만성화되면 치료 기간도 길어진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반려동물의 피부와 귀를 한 번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가을을 건강하게 맞이하는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
<김방실 수원동물병원 방실웃는 원장ㅣ정리 헬스경향 조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