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일은 한 작곡가의 생애를 따라가는 일과 닮아 있다. 초기의 단정한 형식에서 출발해 중기의 실험과 혁신을 지나 후기의 깊고 거대한 음악으로 나아가는 동안, 피아노라는 악기는 베토벤의 삶과 함께 끊임없이 확장된다. 같은 작곡가가 쓴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다른 표정을 가진 곡들이 한 생애 안에 놓여 있다.
피아니스트 이정은은 그 긴 여정을 직접 따라가고 있다. 2023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시작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는 여섯 번째 무대에 도착했다. 오는 12일 열리는 이번 연주의 이름은 ‘초월(超越)’이다.
흥미로운 것은 ‘초월’이라는 이름보다 그 안에 담긴 프로그램이다. 거창한 작품만을 골라 베토벤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대신, 이정은은 소박한 세 곡을 먼저 꺼내놓는다. 피아노 소나타 16번 Op.31-1, 19번 Op.49-1, 20번 Op.49-2다. 그리고 2부에서 29번 Op.106 ‘함머클라비어’를 만난다.
이 프로그램에는 베토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담겨 있다. 베토벤은 흔히 강렬함과 엄숙함, 거대한 규모의 음악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작품에는 뜻밖의 유머가 있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소박하며, 때로는 의외의 방향으로 청중의 예상을 비튼다. 이번 공연은 그런 베토벤에서 출발한다.
■위대한 작곡가의 다른 얼굴
소나타 16번 Op.31-1은 베토벤이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801년에서 1802년 사이에 작곡된 이 곡에서는 익숙한 형식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관습을 흔드는 시도가 나타난다.
첫 악장부터 주제가 서로 어긋나는 듯 등장하며 음악적 긴장감을 만든다. 베토벤다운 힘을 보여주면서도 예상 밖의 재치가 살아 있다. 2악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는 더욱 달라진다. 오페라의 벨칸토를 연상시키는 선율이 흐르며 노래하는 듯한 서정성이 부각된다.
이 작품을 통해 만나는 베토벤은 흔히 알려진 ‘영웅적 베토벤’과 조금 다르다. 거대한 음향을 쏟아내기보다 형식 안에서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익숙한 음악적 문법에 새로운 표정을 입힌다.
19번과 20번 소나타는 더욱 간결하다. 두 작품 모두 두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규모도 크지 않다. 제자를 위한 연습곡으로 작곡됐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작품들인 만큼 ‘함머클라비어’와 비교하면 무게감의 차이가 뚜렷하다.
그러나 바로 이 차이가 이번 프로그램을 특별하게 만든다. 베토벤의 음악을 위대함의 크기로만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짧은 작품에도 자신만의 음악적 감각을 담았던 작곡가와, 피아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곡가가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함머클라비어’가 등장한다
2부에서 무대에 오르는 ‘함머클라비어’는 앞선 세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소나타 29번 Op.106은 베토벤 후기 피아노 작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곡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거의 잃어가고 있었으며 조카의 양육권 문제로도 큰 정신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시기를 통과하면서도 그가 만들어낸 음악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거대한 규모로 뻗어나갔다.
‘함머클라비어’라는 명칭부터 베토벤의 의지가 드러난다. 베토벤이 직접 붙인 이 이름은 피아노를 독일어로 표현한 말에서 비롯됐다. 작품은 그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길고 난도가 높은 곡 중 하나로 평가되며, 피아노 문헌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빠른 음표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자는 거대한 형식을 장악하면서 각각의 성부를 명확하게 들려줘야 하고, 서로 다른 성격의 네 악장을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내야 한다. 기교와 음악적 해석이 따로 갈 수 없는 곡이다.
1악장은 거대한 소나타 형식으로 작품의 문을 연다. 2악장에서는 스케르초의 익살스러운 움직임이 등장하며 잠시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거대한 작품 안에서도 베토벤의 유머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3악장이다. 긴 호흡의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는 베토벤 후기 음악 특유의 내면성을 보여준다. 속도보다 시간의 감각이 중요하고, 화려한 효과보다 한 음을 얼마나 깊게 들려주는지가 중요해진다.
마지막 4악장은 거대한 푸가다. 여러 성부가 치밀하게 얽히면서 작품의 규모는 다시 한번 확장된다. 연주자에게는 정확한 타건뿐 아니라 복잡한 구조를 청중에게 이해시키는 능력까지 요구된다.
■‘초월’은 작품의 크기가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다
이정은이 이번 무대에 붙인 ‘초월’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함머클라비어’의 난이도를 설명하는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그에게 베토벤은 작은 작품과 거대한 작품을 차별하지 않은 작곡가다. 짧은 소품에도 진심을 담았고,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음악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이정은은 “작은 소품 속에도, 거대한 대작 속에도 베토벤은 늘 진심을 다했다”며 “‘함머클라비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번 프로그램의 순서는 단순한 전반부와 후반부의 구분이 아니다. 작은 소나타에서 시작해 점차 음악의 규모를 키워가는 구성 자체가 하나의 서사를 만든다.
소나타 19번과 20번의 간결함을 지나 ‘함머클라비어’에 도착하면 청중은 같은 피아노가 전혀 다른 세계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한쪽에는 짧은 악장 안에서 드러나는 소박함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연주 시간과 구조, 기교 모두에서 압도적인 대작이 놓인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베토벤이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하나의 공연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따라가는 것이 이정은의 전곡 시리즈다.
■한 곡씩 쌓아 올린 베토벤의 시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작품 수만으로도 상당한 도전이다. 32곡을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접근하면서도 작곡가의 생애와 음악적 변화를 함께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은은 2023년 첫 무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 작업을 이어왔다. 한 번의 독주회로 베토벤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여러 공연에 걸쳐 작품을 나눠 들려주면서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긴 호흡으로 펼쳐 보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연주자 역시 변한다. 한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악보에 남겨진 정보뿐 아니라 베토벤의 시대와 피아노의 변화, 작품 사이의 관계까지 살펴야 한다. 전곡 연주는 레퍼토리의 양을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한 작곡가를 오랫동안 곁에 두는 음악적 여정에 가깝다.
이정은에게도 이번 여섯 번째 공연은 그 여정이 후반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를 앞둔 상황에서 ‘함머클라비어’를 만나는 것은 베토벤의 음악적 정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 된다.
■여섯 번째 무대, 마지막 두 번의 연주를 향해
이정은의 베토벤 전곡 시리즈는 이제 여섯 번째 무대를 지나 마지막 두 공연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공연의 의미는 한 편의 독주회가 끝난다는 데 있지 않다. 지금까지 이어온 긴 연주 여정이 어느 정도의 높이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라는 데 있다.
‘초월’이라는 이름도 그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베토벤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개인적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함머클라비어’는 그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이정은은 그 작품을 통해 베토벤의 한계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선 음악적 에너지를 들려주려 한다. “소박한 소나타들 뒤에 이어지는 ‘함머클라비어’는 마치 작은 걸음들이 모여 마침내 정상에 다다르는 순간과 같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공연은 작은 음악에서 거대한 음악으로 향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베토벤을 위대한 작곡가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에는 그의 음악에는 너무 많은 표정이 있다. 장난스러운 악상과 노래하듯 이어지는 선율, 고독한 느린 악장, 거대한 푸가가 한 작곡가의 작품 안에 공존한다.
12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펼쳐질 이정은의 여섯 번째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는 바로 그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자리다. 소박함에서 출발해 거대한 음악으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함머클라비어’가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가 마주한다.
전곡 완주를 향해가는 이정은에게 이번 무대는 정상에 도착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정상에 가까워졌음을 확인하는 연주에 가깝다. 베토벤의 음악을 따라 여섯 번의 시간을 지나온 피아니스트가 이제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를 향해 건반을 올린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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