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 영등포공원 원형광장에 들어서면 독특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공원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구리 솥이다. 산책로와 녹지, 시민들의 일상적인 발걸음 사이에서 쉽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규모에 먼저 놀라게 된다. 직경 7m, 높이 4.5m. 일반적인 솥이라고 부르기에는 압도적인 크기다.
거대한 시설의 이름은 ‘OB맥주 담금솥’이다. 1933년 제작된 순동제 맥주 제조 설비로, 1996년까지 실제 생산현장에서 사용됐다. 지금은 맥주를 만들지 않지만 한때 이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영등포가 어떤 산업도시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솥에는 제작 시기와 사용 기간을 알려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33년에 제작돼 1996년까지 맥주 제조에 사용됐다는 기록이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산현장을 지킨 셈이다.
오늘날 시민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공원에 왜 이 거대한 솥이 남게 됐을까. 답은 영등포공원이 들어선 자리의 과거에 있다.
■영등포에 있었던 한국 맥주산업의 출발점
현재 영등포역 인근에 자리한 영등포공원 일대는 오랫동안 맥주공장이 있던 곳이었다. 약 60년 동안 이곳에서는 맥주가 생산됐다. 지금의 공원 풍경만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 이곳은 거대한 산업시설과 생산설비가 들어선 공간이었다.
한국 최초의 맥주공장이 들어선 곳이라는 점에서도 영등포는 한국 맥주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OB맥주의 전신은 1933년 12월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쇼와기린맥주주식회사다. 이후 1948년 2월 동양맥주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고, 상표를 ‘오비맥주’로 바꿨다. 1995년 3월에는 회사 이름을 오비맥주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영등포에서 이어진 맥주 생산의 역사는 1997년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는다. 공장이 경기도 이천으로 이전하면서 약 60년 동안 이어진 영등포 공장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생산시설이 빠져나간 자리는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장이 떠난 자리, 공원이 들어서다
1997년 서울시는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에 따라 옛 OB맥주 공장 부지를 매입했다. 이후 1997년부터 1998년 7월까지 공원 조성이 진행됐고, 공장 부지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영등포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생산과 노동이 이뤄지던 공간이 녹지와 광장을 갖춘 시민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도시의 변화만 놓고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산업시설이 이전한 자리에 새로운 공공공간이 들어서는 일은 도시 재편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영등포공원에는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않은 흔적이 하나 남았다. 공원의 중심인 원형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담금솥이다.
공장을 구성하던 수많은 건물과 설비 가운데 하나였던 이 거대한 솥은 철거되지 않고 현재의 자리까지 옮겨왔다. 산업시설이 사라진 공간에 생산설비 하나가 남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한 장소에서 만나는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맥주를 만들던 솥에서 ‘기억’을 남기는 솥으로
담금솥은 맥주 제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맥아와 호프, 전분, 양조용수를 배합한 뒤 끓여 발효 과정으로 넘기는 핵심 설비였다. 한 번에 500hl, 즉 5만ℓ에 해당하는 양을 끓여낼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자동화된 설비를 통해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지만, 이 거대한 솥이 사용되던 시절에는 하나의 설비 자체가 맥주 생산시설의 규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다.
1933년에 제작된 담금솥은 1996년까지 현장에서 사용됐다. 60년 넘게 생산을 이어간 뒤 공장 이전과 함께 본래의 기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역할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공장에서는 맥주를 만드는 생산설비였지만 공원에서는 과거를 보여주는 역사적 표식이 됐다. 기능이 사라진 뒤 오히려 이 시설이 가진 시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사라진 산업공간을 기억하는 방법
도시의 역사는 건축물이나 유적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했던 공장, 물건을 생산했던 시설, 지역의 풍경을 바꿨던 산업시설도 도시의 역사에 포함된다.
특히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서울에서는 과거의 공장들이 도시 개발과 함께 사라진 사례가 적지 않다. 생산시설이 있던 자리에 주거시설이나 상업시설, 공원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풍경을 확인하기 어려워진 경우도 많다.
그런 점에서 영등포공원의 담금솥은 의미가 남다르다.
공장 전체를 보존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생산설비 하나를 남김으로써 장소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솥 하나만으로 과거의 영등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솥을 바라보는 순간 지금은 사라진 공장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 당시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 맥주가 만들어지던 생산현장,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주변의 생활상까지도 상상하게 한다.
산업유산의 가치는 반드시 오래된 건물의 외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물건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장소가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역사적 가치가 드러난다.
■1933년의 솥, 2026년을 만나다
영등포공원의 담금솥은 1933년과 2026년을 한 공간에서 이어준다.
1933년에는 맥주 생산을 위한 설비였고, 1996년까지는 실제 생산현장에서 사용됐다. 1997년 공장이 이천으로 이전한 뒤에도 영등포를 떠나지 않았고, 공장 부지가 공원으로 바뀐 이후에는 시민들이 오가는 광장의 상징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능은 달라졌지만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오히려 넓어졌다.
이제 담금솥은 특정 기업의 생산설비라는 의미를 넘어 영등포의 산업사를 보여주는 흔적이 됐다. 한때 공장 노동과 생산의 시간을 견뎠던 물건이 오늘날에는 도시의 과거를 알려주는 문화적 표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공원에서 담금솥을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공장 부지가 아니다. 그러나 거대한 솥은 이 공간이 한때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게 한다.
도시가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래된 공장이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도 도시의 역사다. 중요한 것은 변화 이후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있다.
영등포공원의 담금솥은 그 답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공장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사용됐던 하나의 설비를 남겨두는 것만으로 장소의 역사는 이어질 수 있다. 맥주를 끓이던 솥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한 시대의 산업과 영등포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1933년 만들어진 거대한 구리 솥이 오늘도 공원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이유다.
공장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등포공원의 담금솥은 사라진 산업공간을 기억하는 하나의 유산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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