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신현희 연구실장 = 식당의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거나 은행 점포 폐쇄로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AI와 무인화 기술이 경제 생활의 핵심을 대체하면서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 소외(Digital Alienation)’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인 ‘소비자 주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26)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 취약계층(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의 스마트기기 보유율은 96.6%에 달하지만 정작 활용 능력은 65.9%에 그쳤다. 기기가 있어도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씁쓸한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격차가 취약계층에게 부당한 경제적 비용을 전가하는 ‘디지털 페널티(Digital Penalty)’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모바일 앱을 쓰지 못해 창구 수수료를 더 내고 할인 혜택에서 배제되며, 복잡한 대화형 AI 고객센터의 진입장벽에 막혀 정당한 피해 구제조차 포기하게 된다. 단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경제적 불이익과 역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디지털 인프라가 필수 공공재가 된 지금, 기술의 혜택은 모든 소비자를 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촉구한다.
첫째, [제도적 기반 정비] 국회와 정부는 정보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맞춤형 교육과 접근성 개선 등 ‘디지털 포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소비자 보호와 아날로그 병행 유지] 기업은 금융, 의료, 통신 등 필수 생활 영역에서 무인화를 추진하되, 대면 창구나 상담원 직통 연결을 남겨두어 분쟁 발생 시 소비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유니버설 디자인 전면 도입] 설계 초기부터 고령자나 장애인도 쉽게 쓸 수 있는 직관적인 포용적 설계가 기업의 핵심 소비자 보호 및 ESG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누군가의 경제적 권리를 박탈하는 기술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다. 모든 소비자가 차별 없이 편익을 누리는 '보편적 접근권'이 시장의 당연한 규칙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건강한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npce@dailycnc.com
Copyright ⓒ 소비자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