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세우타의 파도에 잠긴 모로코 청년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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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세우타의 파도에 잠긴 모로코 청년들의 미래

연합뉴스 2026-09-03 07: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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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현대사의 모순과 2030 월드컵의 그늘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지난 7월 말 스페인령 세우타(Ceuta) 해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이틀 동안 약 5만에서 7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타라할과 벤주 방파제를 넘어 헤엄쳐 스페인 땅을 밟으려 시도했다. 스페인 당국의 즉각적인 송환 조치로 상황은 일단락되었으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국경지대의 소동이 아니다. 2021년의 세우타 사태와 2024년 또 다른 스페인령 멜리야(Melilla)의 비극을 넘어, 25%의 실업률에 달하는 모로코 청년세대(15∼25세)가 국가로부터 어떻게 버림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방증이다.

[그래픽] 스페인 세우타에 모로코 이주민 대규모 진입 [그래픽] 스페인 세우타에 모로코 이주민 대규모 진입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스페인 내무부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북아프리카 자치도시 세우타로 무단 입국한 5~6만명 가운데 최소 4만8천300명이 자발적으로 모로코로 돌아갔다고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밝혔다. minfo@yna.co.kr

스페인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확인된 사망자만 67명이다. 그러나 더 참혹한 숫자가 있다. 2026년 초부터 프니데크와 세우타 사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이는 이미 1천명을 넘어섰다. 현지에서는 유럽으로 불법 이민을 뜻하는 모로코 아랍어 방언으로 '히그(Hrigh)'라는 단어를 쓴다. '태우다'라는 뜻의 이 말은, 단순히 바다를 건너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신분증을 불태우고 모로코인으로서의 삶을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비장하고도 서글픈 의지를 담고 있다.

지금 모로코 청년세대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유행한다. "우리 모두 떠날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은 불을 끄는 걸 잊지 마."(We will all leave, and may the last person not forget to turn off the light!) 이 슬로건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댓글 창을 도배하며 국가가 청년들에게 더 이상 희망의 터전이 아님을 고통스럽게 고백하고 있다. 특히 북부 리프(Rif) 지역과 테투안(Tetouan)의 청년들에게 세우타는 단순한 국경이 아니라, 숨 막히는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2016년 '히라크 리프'(Hirak Rif) 운동 이후 중앙정부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이들에게 삶은 이미 보이지 않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이번 사태에서 인접한 멜리야보다 세우타로 압도적인 인원이 몰린 것은 지형적 특수성, 모로코 북부의 누적된 좌절, 모로코 권력의 심장인 '마크젠'(Makhzen)의 셈법, 알제리와 지정학적 대립, 그리고 2030년 월드컵이라는 초대형 이벤트까지 복잡하게 얽힌 100년 현대사의 모순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세우타는 험준한 육상 철조망 외에도 해안 방파제를 우회해 헤엄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적 약점이 있다. 게다가 세우타에서 40㎞ 떨어진 테투안과 배후의 리프 산악 지대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곳이다.

1912년부터 1956년까지 스페인 보호령의 수도였던 테투안의 청년들에게 스페인은 심리적 외국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한 옆 동네와도 같다. 반면, 아랍계와는 다른 언어·정체성을 지닌 아마지그(베르베르)계의 터전인 리프 지역은 모로코 왕정의 오래된 상처다. 알제리의 카빌리(Kabylie) 지역과 매우 흡사한 리프 지역은 1920년대 압델 크림(Abdel-Krim·1882∼1963)의 반식민 봉기가 있던 곳이다.

그는 스페인 식민군에 맞서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독립 조직인 '리프 공화국'(1921∼1926)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는 20세기 아프리카 최초의 반식민 무장 투쟁 중 하나로, 스페인-프랑스 연합군이 겨자가스 등 화학무기를 살포한 끝에야 진압할 만큼 격렬했다. 리프 주민들에게 이 사건은 자부심의 근원이자, 외세 및 중앙정부와 반목을 나타내는 역사적 상징이다. 1950년대 왕세자였던 하산 2세의 리프 지역에 대한 잔혹한 진압은 오늘날까지 중앙정부와 관계에 앙금으로 남아 있다.

당시 하산 2세는 공군 전력까지 동원해 리프 지역 봉기를 잔혹하게 짓밟았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도 리프 지역은 중앙정부의 국가적 투자 배제와 감시 속에서 경제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2016년 10월 리프지역 생선 장수 무흐신 픽리(Mouhcine Fikri)가 경찰의 몰수품 압수에 항의하다 쓰레기 압축차에 압사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는 수십 년간 누적된 불평등, 병원과 학교 부족, 청년 실업에 대한 대규모 민중 항쟁인 히라크 리프 운동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됐다. 나세르 제프자피(Nasser Zefzafi·1979∼ ) 등 핵심 지도자들은 중형(20년형)을 선고받아 지금도 수감 중이며, 리프 지역의 정치적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사태도 라바트·카사블랑카·탕헤르 위주의 개발에서 배제된 리프 지역 청년들의 누적된 실업과 절망이 지형적으로 쉽게 뚫리는 세우타의 철조망으로 향하게 했다.

스페인 세우타에 모여든 이민자들 스페인 세우타에 모여든 이민자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로코 국경을 지나 세우타로 가다 보면 국경 관문이 얼마나 삼엄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평소 철통같던 모로코 국경 보안이 이례적으로 느슨해진 정황은 모로코의 심층 권력 네트워크인 마크젠을 떠올리게 한다. 왕실, 정보기관, 부족장, 카르텔이 얽힌 마크젠은 명시적 서명이나 문서 지시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신 간접적 신호와 통제 이완을 통해 상황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 방식은 1975년 하산 2세가 서사하라에서 주도한 '녹색 행진'을 연상케 한다. 당시 모로코는 35만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동원해 스페인령 서사하라로 진격시켜 주권을 확보하는 외교적 지렛대로 삼았다. 1975년의 무기가 꾸란과 국기였다면, 2026년의 무기는 SNS 밀입국 정보와 방수팩에 넣은 휴대전화다. 비무장 민간인의 대규모 이동을 이용해 스페인이 실효 통제하기 어려운 영토에 압박을 가하고, 외교적 주도권을 쥐려 했다는 점에서 마크젠의 구시대적 동원 문법이 되풀이된 것이다.

마크젠이 이 같은 위험한 카드를 만지작거린 배경에는 서사하라를 둘러싼 알제리와 경쟁이 있다. 모로코와 알제리는 서사하라 영유권과 폴리사리오 지원 문제를 두고 1994년 육상 국경을 완전히 닫은 채 대립해 왔다. 2022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모로코의 서사하라 자치안을 지지하며 모로코가 외교적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지난 7월 20일 산체스 총리가 알제리를 기습 방문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얼어붙었던 스페인-알제리 관계가 회복되자 라바트(모로코 수도)는 외교적 입지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고, 불과 열흘 뒤인 7월 30일 세우타를 뚫리게 만든 것이다. 스페인이 알제리로 기울지 못하도록 이민 통제력을 수단 삼아 일종의 경고 신호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라바트의 이 같은 계산은 유럽 전체의 거센 반작용을 부르며 딜레마에 빠졌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국경 검사를 재도입하고 EU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모로코는 이민 방파제 '파트너'가 아닌 자국민을 대량 송출하는 국가라는 비난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은 2030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에 던져진 그늘이다. 모로코는 2030년 월드컵을 통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마그레브의 맹주는 물론 서아프리카까지 내심 야심을 드러내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인접국이자 공동 개최국인 스페인 국경에서 수만 명의 자국 청년이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고 100명 가까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면서, 월드컵 파트너십과 치안·국경 관리 능력에 치명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개최를 불과 4년 앞둔 시점에서 터진 이 사태는 모로코가 자랑하려 했던 인프라와 현대화의 그늘 뒤에 치명적인 내부 불평등과 청년층의 절망이 숨어 있음을 전 세계에 폭로한 꼴이 되었다.

세우타 난입사태 이후 유럽 국경검문 갈등으로 이탈리아발 항공편 입국자들의 신원과 비자를 점검하는 스페인 경찰 세우타 난입사태 이후 유럽 국경검문 갈등으로 이탈리아발 항공편 입국자들의 신원과 비자를 점검하는 스페인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결국 스페인에 도착했던 수만 명의 모로코 청년들과 가족들은 대부분이 모로코로 되돌아가야 했다. 스페인 당국의 즉각적인 자발적·강제적 송환 절차와 모로코 수용 조치가 맞물린 결과지만, 이는 사태의 종료가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을 의미한다. 북부 리프 지역의 실업과 소외, 양극화라는 구조적 모순은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되돌아온 자국 청년들의 절망과 함께 그대로 라바트 왕권으로 귀환했기 때문이다.

이번 세우타 사태는 단순한 유럽의 국경 분쟁이 아니다. 지형적 약점, 테투안과 리프의 역사적 상처, 마크젠의 지정학적 셈법, 그리고 2030년 월드컵을 앞둔 국정 화려함 뒤의 그늘이 한데 폭발한 사건이다. 자국 청년들의 절망을 외교적 지렛대로 삼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월드컵의 화려한 조명 뒤에서 방파제를 향해 몸을 던지는 모로코 청년들의 비극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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