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류석만 기자] 충남도의회가 충남 곳곳에서 쌓여온 환경·안전·재정·건강 문제를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충남도의 일률적 재정절감, 석면 피해자 지원 등 도민들의 삶과 직결된 현안들이 제371회 임시회 첫날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충남도 행정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개선 요구가 쏟아졌다.
도의원들은 한목소리로 “행정 편의와 국가사업이라는 명분보다 도민의 안전과 권리, 실질적인 삶의 질이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수도권 전력공급을 위한 초고압 송전망과 관련해서는 “산업의 이익은 수도권이 가져가고 피해와 부담은 충남이 떠안는 구조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
환경 재난으로 번지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에 대해서는 기존 방제 방식의 전면 전환을 요구했고, 재정 분야에서는 20% 일률 감액이 의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거 산업화의 후유증인 석면 문제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환경·건강 피해에 대한 충남도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 “충남을 수도권 전력공급 희생지로 만들지 말라”
노한섭(공주1·국민의힘) 충남도의원은 이날 5분 발언에서 수도권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공급을 위한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10GW 이상의 전력공급 목표 시기를 당초 2053년에서 2042년으로 11년 앞당기면서 관련 행정절차도 빨라지고 있지만, 충남 주민들에게는 전체 노선과 사업 간 연계조차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 의원은 “주민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배제한 채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입지선정 절차의 즉각 중단과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현재 공주시를 비롯한 충남 14개 시·군이 초고압 송전선로 후보 경과지역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노 의원은 충남에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의 절반가량이 집중돼 있고 이미 4,000기가 넘는 송전탑이 설치돼 있다며 “충남이 감당해 온 발전·송전시설 부담을 외면한 채 또다시 신규 송전망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계룡–북천안, 군산–신천안 등 개별 사업명만 제시되고 전체 송전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자료가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에 따라 ▲주민 동의 없는 입지선정 중단 ▲전체 노선 통합현황도 공개 ▲수도권 전력수요 분산 ▲지중화·해상·해저 송전망 등 대안 검토 ▲민·관·정 공동대응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노 의원은 “산업 발전의 이익은 수도권에 집중시키면서 송전선로로 인한 피해와 부담만 충남에 떠넘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충남을 수도권 전력공급의 송전 통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소나무재선충병 26배 폭증…“안면송 최후 방어선 무너질라”
태안 등 충남 서해안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소나무재선충병도 도의회의 긴급 대응 요구를 받았다.
강종국(태안2·더불어민주당) 도의원은 최근 1년 사이 충남 서해안 일대 피해목이 26배 이상 폭증했다며 충남도의 기존 방제체계를 사실상 ‘전면 재설계해야 할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전국 피해목이 177만 그루에 달하는 가운데 태안군 전역이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태안 전체 산림의 69%가 소나무”라며 이번 사태가 단순한 산림 피해를 넘어 서해안의 생태경관과 관광경제까지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국가산림문화자산인 안면송 군락지까지 감염 확산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신속하고 정밀한 방제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더욱 강한 비판이 나온 대목은 예산과 성과의 불일치다.
충남도의 소나무재선충병 관련 예산은 2024년 119억 원에서 2026년 359억 원으로 3배 증가했지만 피해는 오히려 폭증했다.
강 의원은 말라죽은 나무를 베어내는 사후약방문식 방제와 매개충 생태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관행적 대응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주요 군락지 전수조사 ▲완충구역 확대를 통한 초정밀 다중 방제벨트 구축 ▲드론·AI 영상 예찰 상시화 ▲상습 피해지역 수종 전환 ▲전문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충남도 비상방제 컨트롤타워 가동 등을 제안했다.
“숲을 키우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경고와 함께 충남도의 보다 강력한 실행력을 요구했다.
■ “20% 숫자가 먼저냐, 사업 필요성이 먼저냐”…재정절감 정면 비판
재정 운용을 둘러싼 충남도의회의 견제도 거셌다.
이상근(홍성1·국민의힘) 도의원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적용된 20% 의무절감 방식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재정 여건이 어려울 경우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업별 특성과 시급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감액부터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번 추경 과정에서 20% 의무절감이 급박하게 적용되고 조직개편 사항까지 겹치면서 일부 사업설명서에 변경된 세부 산출내역 없이 기정예산액과 의무절감액만 표시된 점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예산서는 도민의 세금이 어디에, 왜, 얼마만큼 사용되는지를 설명하고 의회가 심의·의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라며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생명·안전, 취약계층 지원, 계속사업과 시급성이 낮은 사업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감액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20%라는 숫자가 먼저였는지, 각 사업의 필요성과 집행 가능성 검토가 먼저였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충남도에 20% 의무절감의 구체적 근거와 사업별 감액 기준을 공개하고, 세부 산출내역이 빠진 사업에 대해서는 보완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절감해야 할 것은 불요불급한 예산이지 의회의 예산심의권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 충남 석면 피해 전국의 31%…“산업화의 상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석면 피해 문제도 도의회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장재석(홍성2·국민의힘) 도의원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전국 석면피해 누적 인정자 8,970명 가운데 충남이 2,753명으로 약 31%를 차지한다.
특히 홍성군 인정자는 1,345명으로 충남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장 의원은 과거 아시아 최대 규모 석면광산이 있었던 충남이 지금까지도 전국 최대 피해지역으로 남아 있지만, 피해자 건강관리와 구제제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남 석면피해자 건강관리서비스 운영인력이 기존 3명에서 2명으로 줄었고, 의료·복지 서비스를 연결하는 통합자원연계 실적도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특히 홍성의료원에 폐기능검사 장비와 호흡기내과가 마련됐지만 계약직 임상병리사 1명이 검사를 전담하면서 휴가나 계약 만료 시 검사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 의원은 ▲폐기능검사 전담인력 인건비 지원 및 고용안정 ▲검사·진료·치료를 연계하는 충남형 통합관리지원체계 구축 ▲요양생활수당 지급기한 연장 ▲교통비·간병비 신설을 위한 법 개정 건의 ▲석면피해기록관 건립 등을 제안했다.
그는 “석면 피해는 개인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며 충남도의 책임 있는 장기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도민의 안전과 권리가 행정의 기준이어야”
제371회 임시회 첫날 충남도의회에서 쏟아진 5분 발언은 각각 다른 현안을 다뤘지만 핵심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도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반도체 산업을 위해 충남에 송전망 부담을 떠넘기는 문제, 산림과 관광자원을 위협하는 재선충병에 대한 늦은 대응, 사업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예산 감액, 산업화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석면 피해자 문제까지 모두 행정의 우선순위와 책임성을 묻는 사안이다.
국가사업이라는 명분도, 재정절감이라는 이유도, 행정절차의 효율성도 도민의 안전과 권리를 희생시키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게 도의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특히 송전망 문제는 앞으로 충남의 최대 지역 현안 가운데 하나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 산업단지의 전력수요가 증가할수록 충남을 통과하는 송전망 확대 논의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주민 참여와 정보 공개, 지역별 부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과 대체 노선 검토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재선충병 역시 단순한 산림행정을 넘어 생태환경과 관광산업, 지역경제의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예산 역시 마찬가지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삭감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줄일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선택과 투명한 설명이라는 지적이다.
석면 피해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건강권 문제다.
충남도의회가 이번 임시회를 통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한 만큼 이제 공은 충남도와 정부로 넘어갔다.
충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개발과 행정은 없는지, 도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환경·건강 피해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행정이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제371회 임시회 첫날 울려 퍼진 도의원들의 5분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목소리가 아니다.
“충남도민의 안전·재정·환경·건강권을 더 이상 뒤로 미루지 말라.”
충남도의회가 던진 이 경고가 실제 정책 변화와 예산 조정,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