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미국과 유럽이 저가형 요격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방공무기 시장의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다. 가격과 성능뿐 아니라 대량생산과 신속한 보급 능력까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국산 방공체계도 변화한 시장에 맞춰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생산과 공급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이 저가형 요격미사일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값싼 공격무기에 고가의 요격미사일을 사용하는 기존 방공체계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드론과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이 대량으로 투입되는 상황에서는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요격미사일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공격무기보다 훨씬 비싼 요격미사일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구조가 방공망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미 육군은 지난 6월 17일 ‘저비용 요격체 산업의 날’을 열고 저렴하고 모듈화된 요격체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전문매체 디펜스뉴스는 지난달 27일 보도에서 미 국방부가 X-보우 시스템스(X-Bow Systems)와 계약을 체결하고, 한 발당 75만달러(약 10억원) 이하를 목표로 한 요격미사일 개발에 나섰다고 전했다.
록히드마틴도 지난 7월, PAC-3 MSE보다 절반 이하 가격을 목표로 한 PAC-3 ACE를 공개했다. PAC-3 MSE의 단가가 약 400만달러(약 54억원)로 거론되는 점을 고려하면, 목표 가격은 한 발당 200만달러(약 27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9개국 역시 패트리엇을 보완할 저가·대량생산형 탄도미사일 방어체계 ‘프레이야(Freya)’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 미사일 전문업체 MBDA도 대규모 드론 공격과 저가 무기에 대응하는 요격미사일 개발 계획을 밝혔다.
각 사업의 세부 내용과 개발 단계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방향은 고가 요격미사일만으로 모든 위협에 대응하지 않고, 위협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격미사일을 함께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전장에서 요격미사일 부족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탄도미사일 27기를 포함한 미사일 35기를 발사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요격한 미사일은 1기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부족 속에 러시아 탄도미사일 방어에 차질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재고도 줄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추산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의 약 65%를 사용했으며, 보유량이 전쟁 전 2330발에서 850발 미만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사례는 요격미사일의 성능만큼이나 재고와 생산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방공망을 유지하려면 공격을 막는 능력뿐 아니라 소진된 요격미사일을 지속적으로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방공무기의 경쟁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요격 고도와 사거리, 탐지·추적 능력, 명중률 등 개별 무기의 성능이 주요 평가 요소였다. 그러나 다수의 드론과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오는 상황에서는 한 발의 성능만으로 방공망의 방어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공격에 대응할 충분한 요격미사일을 확보하고, 소진된 탄약을 얼마나 빨리 보충할 수 있는지가 전력 유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격과 함께 대량생산·신속한 보급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낮은 가격으로 일정 수준의 성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기존 레이더와 지휘통제체계에 연동해 빠르게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미 육군이 기존 방공망과 연동되는 저가형 요격수단을 시험한 것도 이런 변화와 관련이 있다.
국산 방공체계는 이미 가격과 성능을 앞세워 해외 시장을 확대해 왔다. 대표적인 체계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인 천궁-II다. 천궁-II는 다기능 레이더와 사격통제소, 발사대, 요격미사일로 구성된 통합 방공체계다. 탄도미사일과 항공기 등에 대응하며,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의 중층 방어를 담당한다. 특히 천궁-II는 패트리엇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체계 전체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바탕으로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수출을 확대했다.
다만 앞으로도 가격 우위가 계속 유지될지는 별도의 문제다. 미국과 유럽이 기존 고성능 요격미사일을 보완하는 저가형 모델을 개발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도 유럽 국가들과 새로운 방공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거치며 값싼 공격무기에 대응할 저가형 요격미사일의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고가 요격미사일만으로 대규모 공중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비용과 재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센터장에 따르면, 대신 미국과 유럽이 개발하는 요격미사일은 자국과 역내 수요에 우선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도 역내 공동개발과 공동사용을 추진하고 있어 개발이 완료되더라도 제3국이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받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유 센터장은 “미국이나 유럽이 저가형 요격미사일을 개발한다고 해서 제3국에 원하는 시기와 물량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동 시장에서는 국산 방공체계가 가격 경쟁력과 납품 역량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특히 저가형 요격미사일 개발이 확산되면 국산 방공체계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요격 고도와 거리 등 전장 환경에 따라 여러 요격미사일을 조합하는 운용이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변화하는 위협에 맞춰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량하고, 현지 생산 등 수출국이 원하는 공급 구조를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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