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씨티,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들이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한다. 지난해 10개 은행으로 시작한 컨소시엄이 10개월 만에 21개 금융기관으로 확대되면서 기존 가상자산 업체들이 주도해 온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글로벌 은행권이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1일(현지시간) 금융권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BofA, 씨티, 도이체방크 등 21개 글로벌 금융기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올해 하반기 중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담당할 별도 법인을 설립한 뒤 내년 상반기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설 법인의 명칭은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컨소시엄은 지난해 10월 10개 은행을 중심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약 10개월 만에 참여 기관이 두 배 이상인 21곳으로 확대됐다.
지역별로도 사실상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권역을 아우르는 형태다. 북미에서는 골드만삭스와 BofA, 씨티 등을 포함한 10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유럽에서는 도이체방크와 UBS, 산탄데르, BBVA 등 8개 기관이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미쓰비시UFJ은행(MUFG)이 유일하게 참여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도 각각 한 곳의 은행이 합류했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금융회사들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스테이블코인 사업과 달리 미국과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 등 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하도록 설계한 디지털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과 달리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디지털자산 거래뿐 아니라 송금과 결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스테이블코인은 우선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다.
컨소시엄은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법'과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 규제 체계인 MiCA를 모두 준수하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활용 범위도 가상자산 거래에 국한하지 않을 방침이다. 국경 간 결제와 디지털자산 결제를 비롯해 금융기관 간 도매시장, 기관투자자 거래,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리테일 시장까지 폭넓게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은행권이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결제와 송금 시장의 변화다.
기존 국제송금은 여러 금융기관과 결제망을 거쳐야 해 거래가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수수료도 발생한다. 반면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금융기관 간 자금 이전과 국경 간 결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컨소시엄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시작으로 발행 통화도 확대할 예정이다. 달러에 이어 유로화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이후 다른 주요 7개국(G7) 통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은행들의 스테이블코인 경쟁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BBVA 등이 참여하는 37개 기관 컨소시엄 '키발리스'도 올해 안에 유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출시를 예고했다.
달러와 유로 등 주요 통화를 중심으로 복수의 글로벌 금융회사 연합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나서면서 기존 가상자산 기업뿐 아니라 전통 금융회사 간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정치권과 민간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가 참여하는 가상화폐 사업체 월드리버티 파이낸셜도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있다.
2024년 이후 가상자산 가격이 반등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親)가상화폐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디지털자산과 기존 금융산업의 결합 속도가 빨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 체계가 구체화하면서 그동안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사업 진출에 신중했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시장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고 해서 기존 시장 구도가 단기간에 바뀔지는 미지수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는 테더가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테더의 유통량은 1800억달러를 넘어선 상태로, 가상자산 거래와 국제 송금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 전통 금융회사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이 지난해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했지만 현재 유통량은 약 1250만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은행의 신뢰도와 기존 고객 기반이 실제 스테이블코인 수요로 얼마나 연결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셈이다.
민간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대될 경우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에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결제와 송금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국가별 통화주권과 금융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을 예의주시하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골드만삭스와 BofA, 씨티, 도이체방크, UBS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공동 발행에 나선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 기존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글로벌 은행들은 기존 금융회사로서 확보한 신뢰도와 고객 기반, 규제 대응 능력, 국제 결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상자산 업체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 상반기 글로벌 21개 금융기관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시장에 출시되면 테더 등 기존 사업자가 주도해 온 시장에 전통 금융권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동시에 달러에서 유로와 다른 G7 통화로 발행 영역이 확대될 경우 글로벌 결제·송금 시장을 둘러싼 은행과 가상자산 업체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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