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 박기홍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이 8년 전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남긴 사과문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박 부총장은 진보 성향 청년정치공동체 '청년좌파'를 이끌던 2017년 1월 31일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단순 개인 사정에 의한 사퇴가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 불거진 여성 차별 문제가 실질적 원인이었다는 대목에서 파문이 만만치 않다.
과거 용혜인 의원이 SNS에 올린 남편과 함께 찍은 부부 사진. / 용혜인 의원 페이스북
1일 한국경제 등에 따르면 당시 단체 회원들 사이에서는 박 부총장이 여성 활동가를 성별, 나이, 학벌, 경력 등의 잣대로 줄 세워 평가하고 그중 일부를 활동에서 밀어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여기에 회원 간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조직 차원에서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비판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폭력적이었다" 본인이 직접 쓴 반성문
논란을 키우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부총장 본인이 남긴 기록이다. 당시 회원들에게 뿌려진 사과문과 사퇴 서신을 보면, 그는 자신의 언행이 여성 활동가들이 쌓아온 노력을 깎아내렸고 그들에게 모욕감과 무력감을 안겼을 것이라고 스스로 시인했다. 잘못된 발언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 특정 회원을 조직 활동에서 밀어내는 효과를 냈다면서,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폭력적이었다고까지 표현했다.
성폭력 사건 대응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보호할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행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인정했고, 자신의 한계가 조직 내 여성주의적 문화 정착을 가로막았다며 이 반성과 사과야말로 사퇴를 결심한 핵심 이유라고 밝혔다. 진보 진영 청년 활동가가 여성 배제와 조직 운영 실패를 자필로 인정한 흔치 않은 사례다.
박기홍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은 진보 성향 청년정치공동체인 청년좌파 대표로 활동하던 2017년 1월 31일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 청년좌파 엑스(옛 트위터)
두 달 뒤 후임 자리에 앉은 용혜인, 그해 결혼까지
박 부총장이 물러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17년 3월 임시총회를 통해 후임 대표로 뽑힌 인물이 바로 용혜인 후보자다. 두 사람은 같은 해 9월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용 후보자는 연말 기본소득정치연대 대표를 거쳐 2020년 기본소득당 창당을 진두지휘했다.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 도입을 주요 의제로 삼았던 청년좌파는 현재 기본소득당을 떠받치는 주요 인사 다수가 몸담았던 인큐베이터 격 조직이다.
이 단체는 이후에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018년에는 공식 의사결정 라인 밖에 존재하던 이른바 '언더조직'이 청년좌파와 노동당, 알바노조 등 여러 단체의 주요 결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해왔다는 폭로가 터졌다. 당사자들은 해당 조직이 2017년에 이미 해체됐다고 선을 그었지만, 조직 안에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지 않았다. 파문 이후 청년좌파는 '청년정치공동체 너머'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박기홍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 / 유튜브 '기본소득당'
창당 이후에도 계속된 요직, 부부가 나눠 맡은 자리들
청년좌파 시절 다져진 인맥과 조직력은 고스란히 기본소득당 창당의 밑거름이 됐다. 박 부총장의 이력을 보면 창당준비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시작으로 초대 사무총장, 전략기획실장, 기획조정실장, 당대표 권한대행을 두루 거쳤고 지금은 전략기획부총장 자리에 있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기획단장을 맡았고, 새 지도부를 뽑는 전국동시당직선거에는 최고위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창당 이래 부부가 당의 핵심 라인을 사실상 나눠 관리해온 구도라, 과거 여성 배제 전력을 가진 인물이 요직을 이어가는 데 대한 불편한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관 지명 뒤에도 의원직 고집,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
이 오래된 이력이 다시 도마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다. 용 후보자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에도 비례대표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본인이 물러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한다는 게 그가 내세운 논리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끄집어냈다. 용 의원이 의원직을 놓지 않는 진짜 이유가 남편인 박 부총장이 당의 상근 당직자로 재직 중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용 의원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은 원외정당이 되어 국고보조금 지원이 끊기고, 그 여파로 박 부총장이 봉급을 받기 어려워진다는 구조를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남편이 실제 상근 당직자인지, 월 급여가 얼마인지, 그 재원이 국고보조금에서 나오는지, 사퇴 시 남편 봉급 문제가 걸림돌이 된 게 맞는지 하나하나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 뉴스1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기본소득당이 아니라 가족소득당이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직격했다. 항간에 도는 말처럼 원외정당이 되면 배우자 급여를 선관위 보조금으로 충당할 수 없어서 사퇴를 미루는 것 아니냐며 해명을 압박했고, 지독하고 알뜰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 수위를 끌어올렸다.
"능력에 따른 인사"라는 당의 반박
거센 공세에 기본소득당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미정 당대표 권한대행은 창당 때부터 당의 성장을 이끌어온 인물을 용혜인 의원과의 사적 관계만 놓고 공직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공적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민주정당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맞받았다.
문 권한대행은 자신이 오히려 용 의원보다 박 부총장과 인연이 더 길다고 밝히면서, 그가 창당 이전부터 오랜 사회운동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자 전략기획본부장, 사무총장, 조직부총장, 전략기획부총장을 거치며 화려하지 않아도 당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해온 훌륭한 동지라고 두둔했다. 공당을 사적 관계로 운영되는 조직처럼 매도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신지혜 최고위원 역시 배우자가 핵심 당직을 맡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정당이라 낙인찍는 것은 당과 당직자, 당원 전체를 모욕하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박 부총장은 창당을 함께 일궈낸 동료이며, 능력으로 당직을 맡아온 사람이 결혼이라는 사적 관계 때문에 특혜를 받은 것처럼 그려지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다.
박기홍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 / 박기홍 부총장 페이스북
박기홍, 청년·노동 운동판에서 잔뼈 굵은 인물
박 부총장은 2010년대 초반부터 청년과 노동 분야 사회운동, 진보정당 활동을 병행해온 이력을 갖고 있다. 2014년에는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조합원 신분으로 노동당 후보로 나서 서울시의원 선거에 도전한 적도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의 초창기 활동 이력 전반이 다시 조명받는 흐름이다.
용혜인의 해명 "사퇴는 개인 욕심 문제가 아니다"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용 의원 본인도 입을 열었다. 그는 의원직 유지가 개인적 욕심이 아니라 당의 존립과 직결된 문제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당 소속 유일한 국회의원인 자신이 물러나면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개인의 선택이 당의 진로를 좌우할 수밖에 없는 소수 정당의 처지를 헤아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가족정당 논란까지 맞물리면서 파문은 쉽게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용혜인 의원. / 용혜인 의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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