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온 뒤에야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음악과 함께 서로의 삶을 나란히 지나온 밴드 크루앙빈이 다시 셋만의 음악으로 돌아가는 방법.
이름대로 살게 된다는 말처럼, 태국어로 ‘비행기’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3인조 밴드 ‘크루앙빈(Khruangbin)’은 지난 10여 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신들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어왔다. 세 사람이 나고 자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조그마한 펍에서 시작된 이들의 음악에는 밴드의 시작에 짙은 영감을 준 태국 록과 펑크부터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접해온 세계 곳곳의 음악이 자연스레 스며 있다. <The Universe Smiles Upon You> <Con Todo El Mundo> <Mordechai> <A LA SALA>까지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여러 음악가와 협업을 거친 끝에, 지금 이들이 골몰하는 것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더하기보다는 덜어내기를 택하고, 오직 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기며 처음 음악을 만들던 때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것. 올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리며 한국을 다시 찾은 베이시스트 로라 리, 드러머 DJ 존슨, 기타리스트 마크 스피어와 마주 앉아 서로의 곁을 지켜온 시간과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크 스피어 재킷, 셔츠, 팬츠 모두 Etro, 링은 모두 본인 소장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DJ 존슨 셔츠 PAFJ, 어깨에 걸친 블랭킷 OUWR, 카우보이 햇은 본인 소장품, 볼로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여러분이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주 한국적인 장소에서 화보 촬영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서울의 오래된 풍경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어떤가요?
로라 리(이하 로라) 사실 어제 멤버들이랑 숙소부터 이 동네까지 산책할 겸 걸었어요. 한국의 왕과 왕비를 모신 역사적인 장소에도 다녀왔고요. 제게는 서울 하면 굉장히 도시적인 풍경, 이를테면 고층 빌딩이나 빽빽한 스크린 같은 것들이 떠오르거든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깃든 장소에 와본 건 처음이라 새로워요. 오래된 집이 가진 질감도 무척 아름답고요.
마크 스피어(이하 마크) 요즘 한국 단편소설 모음집을 읽고 있는데, 그중에 한국의 전통 가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오늘 이곳에 와보니 소설 속 풍경을 머릿속으로 조금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어요.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린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를 하루 앞두고 만나게 됐어요. 공연을 위해 새로운 도시를 찾을 때마다 세 사람이 함께 하거나 각자 즐기는 루틴이 있나요?
로라 저는 무작정 걸어요. 비가 오든 맑든, 춥든 덥든요. 걷다 보면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겨요.
DJ 존슨(이하 DJ) 어디에 있든 되도록이면 셋이 함께 아침을 먹으려고 해요.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를 시작하죠. 아침부터 서로 연결되는 시간이 있어서 좋아요.
마크 종종 지도로 악기 상가나 레코드 숍을 찾아보고 걸어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을 골라요. 택시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 도시를 두루 볼 수 있으니까요.
로라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 때는 레코드 숍이 모여 있는 지하상가에 들렀어요. 지상에는 고급 쇼핑몰이 있는데 지하는 마치 시장 같은 곳이었죠.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굉장한 곳이었어요.
마크 거기서 밴드 산울림의 음반들을 구했어요. 여행지에서는 이런 곳을 우연히 발견하게 될 때가 있죠.
2018년 서울재즈페스티벌 이후 오랜만에 한국에서 오르는 페스티벌 무대죠. 무대에서 어떤 순간을 기대하고 있나요?
로라 전혀 모르겠어요. 정말 하나도요.(웃음)
마크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최대한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으려 해요. 미리 어떨 거라고 상상하면 기대한 그림에 사로잡혀 정작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로라 한국에서 처음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도 뭘 기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주 좋아하는 공연 중 하나로 남아 있죠. 한국에도 저희 팬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거든요.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요.
4년 전, 한국에서 열린 단독 공연의 앙코르 무대에서 마크가 ‘아리랑’을 연주했죠. 수많은 한국 노래 가운데 그 곡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마크 한국 곡 중에 제가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많지만, 누구나 아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아리랑’은 참 아름다운 곡이고요. 이번에도 그만큼 아름다운 다른 곡을 찾지 못한다면 아마 다시 연주할 것 같아요.(다음 날 무대에서 마크는 실제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로라 그 공연 이후에 산울림 음반을 몇 장 더 구하고 싶어서 앞서 말한 지하상가에 다시 들렀거든요. 레코드 숍 사장님과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분이 마크의 ‘아리랑’ 연주를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감정을 담아 연주하는 음악가는 많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데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어요. 무대 위에서는 객석에 있는 팬들이 우리 음악을 들으며 실시간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직접 겪을 기회가 없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관객이 경험하는 감정을 눈앞에서 본 것 같았어요.
그저 계속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한철만 지속되는 음악이 아니라, 바라건대 영원히 남을 음악을요. 저는 크루앙빈이 가진 에너지가 세상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처럼 서로를 갈라놓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에는 더욱이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음악을 만들고, 그런 영향을 세상에 남기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베이시스트 로라
크루앙빈의 곡은 대부분 가사가 없지만, 세계 어디에서든 관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여러분의 음악에서 언어 없이도 관객과 연결되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요?
마크 인스트루멘털 음악에는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의도를 담아 연주한 멜로디라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이 그런 것처럼요. 가사 없이도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 무척 많잖아요.
DJ 크루앙빈의 음악에서는 마크의 기타가 일종의 보컬리스트 역할을 해요. 멜로디의 힘이 강력하죠. 보컬리스트가 가사에 자기 감정을 담아 부르는 것처럼, 마크 역시 순간의 감정을 담아 멜로디를 연주해요. 그 감정은 언어를 초월해 모두에게 전달되고요. 지금껏 많은 나라에서 공연했지만 그곳의 언어를 꼭 할 줄 아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마음이 말하면, 마음으로 알아듣는 거죠.
크루앙빈의 음악에는 태국 펑크부터 중동의 소울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죠. 지금과 같은 음악적 색채를 띠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마크 저희 셋은 모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세계 곳곳의 음악을 접했어요. 음악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조차 없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음악을 흡수하며 자랐죠. 베트남, 인도, 서아프리카의 음악, 란체라와 노르테뇨, 자이데코, 컨트리음악…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예요. 휴스턴은 분명 크루앙빈의 정체성을 빚어준 곳이에요.
로라 런던과 LA에서 살아봤고 지금은 뉴욕에서 살지만, 다양성만큼은 어느 곳도 휴스턴을 이길 수 없어요.(웃음) 저는 삼투(osmosis)를 통한 영감을 믿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둘러싸면, 이를테면 좋아하는 종류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깊이 빠져 있다 보면 많은 것이 제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고 생각해요. 굳이 애쓰지 않아도요. 마크 맞아요. 듣는 음악을 하나하나 의식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멜로디를 만드는 방식 같은 것들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DJ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다니기 전까지는 휴스턴이 이렇게 음악적으로 다양한 곳인지 몰랐어요. 어린 시절부터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 페르시아계 가족이 살았어요. 매일 아침 일찍 그 집 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잔디에 물을 주면서 휘파람을 불었는데, 그 소리가 하도 커서 우리 집까지 들려왔거든요. 그런데 종종 마크가 연주하는 걸 듣는데 그때 듣던 휘파람의 멜로디가 떠오르는 거예요. 그게 특별한 일이란 걸 자랄 때는 몰랐죠. 휴스턴을 떠나고 나서야 ‘아, 나는 월드 뮤직을 길 건너편에서 접하고 있던 거구나’ 싶었죠.
세 사람은 어느덧 15년 가까이 한 팀으로 함께해왔죠. 음악을 만드는 일을 넘어, 오랜 시간 밴드를 함께 이끌어오는 동안 팀 안에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도 생겼을 것 같아요. 서로가 보기에 각자는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DJ 이렇게 셋을 모아 밴드를 시작한 게 로라예요. 지금도 사실상 크루앙빈의 디렉터 같은 존재죠. 시간과 예산을 지키게 해주고, 모든 일이 제대로 흘러가게 해줘요. 마크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이에요. 하나를 아주 깊이 파고들고, 계속 탐색하면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죠. 한 가지 일을 여러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미 괜찮은 방법을 찾았더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지 한번 보자”라고 말해요.
마크 ‘좋아, 아주 훌륭한 A안이야. 그런데 여기까지 갈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거죠.
DJ 그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찾다 보면 더 좋은 선택지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려는 사람은 많지 않죠. 보통은 썩 괜찮은 결과에 도달하면 “좋아, 이만하면 됐어” 하고 끝내버리고 말잖아요. 그런데 마크는 끝까지 파고들어요. 그리고 저는 그냥 벽에 붙은 파리처럼 옆에서 이 둘을 지켜보는 사람이고요.
로라 아니야.
마크 그건 아니지.
로라 우리의 중심을 단단히 붙들어주는 존재예요. DJ가 없었다면 우리 팀이 이렇게 오랜 시간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DJ는 줄기(trunk)고, 마크는 뿌리(roots)고, 나는 가지(branches)야.
DJ 우리는 나무인 거네.
지난해 데뷔 앨범 <The Universe Smiles Upon You>발매 10주년을 맞아, 처음 앨범을 녹음했던 텍사스의 헛간으로 돌아가 전곡을 다시 녹음한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죠. 오랜 시간이 지나 10년 전의 곡들을 다시 꺼내고 싶었던 이유는 무언가요?
로라 함께 음악을 만들며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에요. 나와 비슷한 것을 감각하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밴드 메이트를 찾는다는 것 말이에요. 세 사람이 이렇게 함께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놀라운 일이 있었고, 함께 음악을 만들면서 서로의 가장 좋은 면을 끌어낼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그걸 10년 동안 이어왔다는 건 굉장한 일이고요. 그 사실 자체를 한 번쯤 축하하고 싶었어요.
마크 1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 자체를 바꿔놓잖아요. 그러니 1집에 수록된 곡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연주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어요. 스타일적으로 변주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더라도 조금씩 다르게 연주했을 테고요. 우리는 이 앨범이 우리 곡을 스스로 다시 해석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유명한 보컬리스트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곡을 직접 쓰지는 않지만 주어진 곡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잖아요. 이미 1백만 번은 들어본 곡도 그가 부르면 새롭게 들리죠. 우리도 그런 방식으로 연주하고 싶었어요.
세 사람이 의기투합해 처음 녹음한 곡들을 같은 자리에서 연주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실감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로라제게 가장 크게 다가온 변화는, 우리가 이 10년을 축하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였던 것 같아요. 1집을 녹음할 땐 10년 뒤에도 우리가 함께 음악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요.
마크 그때 저는 ‘음반 하나는 만들 수 있겠네. 그런데 그걸로 끝이겠지. 아무도 관심 없을 거야. 밴드 이름도 이상하고’ 이랬어요. 그런데 웬걸, 지금은 한국의 이 근사하고 아름다운 집에 앉아 있네요.
DJ 우리가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로요!
가장 최근 발매한 네 번째 정규 앨범 <A LA SALA>역시 멤버들이 처음 음악을 만들던 때로 돌아가 그때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리며 만든 앨범이라고 알고 있어요. 요즘 멤버들에게 ‘처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화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DJ 3집과 4집 사이에 크루앙빈은 협업을 활발히 했어요.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하며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지만, 저와 로라, 마크 셋이서 그저 우리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함께 작업할 때 일어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요. 협업을 연달아 하고 나니 문득 우리가 하던 것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죠.
마크 처음으로 오롯이 우리 셋만으로 완성한 음반이었어요. 다른 누구의 힘도 없이. DJ 아주, 아주 먼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원점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어요. 일종의 리셋이었죠.
로라 뜨개질을 배우든 요리를 배우든, 새로운 기술을 하나 배우면 그걸 계속해서 넣고, 넣고, 또 넣고 싶어지잖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마크 단순한 걸 원하게 되는 거죠. 이것저것 계속 더해가다가 ‘아니,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웠어. 이젠 심플하게 갈래’ 하게 되는 거예요.
때로는 심플함에 도달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죠.
로라자기 자신이 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아요. 지금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낙인과 외부의 영향을 떠올리면 더욱 그래요. 자칫 단순해 보일 순 있지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 같아요. 그렇게 만든 결과물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오래 남는 것 같고요.
마크 심플한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면 돼요. 부티크 커피숍에서 엄청나게 공들여 만든 커피도 막상 마셔보면 과하게 시큼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허름한 다이너에 가서 ‘컵 오브 조(Cup of Joe)’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그래,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지’ 싶을 때가 있죠.
DJ 4집을 만들 때 우리의 마음가짐도 그랬어요. 의도적으로 무언가 덜어내고, 제거하고 있었죠. 녹음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무언가 계속 추가하게 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들어보면서 소리를 계속해서 비워내는 거예요. 정제된 소리가 날 때까지, 음 안에 충분한 공간이 생길 때까지요.
텍사스의 작은 헛간에서 오직 세 사람의 힘으로 시작한 밴드가 이제는 몇 음만 들어도 ‘크루앙빈스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뚜렷한 음악적 색깔을 갖게 됐죠. 그렇게 확고한 음악적 정체성이 세 사람에게 자유를 주나요, 아니면 때로는 넘어보고 싶은 경계처럼 느껴지기도 하나요?
로라 처음에는 완전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크루앙빈의 스타일과 비슷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오히려 반대로 느껴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이 스타일 자체가 우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소리를 내려고 의도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소리가 나는 거예요. 더 복잡하게 만들든 단순하게 만들든, 뭔가를 바꾸든 결국 우리다운 소리가 나는 거죠.
DJ 마치 목소리 같은 거예요. 자기 목소리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결국 주어진 목소리를 가지고 작업해야 하죠. 물론 사운드적으로 우리 음악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할 방법을 줄곧 탐색해왔지만, 결국에는 우리다운 소리가 나요. 음악가로서 이렇게 독특하고 분명한 사운드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선물 같은 일이죠. 우리가 서로를 만났고, 고유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고요.
로라 ‘그냥 이게 우리야’라고 받아들이면, 그때부터는 그저 그렇게 존재하면 돼요.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대중적인 성공 이후에도 그 ‘우리다움’을 지키기 위해 세 사람이 타협하지 않고 유지하려 한 태도가 있다면요?
DJ 모든 것에 ‘예스’를 외치지 않는 것.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많은 제안을 받았어요. 어떤 건 수익성이 좋아 보이고, 어떤 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릴 기회였죠. 하지만 그 제안이 밴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적인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단호하게 ‘노’라고 말해왔어요.
로라 그러니까, 우리에겐 ‘왜’가 있어야 해요. 단순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셋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여야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에겐 서로가 있어요. 어느 한쪽이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붙잡아주죠. 셋 중 한 명이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언제나 다른 두 사람이 곁에 있으니까요.
세 사람이 함께해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답이네요. 앞으로 이어질 10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요?
로라 그저 계속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한철만 지속되는 음악이 아니라, 바라건대 영원히 남을 음악을요. 저는 크루앙빈이 가진 에너지가 세상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처럼 서로를 갈라놓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대에는 더욱이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음악을 만들고, 그런 영향을 세상에 남기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DJ 동의해요. 이제 10년이 지났고, 앞으로 맞을 10년 동안은 지금까지 만들어온 토대 위에 계속 무언가를 쌓아가겠죠. 10년 전에는 지금을 전혀 내다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앞으로가 어떨지 조금은 그려져요. 그러니까… 아마 지금처럼 셋이 같이 놀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