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논란 일파만파… 미스코리아 진 우지원 딸 우서윤, 결국 입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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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논란 일파만파… 미스코리아 진 우지원 딸 우서윤, 결국 입 열었다

위키트리 2026-08-31 14:0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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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眞)’의 영예를 안은 우서윤이 당선 소감과 함께 향후 활동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우서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우서윤 인스타그램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우지원의 장녀로도 잘 알려진 우서윤은 왕관을 쓴 직후 불거진 다양한 관심과 논란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단점이 장점으로"… 억측·논란 정면 돌파 미스코리아 진 우서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70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최고 영예인 진으로 선발된 우서윤은 대회가 끝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공식적인 첫 소감을 전했다. 어린 시절 ‘붕어빵’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던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의 사절로 거듭나자 온라인상에서는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하는 등 성형 의혹을 비롯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우서윤이 왕관을 받고 있다 / 우서윤 인스타그램

이와 관련해 우서윤은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SNS를 켜면 많은 소식이 눈에 보이더라 어깨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보내주신 관심에 부응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다짐을 밝혔다.

갑작스러운 대중의 시선 속에서 불거진 악성 댓글이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했다. 그는 “많은 관심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에는 상처가 되는 말도 있지만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며 강인한 내면을 드러냈다. 또한 “앞으로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라며 일회성 해명보다는 진정성 있는 행보로 대중의 오해를 풀어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스포츠 선수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그가 미스코리아 무대에 도전하기까지의 과정도 눈길을 끌었다. 우서윤은 미스코리아 출전 계기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미스코리아 무대에 서고 싶었지만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 이미지도 그렇고 운동을 해왔던 터라 내가 설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라며 스스로 가졌던 주저함을 고백했다.

우서윤 사진 / 우서윤 인스타그램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도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우서윤은 “알고 보니 미스코리아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각자의 스토리, 개성을 중요시하는 대회였다”라며 대회의 본질을 깨닫고 용기를 냈음을 밝혔다.

특히 이번 도전은 그간 스스로 콤플렉스로 여겼던 신체적 조건과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우서윤은 “사실 살아오면서 큰 키가 콤플렉스였는데 미스코리아에 도전하면서 단점이 곧 장점이 됐다. 키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이 그랬다. 대회를 거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단점이 장점이 되는 경험을 했다”라고 덧붙이며 대회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과정을 설명했다.

우서윤 일상 사진 / 우서윤 인스타그램

왕관을 든 그가 그리는 향후 행보 역시 명확했다. 미의 상징을 넘어 누군가의 귀감이 되고 싶다는 포부다. 우서윤은 “어린 시절 미스코리아 선배님들을 보면서 꿈을 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내가 꿈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무대인 만큼 그 소중함을 알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지내겠다”며 대중 앞에 서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외곽 슈터'에서 명실상부 에이스로… '저평가' 뒤집은 우지원의 득점력

한편 우서윤의 당선 소식과 함께 그의 친부인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우지원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 업적 역시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우지원은 한국 농구 부흥기였던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KBL) 초기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스타 플레이어다.

우지원 사진 / 우지원 인스타그램

다만 프로 초창기 시절의 우지원은 일각에서 저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기준으로 압도적인 돌파력을 갖춘 유형의 플레이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량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시선이 존재했다. 실제로 프로 초기 우지원의 플레이 스타일은 외곽에서 폭발적인 득점을 올리는 전형적인 슛 전문 기계에 가까웠다.

여기에 당시 그의 소속팀이었던 대우증권 및 신세기통신이 6강 플레이오프에는 턱걸이로 진출하더라도 4강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거나 팀 성적이 하위권에 머무르는 등 비인기 팀의 굴레를 쓰면서 팀 성적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다. 당대 프로농구는 ‘이-조-추(이상이-조성원-추승균)’ 라인을 앞세운 현대가 대세를 주도하고 있었기에 우지원이 리그의 절대적인 주역으로 리그 전체를 흔들지는 못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를 향한 비평과 한계론은 경기장에서 증명된 압도적인 슈팅 능력 앞에 무색해졌다. 외곽슛 특화 플레이어라는 평가 속에서도 우지원은 정확한 슛으로 제 몫을 다했다. 적어도 슛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집어넣는 능력을 자랑했고 인천 대우 시절에는 매 시즌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본으로 올리며 팀의 핵심 주포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 기록과 팀 내 비중 면에서 볼 때 그는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로서 매 경기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낸 선수였다.

우지원 프로필 사진 / 우지원 인스타그램

이후 우지원의 커리어는 모비스로 이적하고 양동근, 함지훈 등 뛰어난 후배들이 팀에 합류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선수 생활 내내 쉽게 인연을 맺지 못했던 프로농구 정상의 자리에 비로소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다.

우지원은 2006년 12월 월간 MVP를 수상하며 베테랑의 저력을 과시했고 식스맨상을 수상한 2006-07 시즌에는 마침내 그토록 열망하던 첫 우승 반지를 손에 쥐었다. 주전에서 식스맨으로 역할이 변했음에도 팀을 위해 헌신하며 이뤄낸 결실이었다.

그는 첫 우승 이후에도 꾸준히 식스맨으로서 벤치 자원으로 활약했다. 나이가 들면서 경기 내에서의 직접적인 활약상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코트 밖과 벤치에서 베테랑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은 단연 우지원의 몫이었다. 베테랑의 헌신에 힘입은 팀은 2009-10 시즌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우지원 역시 자신의 커리어에 두 번째 우승 반지를 추가했다.

2009-10 시즌 우승을 끝으로 우지원은 명예롭게 코트를 떠나기로 결정, 2010년 정든 팬들 앞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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