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③ 김환기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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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③ 김환기 ‘달항아리’

문화매거진 2026-08-31 13:11:06 신고

[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② 이대원 ‘농원’에 이어 
 

▲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
▲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60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김환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푸른 추상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점의 세계에 도달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반복해서 그린 소재가 있다. 바로 조선의 백자, 그중에서도 둥근 달항아리다.

김환기는 1930년대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입체주의와 추상미술 등 서구 현대미술을 접했다. 그러나 귀국 후에는 서양의 추상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한국의 자연과 전통에서 새로운 소재를 찾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산과 달, 매화, 사슴, 학, 그리고 백자 항아리가 그의 그림에 자주 보인다. 

▲ 김환기, 항아리, 1956
▲ 김환기, 항아리, 1956


그는 실제로 고미술품과 도자기를 수집했고, 그중에서도 달항아리를 유난히 아꼈다고 한다. 한국 전쟁 피난 시절에서 달항아리를 우물에 숨겨둘 만큼 아꼈고, 서울과 파리 뉴욕으로 거처를 옮길 때에도 항아리를 곁에 두고 그 형태와 미감을 탐구했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로 보름달처럼 둥글고 희어 달항아리라 불린다. 특히 달항아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만드는 과정에서 큰 몸체를 위아래로 나누어 만든 뒤 이어 붙이기 때문에 미묘하게 기울거나 비대칭적인 형태가 생긴다. 하지만 김환기는 그런 자연스러운 형태에서 오히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둥글지만 완벽하게 계산되지 않은 형태, 화려한 장식 없이 흰빛만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자연스러움과 절제의 감각에 잘 맞았던 것이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 김환기

▲ 김환기, 항아리, 1958
▲ 김환기, 항아리, 1958


김환기의 그림 속 달항아리는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실내에 놓인 하나의 도자기로 그려졌지만, 점차 매화와 나무, 새, 달과 함께 등장하면서 하나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특히 1958년 파리에서 그린 ‘항아리’를 보면, 푸른 화면 위에 놓인 백자 안에는 산등성이와 달,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들이 담겨 있다. 타지에서 떠올린 그리운 한국의 풍경을 항아리 안에 그려 넣은 듯한 작품이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더 이상 실내에 놓인 정물로 표현되지 않는다. 달이나 산처럼 한국의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고, 김환기가 기억하는 고향의 풍경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자신이 오래 보고 기억한 자연의 이미지를 항아리의 둥근 형태 안에 다시 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김환기가 그린 한국의 풍경은 특정한 산이나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아름다웠던 산과 달, 매화와 백자를 한 화면 안에 모아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었다. 그중 흙으로 빚어졌지만 달을 닮고, 완벽하지 않은 둥근 형태 속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달항아리는 김환기에게 하나의 사물을 넘어선 존재였다. 그 안에는 그가 사랑했던 산과 달, 바다와 매화, 그리고 멀리 떠나서도 잊지 못했던 한국의 자연과 정서가 함께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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