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칼럼] 종말의 세계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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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칼럼] 종말의 세계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문화매거진 2026-08-31 10:54:46 신고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은 90년대였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없는 집도 많았고, 아이들은 방과 후 자연스럽게 운동장에서 모여 놀거나(얼음땡, 고무줄, 팽이, 그네 등 온몸을 사용해야 했던 놀이가 주였다) 동네 어귀 소독차의 뒤꽁무니를 좇아 뛰어다녔다. 여름이면 매미가 어찌나 많은지, 초저녁부터 불이 들어오는 간판들마다 시커먼 게 턱턱 붙어 있었다. 그 쨍한 울음소리 아래 에어컨이 없어 더위를 식히러 나와 앉아있는 동네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매미를 잡는다고 바빴다. 그렇게 덥고 부산스러워도 얼굴 찌푸리는 이 없이 여름을 났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코딩으로 게임을 만들거나 콘텐츠를 기획하여 유튜브를 하며 논다는데, 그 시절과의 차이가 괴이하다. 뭔가를 만들어 놀이한다는 건 같은데 종이죽 가면을 만들어 내 얼굴에 쓰고 노는 것과 가면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 캐릭터에게 씌어 주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의 어린아이와 지금의 어린아이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게 맞을까?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이기훈 세계의 아이들은 가면놀이를 하고 있다. 종말 후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 남은 아이들이 저마다 가면을 쓰고 협력하며 황폐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엔 아주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 같아 한 발 떨어져 전시를 즐겼다. 그런데 이 전시를 곱씹기 위해 ‘그때’와 ‘지금’의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니 글쎄. 문득 어떤 뉴스 제목이 떠올랐다. 

“2030 청년들 사이 무섭게 퍼지는 현상 / ‘생일 알람’ 끄고 잠수..”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피로를 줄이기 위해 생일 알람을 끄거나 만남 자체를 줄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작가의 종말 이야기와 함께 이 뉴스를 보니 종말이란 단순히 의식주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붙어 있던 의무와 소비를 덜어내려는 선택 또한 현실 세계의 종말로 과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클래스에서 한글 쓰기 수업을 듣던 한 초등학생은 마인크래프트가 취미라고 했다. 집을 짓기 위해 좋은 광물을 찾아 탐험한다는데, 팀을 이뤄 플레이하기보단 혼자서 하는 일들을 들려주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플레이하는 많은 아이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조금 기묘했다. 아이가 벌써 혼자 지내는 방법을 다 익혀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잘 몰라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혼자이기 전에 같이 부딪히고 포옹하는 경험이 다채롭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저 ‘함께’ 무언가를 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기를 바란다.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기훈 원화전 '내일의 낙원' 중 / 사진: 유정 제공


전시 소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이야기다. (중략)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각기 동물 가면을 쓴 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땅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그토록 소중히 갈무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가면 뒤에 숨어 제 몫의 일을 수행하던 아이들의 뒷모습은 우리 일상의 곁 어디에나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대가와 거래가 우선시되지 않는 관계의 부재 또한 종말의 한 형태라면 그 세계에도 분명 횃불 하나 움켜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혹은 그에 관한 방편이 마련되어 있기에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불빛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종말 속에서 놀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한 ‘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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