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은 90년대였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없는 집도 많았고, 아이들은 방과 후 자연스럽게 운동장에서 모여 놀거나(얼음땡, 고무줄, 팽이, 그네 등 온몸을 사용해야 했던 놀이가 주였다) 동네 어귀 소독차의 뒤꽁무니를 좇아 뛰어다녔다. 여름이면 매미가 어찌나 많은지, 초저녁부터 불이 들어오는 간판들마다 시커먼 게 턱턱 붙어 있었다. 그 쨍한 울음소리 아래 에어컨이 없어 더위를 식히러 나와 앉아있는 동네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매미를 잡는다고 바빴다. 그렇게 덥고 부산스러워도 얼굴 찌푸리는 이 없이 여름을 났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코딩으로 게임을 만들거나 콘텐츠를 기획하여 유튜브를 하며 논다는데, 그 시절과의 차이가 괴이하다. 뭔가를 만들어 놀이한다는 건 같은데 종이죽 가면을 만들어 내 얼굴에 쓰고 노는 것과 가면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 캐릭터에게 씌어 주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의 어린아이와 지금의 어린아이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게 맞을까?
이기훈 세계의 아이들은 가면놀이를 하고 있다. 종말 후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 남은 아이들이 저마다 가면을 쓰고 협력하며 황폐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엔 아주 먼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 같아 한 발 떨어져 전시를 즐겼다. 그런데 이 전시를 곱씹기 위해 ‘그때’와 ‘지금’의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니 글쎄. 문득 어떤 뉴스 제목이 떠올랐다.
“2030 청년들 사이 무섭게 퍼지는 현상 / ‘생일 알람’ 끄고 잠수..”
친구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피로를 줄이기 위해 생일 알람을 끄거나 만남 자체를 줄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작가의 종말 이야기와 함께 이 뉴스를 보니 종말이란 단순히 의식주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붙어 있던 의무와 소비를 덜어내려는 선택 또한 현실 세계의 종말로 과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클래스에서 한글 쓰기 수업을 듣던 한 초등학생은 마인크래프트가 취미라고 했다. 집을 짓기 위해 좋은 광물을 찾아 탐험한다는데, 팀을 이뤄 플레이하기보단 혼자서 하는 일들을 들려주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 플레이하는 많은 아이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조금 기묘했다. 아이가 벌써 혼자 지내는 방법을 다 익혀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잘 몰라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혼자이기 전에 같이 부딪히고 포옹하는 경험이 다채롭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저 ‘함께’ 무언가를 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기를 바란다.
전시 소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이야기다. (중략)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각기 동물 가면을 쓴 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땅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그토록 소중히 갈무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가면 뒤에 숨어 제 몫의 일을 수행하던 아이들의 뒷모습은 우리 일상의 곁 어디에나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대가와 거래가 우선시되지 않는 관계의 부재 또한 종말의 한 형태라면 그 세계에도 분명 횃불 하나 움켜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혹은 그에 관한 방편이 마련되어 있기에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인류의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불빛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종말 속에서 놀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한 ‘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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