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단 하루,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일 아침 밥상에서 마주하는 성스러운 국물 요리가 있다. 뽀얗게 우러난 진한 국물 속에 부드럽고 미끈한 갈색 해조류가 듬뿍 담긴 ‘미역국’이다. 참기름에 달달 볶아낸 소고기를 듬뿍 넣고 푹 끓여내면 그 어떤 화려한 수프나 찌개도 부럽지 않은 깊고 진한 맛이 난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몸을 풀기 위해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자, 생일날 나를 낳아 고생한 어머니를 기억하며 먹는 미역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생명과 탄생을 상징하는 영혼의 음식이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는 미역이, 바다 건너 해외에서는 바닷속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세계 100대 악성 외래종’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 징그러운 해초를 박멸하기 위해 해마다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타국에서는 골칫거리 잡초 취급을 받는 해초가, 어떻게 한국에서는 생일상을 장식하는 최고의 보양식이 되었을까.
토종 생물들 싹쓸이한다… 해외 바다를 점령한 괴물 해초의 정체
원래 미역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연안의 차가운 바다에서만 자라는 해조류였다. 하지만 무역선들이 바다를 오갈 때 배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채워 넣는 물(평형수)에 미역의 포자가 섞여 들어가면서, 유럽과 북미, 호주 연안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문제는 미역의 끔찍한 번식력이었다. 바위나 방파제에 한 번 달라붙은 미역은 하루에 수 센티미터씩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이 거대한 해초 숲은 바닷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고, 그 결과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토종 해양 생물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징그럽게 미끈거리는 촉감 때문에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기피 대상 1호가 되었다. 먹는 법도 모르고 억세게 자라기만 하는 이 낯선 생물은, 해외에서는 그저 바다의 쓰레기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멸해야 할 악마의 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래가 새끼 낳고 먹는 모습에서 착안… 피를 맑게 하는 천연 철분제
해외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는 이 해조류의 진가를 우리 조상들은 일찌감치 알아챘다. 옛 문헌을 보면, 새끼를 낳느라 상처를 입은 어미 고래가 바닷속 미역을 뜯어 먹으며 피를 멎게 하고 상처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바다가 알려준 생존의 지혜를 밥상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실제로 미역은 놀라운 과학적 효능을 품고 있다. 생미역을 만질 때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알긴산’ 성분은 몸속의 탁한 피를 맑게 정화하고 찌꺼기를 배출해 주는 훌륭한 천연 청소부 역할을 한다. 또한 요오드와 철분이 엄청나게 풍부해, 출산 과정에서 피를 많이 흘려 기력이 쇠해진 산모의 자궁을 빠르게 수축시키고 맑은 혈액을 듬뿍 보충하는 데 이만한 천연 보약이 없다. 외국인들은 징그럽다며 버리는 그 미끈거림 속에 생명을 살리는 핵심 성분이 숨어있었던 셈이다.
참기름에 달달 볶아 진하게… 오래 끓일수록 뽀얗게 우러나는 국물의 마법
질기고 비릿한 생미역을 최고의 국물 요리로 바꾸는 비결은 볶음과 끓임의 과정에 있다. 물에 불려 오동통해진 미역의 물기를 꽉 짜낸 뒤, 고소한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냄비에서 달달 볶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해조류 특유의 비린내는 기분 좋은 고소함으로 변하고, 질긴 조직이 야들야들하게 풀어진다.
여기에 짭짤한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물을 부어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오래 끓이면 마법이 일어난다. 미역 속의 영양분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국물이 마치 사골을 며칠 동안 고아낸 것처럼 뽀얗고 진하게 우러나기 때문이다. 고기를 넣지 않고 참기름과 미역만으로 끓여도 훌륭하지만, 큼직하게 썬 붉은 양지머리 고기나 시원한 바지락을 듬뿍 넣고 끓여내면 숟가락을 멈출 수 없는 엄청난 감칠맛이 폭발한다. 타국의 바다에서는 흉물스러운 골칫거리가, 한국 어머니들의 지혜와 손맛을 만나 생명을 살리는 가장 따뜻한 국물 요리로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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