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서 '무한'으로…쿠사마 야요이, 97년의 예술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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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 '무한'으로…쿠사마 야요이, 97년의 예술을 남기다

문화저널코리아 2026-08-30 08:02:21 신고

쿠사마 야요이(사진 제공_쿠사마 스튜디오)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점’ 하나를 무한으로 확장하고, 평범한 ‘호박’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바꾼 일본의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7세.

 

쿠사마 야요이 스튜디오는 27일 쿠사마가 지난 14일 일본 도내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발표했다. 스튜디오는 “미술을 중심으로 퍼포먼스, 소설, 시 등 다방면에서 전위예술가로서 국제적인 활동에 모든 것을 바쳤으며, 죽는 직전까지 그림 붓을 놓지 않고 영원한 사랑과 영혼을 탐구한 97년의 생애였다”고 밝혔다.

 

1929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환시와 환청을 경험했고, 10세 무렵부터 물방울과 그물망을 반복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게 되는 ‘반복’과 ‘무한’의 조형 언어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셈이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을 무대로 기존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회화의 화면을 넘어 설치와 퍼포먼스, 문학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거울과 빛, 반복되는 이미지로 관람객이 작품 속에 직접 들어가는 ‘인피니티 미러룸’을 탄생시켰다.

2014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됐던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쿠사마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결정적 전환점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과 런던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주요 미술관으로 확산됐고, ‘인피니티 미러룸’은 현대미술을 넘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한국은 쿠사마의 예술을 대중에게 가장 친숙하게 전달한 주요 무대 가운데 하나였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시작된 쿠사마의 개인전은 아시아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전시로 이어졌고, 이듬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로 다시 관객을 만났다. 당시 전시는 신작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120여 점을 선보이며 쿠사마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국내에 소개했다.

 

예술의전당은 당시 전시를 ‘땡땡이 할머니의 무한한 현실 너머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고, 2014년 6월호에서는 전시를 다시 조명하며 쿠사마의 작품을 ‘온 세상 아픔을 예술로 위로하는 꿈’으로 바라봤다.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한국 관객에게 쿠사마는 무엇보다 ‘호박’의 작가였다.

 

검은 점으로 뒤덮인 노란 호박은 단순한 조각을 넘어 쿠사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시각적 언어가 됐다. 하지만 그 강렬한 색과 유쾌한 이미지 뒤에는 반복과 강박, 환영과 자기소멸이라는 작가의 깊은 내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쿠사마에게 ‘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하나의 점을 반복해 화면과 공간 전체를 뒤덮음으로써 개별적인 존재가 사라지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자기소멸’의 개념을 탐구했다. 거울방 역시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인간이 무한히 복제되고,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쿠사마의 작품은 처음에는 화려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그 안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존재와 고독,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그의 ‘호박’ 역시 마찬가지다. 익숙하고 친근한 사물이지만, 쿠사마의 점을 만나는 순간 현실의 사물은 낯선 우주로 변한다. 쿠사마는 그렇게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한국에서 그의 예술은 전시장을 넘어 대중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제주 본태박물관에는 대표작 ‘호박’과 ‘인피니티 미러룸-영혼의 광채’가 상설로 소개되며 한국 관객들이 그의 작품세계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쿠사마는 자신의 예술을 특정한 미술사적 범주에 가두는 것을 경계했다. 생전 “내가 죽은 뒤 어떻게 분류될지 상상할 수 없다”며 “아웃사이더라는 것이 좋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미술사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기보다 끝없이 작업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쿠사마의 죽음은 한 시대의 ‘스타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20세기 전위미술에서 출발한 한 예술가가 어떻게 자신의 상처와 환영을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바꾸고, 그것을 21세기의 가장 강력한 시각적 경험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생애의 종착점이다.

 

‘점’은 무한이 됐고, ‘호박’은 세계인이 기억하는 현대미술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이제 쿠사마 야요이는 작품만 남긴 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점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하나의 점이 또 하나의 점을 만나고, 하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면서.

 

쿠사마 야요이의 97년은 끝났지만, 그가 만든 ‘무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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