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검진을 위해 대변을 채취하거나 대장내시경 전날 장을 비우는 과정 없이, 피를 한 번 뽑는 것만으로 대장암 위험을 가려낼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암 진단 분야에서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이다. 이 기술은 혈액 속을 떠다니는 미세한 DNA 조각을 분석해 암의 존재 가능성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암 조직을 직접 떼어내 검사하는 기존 조직검사와 달리 혈액 등 체액을 이용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액체생검 기술에 속한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세포유리DNA 분석으로 대장암 환자를 높은 민감도로 선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포유리DNA란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진다. 세포가 죽거나 손상되는 과정에서 세포 안에 있던 DNA 일부가 작은 조각으로 혈액 속에 방출된다. 이것이 세포유리DNA(cfDNA)다.
암환자의 혈액에는 정상세포에서 나온 cfDNA뿐 아니라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 조각도 섞여 있을 수 있다. 이를 흔히 순환종양DNA(circulating tumor DNA·ctDNA)라고 한다.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는 정상세포의 DNA와 여러 가지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뿐 아니라 DNA 조각의 길이, 잘리는 위치, 말단 구조, 유전체에서 DNA 조각이 나타나는 분포 등에도 암과 관련된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혈액 속 수많은 DNA 조각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암세포가 남긴 일종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의 기본 원리다.
AI는 혈액 속에서 어떻게 암의 흔적을 찾을까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은 액체생검 및 임상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GC지놈과 함께 세포유리DNA를 이용한 대장암 혈액진단법의 성능을 분석했다. 연구에는 대장암 환자 302명,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 등 총 1677명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먼저 혈액에서 세포유리DNA를 추출한 뒤 NGS(차세대염기서열분석)를 이용해 유전정보를 분석했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 하나만 찾는 방식이 아니라 DNA 절편의 길이와 말단 구조, 유전체상 분포 등 다양한 특징을 AI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켜 암세포에서 유래한 DNA의 특징을 찾아내도록 한 것이다.
암세포에서 나온 세포유리DNA와 정상세포에서 나온 DNA가 서로 다른 ‘조각 패턴’을 보인다는 점을 AI가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장암 가능성을 판별하는 방식이다.
대장암 환자 10명 중 9명 찾아냈다
연구 결과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였다. 민감도란 실제 질환이 있는 사람 가운데 검사에서 양성으로 정확하게 찾아낸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대장암 환자 10명 가운데 약 9명을 찾아냈다는 의미다. 대장암이 없는 사람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특이도는 94.7%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초기 대장암에서도 비교적 높은 민감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대장암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였다. 내시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초기 대장암에서도 90%의 민감도를 나타냈다.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은 진행성 대장용종도 58.3%의 민감도로 검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진행성 대장용종 민감도는 약 25~40% 수준이다. 이는 대장암 자체뿐 아니라 암으로 진행하기 전 단계의 병변까지 혈액으로 선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임상소화기학회의 국제학술지 ‘미국소화기학회지(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에 게재됐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 대장암 검진에서는 대변에 미세하게 섞여 있는 혈액을 확인하는 분변잠혈검사가 기본 검사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양성이 나오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권고한다.
분변잠혈검사는 직접 대변을 채취해야 하고, 대장내시경은 검사 전 장정결제를 복용해 장을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대장암 검진을 미루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44.4%로 주요 암종 가운데 낮은 수준이다.
혈액 기반 검사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검진에 대한 심리적·신체적 부담을 낮추고 검진 참여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액검사가 대장암 검진이나 대장내시경을 당장 대체하기에는 이르다. 혈액검사에서 암 위험 신호가 발견되더라도 암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고 조직을 검사하거나 용종을 제거하려면 결국 대장내시경이 필요하다.
민감도 90.4%라는 것은 대장암을 검사에서 놓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특이도 역시 100%가 아니므로 암이 없는 사람이 양성으로 판정돼 추가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 국가검진이나 일반 진료에 널리 적용하려면 다양한 연령과 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추가 검증과 비용효과성 평가, 기존 검진법과의 역할 설정 등이 필요하다. 특히 증상이 있거나 대장암 가족력 등 고위험 요인이 있는 사람이 혈액검사 결과만으로 대장내시경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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