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제 손에 꼽는다…사라지는 전통찻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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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제 손에 꼽는다…사라지는 전통찻집을 찾아서

위키푸디 2026-08-29 13: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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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인근 프레스센터 건물,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면 한약재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온다. 대나무발 뒤로는 손질하지 않은 인삼 뿌리와 마가 무더기로 쌓여 있고, 그 위쪽 검은 그릇에는 얇게 썬 인삼 몇 조각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벽에는 손으로 눌러 쓴 메뉴판과 "직접 정성껏 달인 전통차를 온가족의 건강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포장해 드립니다"라는 오래된 문구가 나란히 붙어 있다.

계단 아래, 정성으로 달인 한 그릇

청화백자 무늬가 둘러진 그릇에는 짙은 검붉은 십전대보탕이 가득 담겨 나온다. 숟가락으로 떠 보면 걸쭉한 국물 사이로 잘게 썬 호두 조각이 몇 알 떠오른다. 곁들이는 접시에는 대추와 곶감을 조린 정과, 볶은 호박씨, 새콤달콤한 노란 정과가 얌전히 놓인다. 삶은 마를 썰어 낸 접시도 따로 나온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릇 하나하나에 손이 많이 간 흔적이 보인다.

메뉴판에는 십전대보탕과 오미자차, 복분자차, 대추차가 나란히 6000원에 적혀 있다. 십전대보탕은 당귀와 천궁, 감초, 백출, 숙지황, 황기 등 열 가지가 넘는 약재를 달여 만든다는 설명이 함께 붙어 있다. 명절이면 부모님이나 은사께 드릴 선물로, 수험생 자녀를 둔 집에는 몸보신용으로 홍보하는 문구도 눈에 띈다. 선물용 건강 한방차는 1.8리터 한 통에 3만 5000원. 손으로 쓴 이 가격표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키오스크 화면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가게 앞에는 생수병 묶음이 그대로 쌓여 있고, 자개 대신 초록빛 타일이 벽을 두르고 있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그날 배달된 신문이 놓여 있고,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낡은 가죽 의자 몇 개만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화려한 인테리어도, SNS에 올리기 좋은 조명도 없다. 그저 오래전부터 해오던 방식 그대로, 매일 약재를 달이고 손으로 값을 써 붙이는 가게다.

프랜차이즈가 삼킨 자리에 남은 냄새

한옥을 개조하거나 고재 가구로 꾸미고 한방 약재를 우린 차를 파는 전통찻집은 1980년대를 지나며 다방, 커피숍과 갈라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때만 해도 도심 골목마다 이런 찻집이 흔했지만,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남았다. 이 계단을 다시 올라 몇 걸음만 걸으면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지상에는 원두 향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카페 간판이 줄지어 서 있다.

스타벅스가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뒤 원두커피 프랜차이즈는 빠르게 늘었고, 스페셜티 커피와 감성 인테리어를 앞세운 신생 카페들이 SNS로 손님을 불러모으는 사이 이런 찻집은 그런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계청과 공정거래위원회 집계를 보면 전체 음식점 수는 2020년 40만 개에서 2023년 38만 5000개로 줄었지만, 프랜차이즈 음식점 수는 3만 개에서 3만 6000개로 늘었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집계로는 소상공인 창업 후 3년 생존율도 2020년 50.2%에서 2024년 33.6%까지 떨어졌다. 손 글씨 메뉴판을 붙여 놓은 이런 찻집이 문을 닫은 자리에는, 대부분 어디서나 똑같은 얼굴을 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선다.

임대료가 오르는 만큼 대를 이을 사람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매일 새벽 약재를 달이고 손으로 값을 적어 붙이는 이런 일을, 젊은 세대가 새로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곳씩 문을 닫으면서, 전통찻집이라는 업종 자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래도 이 자리를 지키는 손님들은 대부분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다. 커피 대신 뜨거운 보양차 한 잔으로 몸을 데우고, 다시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돌아간다. 유행과 무관하게 이 자리를 지키는 몇 안 되는 이유다. 이런 찻집이 언제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풍기는 한약재 냄새만큼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채운 도심 어디에서도 쉽게 맡을 수 없는 냄새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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