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② 이대원 ‘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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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② 이대원 ‘농원’

문화매거진 2026-08-29 12:50:18 신고

[노묘정 칼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작가들① 유영국 ‘산’에 이어 
 

▲ 이대원, 농원, 1983
▲ 이대원, 농원, 1983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유영국이 한국의 산을 강렬한 색과 단순한 형태로 바꾸었다면, 이대원은 나무와 들판, 과수원을 수많은 색과 붓질이 움직이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화려한 원색과 점처럼 흩어지는 붓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대원이 처음부터 이러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그의 화풍은 서양화와의 만남, 당시 한국 화단의 변화,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본 파주의 농원을 거치며 만들어졌다.

서양화와 강렬한 색을 배우다

이대원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일본인 화가 사토 구니오에게 유화를 배웠다. 사토 구니오는 야수파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이다. 이대원 역시 그에게서 영향을 받아 색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분위기와 감각을 만드는 요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이대원, 뜰, 1939
▲ 이대원, 뜰, 1939


1939년 그의 작품인 ‘뜰’에서 이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이때의 영향과 경험이 훗날 그의 과수원에서 나무와 들판을 붉고 노랗고 푸른색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의 토대가 되었다.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자신의 방법을 찾다

▲ 이대원, 산, 1963
▲ 이대원, 산, 1963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 화단에는 서구 현대미술의 영향과 함께 추상미술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대원이 그린 1963년의 ‘산’을 보면 역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화면의 구성 자체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대원은 자연의 형상을 완전히 지우고 추상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이때 추상미술에서 배운 단순화와 화면 구성의 감각을 나무와 산, 들판 같은 구체적인 자연 안에 다시 적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 이대원, 산, 1964
▲ 이대원, 산, 1964


1964년의 ‘산’에서는 붉은색과 노란색, 파란색처럼 훨씬 선명한 색이 등장한다. 산을 이루는 형태도 단단한 색면으로만 머물지 않고, 짧은 선과 점 같은 붓질로 잘게 풀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이대원이 서예와 조선 수묵화, 중국 청대의 묘화법과 같은 동양 회화의 선과 붓질에 관심을 넓혀간 영향도 있었다. 그는 서양회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동양 회화의 선과 붓질을 접목시켜 점차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만들어간 것이다. 형태를 단순화했던 시기를 지나, 색과 붓질 자체로 자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농원에서 완성된 이대원의 풍경

▲ 이대원, 대추나무, 1995
▲ 이대원, 대추나무, 1995


이러한 변화가 자신만의 화풍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파주의 농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한자리에서 계속 바라볼 수 있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지며 가을이면 과일이 익는 계절의 변화, 빛의 방향과 바람에 따라 잎의 색과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들을 오래 관찰하며 화면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그의 그림도 함께 달라졌다. 처음에는 비교적 분명했던 나무의 윤곽이 점차 짧은 색선과 색점으로 풀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붓질은 나무뿐 아니라 땅과 산, 하늘까지 화면 전체로 퍼져나갔다. 후기의 과수원에 이르면 나무와 들판의 경계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색과 붓질의 리듬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랜 시간 농원을 바라보며 느낀 생동하는 자연의 감각을 자신의 회화 언어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농원을 통해 그린 한국의 풍경은 고요하게 멈춰 있는 자연이 아니라, 계절마다 피고 지고 자라며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는 자연이었다. 현실의 과수원이 그의 그림처럼 붉고 파랗게 빛나지는 않지만, 수많은 색과 선으로 뒤섞인 그의 화면에서는 오히려 그곳의 빛과 바람, 시간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평범한 파주의 농원은 그렇게 그의 화면 속에서 자연의 생명과 시간이 흐르는 풍경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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