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자사주를 10조원 넘게 사들이며 국내 증시의 ‘최대 매수 주체’로 떠올랐다. 두 회사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힘입어 코스피 하단은 단단히 지지되고 있지만, 외국인·개인·연기금이 일제히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지수는 7,000선을 넘지 못한 채 박스권에 갇혀 있다.
28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서비스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기타법인은 이달 20일부터 28일까지 7거래일 연속 코스피 시장에서 하루 1조원대 순매수를 이어갔다. 8월 1∼19일 일평균 187억원에 불과하던 순매수 규모가 20일을 기점으로 폭증한 것이다. 이 기간 기타법인의 코스피 누적 순매수액은 10조1천87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7조6천685억원, 개인은 2조7천974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기관은 전체적으로 3천4억원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연기금은 3천70억원 매도 우위를 보이며 차익을 실현했다. 국내 증시 ‘투톱’의 자사주 매입을 주가 하락 없이 보유 물량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개별 종목별로 보면 자금 흐름은 더욱 뚜렷하다. 기타법인은 이 기간 삼성전자를 2조4천736억원 순매수한 반면 개인(-1천401억원), 외국인(-9천484억원), 기관(-1조3천763억원)은 모두 순매도에 나섰다. SK하이닉스 역시 기타법인이 7조6천207억원 순매수하는 동안 개인(-2조1천690억원), 외국인(-4조8천706억원), 기관(-5천739억원)은 매물을 쏟아냈다.
연기금은 삼성전자를 2천483억원 순매도했지만, SK하이닉스는 443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사주 매입이 곧 소각으로 이어지는 SK하이닉스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에서 기타법인의 매수 기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8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15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공시했다. SK하이닉스도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 40조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할 계획이다.
이날까지 두 종목에서 기타법인의 누적 순매수액이 10조94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약 45조원어치 자사주가 추가로 시장에서 흡수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권범석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현재 속도로 두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지속한다면 앞으로 약 30거래일, 최소 한 달 반 동안 기타법인 순매수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코스피 지수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시작된 20일 이후 코스피는 6,700∼6,900선 박스권을 오르내리는 데 그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대표주인 엔비디아가 시장 기대를 크게 웃도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며 AI·반도체 업황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낸 전날에도 코스피 상승률은 1.53%에 머물렀다. 같은 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1.72%, 2.49% 오르는 데 그쳤다.
미국 반도체주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최근 5거래일 상승률은 0.70%에 불과하다. 과도한 미국 국가부채, 이란 전쟁에 따른 고유가 여파로 미 국채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미 30년물 국채금리는 5.3%대까지 치솟아 2007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재매입) 규모를 최소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지만, 금리 안정을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시장의 시선은 한국시간으로 이날 밤 예정된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잭슨홀 회의 연설에 쏠려 있다. 추가 긴축 가능성이나 장기 금리 경로에 대한 시그널에 따라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도가 크게 요동칠 수 있어서다.
빅테크·AI 업종을 둘러싼 또 다른 변수는 대형 기업공개(IPO)다. 생성형 AI 모델 ‘클로드(Claude)’로 주목받는 앤트로픽의 상장이 이르면 9월 말에서 10월 초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해 “내달 7일 이후 투자설명서(프리스펙터스)가 공개되고, 같은 달 중순께 잠재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대상 기업설명회(IR)가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앤트로픽의 기업가치로 1조5천억 달러(약 2천70조원) 수준이 거론된다. 사상 최대 규모 IPO였던 스페이스X의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1조7천500억 달러)에 버금가는 ‘메가딜’이다. 이처럼 초대형 IPO를 앞두고는 청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현금 확보 수요가 커지면서 한두 달 전부터 기존 주도주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통상적으로 나타난다. 지난 6월 스페이스X 상장 전에도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유동성이 빠르게 이탈하는 양상이 관측된 바 있다.
결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공격적인 자사주 매입은 코스피 하방을 단단히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미 국채금리 급등과 초대형 AI IPO 대기라는 대외 변수 속에서 지수의 본격적인 상단 돌파는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수급과 글로벌 매크로 변수, 그리고 두 회사의 자사주 매입 속도와 소각 정책을 동시에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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