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실종된 장미란씨(37)로 추정되는 시신이 24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인근에서 발견됐다. 첫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104일 만이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 기간 진행돼 신원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감식을 통해 신원과 사인을 확인할 방침이다. 담당 경찰관의 "연락이 닿았다"는 허위 보고 한마디에 초동 수색이 멈춘 뒤 그동안 벌어진 일을 정리했다.
24일 숨진 채 발견된 장미란씨. / 가족 제공
장씨가 종적을 감춘 것은 지난 5월 12일 밤이다. 오후 10시쯤 제주시 한림읍에서 장기 투숙하던 숙소를 나섰선 장씨는 인근 폐쇄회로(CC)TV에 마지막 모습이 찍힌 뒤 행방이 끊겼다. 실종 당시 장씨는 긴 생머리에 키 158㎝가량의 마른 체형이었다. 금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카드 사용, 병원 이용, 도외 이동 등 이른바 생활반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함께 지내던 장씨 연인은 사흘 뒤인 5월 15일 오후 6시 43분쯤 "장씨가 귀가하지 않는다"며 제주서부경찰서에 112 신고를 했다. 신고 직후 경찰은 장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장씨가 한림항 방면으로 이동한 정황을 파악했다. 한림파출소 직원들도 한림항에 출동해 초동 수색에 나섰다. 실종 직후 곧바로 위치 추적과 현장 수색이 이뤄진 것이다.
문제는 그날 밤 벌어졌다. 신고 당시 야간 근무자였던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 경장(30대)이 신고 접수 약 2시간 30분 만인 오후 9시 16분쯤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A 경장은 신고자에게 "장씨와 연락이 닿았지만 본인이 위치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장씨 가족에게도 "연락이 돼 안전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안내했다. A 경장은 같은 날 경찰 실종자 관리 시스템인 '실종자 프로파일링'에서 장씨 관련 관리목록 자료를 삭제했다.
24일오전 제주시 한림읍 모 초등학교 인근 야자수밭에서 실종된 장미란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그러나 이후 경찰 조사에서 A 경장과 장씨 사이에는 통화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종자 종결 처리 전에는 대면 확인이 원칙이지만 이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A 경장이 실제로는 장씨와 연락하지 않은 채 연락이 된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A 경장의 종결 보고로 한림항에 출동했던 직원들은 모두 철수했고, 수색은 그대로 중단됐다. 실종자를 찾을 수 있었던 초기 골든타임이 담당 경찰관의 보고 한 줄에 사라진 셈이다.
장씨의 휴대전화는 이튿날인 5월 16일 오전 9시 44분쯤 제주시 한림항 인근에서 전원이 꺼졌다. 경찰은 이 지점을 장씨의 마지막 위치로 추정했다. 이후 휴대전화는 단 한 번도 다시 켜지지 않았다.
장씨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자 연인은 지난달 17일 다시 경찰에 신고를 시도했다. 하지만 '신고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는 취지의 A 경장 기록이 남아 있어 신고 접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틀 뒤인 지난달 19일 장씨의 사촌 동생이 서울에서 실종 신고를 접수하면서 재수사의 물꼬가 트였다. 사촌 동생은 "휴대전화가 단 한 번도 켜지지 않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신고했다"고 했다.
24일오전 제주시 한림읍 모 초등학교 인근 야자수밭에서 실종된 장미란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재신고 이후에도 대응은 더뎠다. 제주서부경찰서는 재신고를 받고도 성인의 단순 가출 가능성을 두고 3주가량 통상적인 생활반응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신고 접수 83일 만인 지난 8일에야 제주경찰청과 통합 수사에 들어갔다. 그사이 장씨의 행적을 밝힐 열쇠였던 주변 CCTV 상당수는 저장 기간이 지나 삭제된 뒤였다. 핵심 단서가 사라진 채 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A 경장을 둘러싼 의혹은 실종 사건에 그치지 않았다. A 경장은 이 사건과 별개로 지난달 22일 자신이 근무하던 경찰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조사를 받았다. 이 일로 지난달 11일 직위해제됐다. A 경장은 2023년에도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돼 내부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경찰청은 지난 14일 A 경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A 경장이 장씨와 통화하지 않았는데도 연락이 된 것처럼 허위 보고해 사건을 종결했다고 보고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장씨의 상태를 사망자를 뜻하는 '변사'로 임의 입력한 정황도 확인했다. 실종자를 사실상 사망자로 처리해 시스템에서 지워버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5월 실종된 장미란 씨(37)의 사건을 허위 종결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A 경장이 2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체포적부심 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뉴스1
경찰은 지난 20일 뒤늦게 대규모 집중 수색에 나섰다. 경찰은 오는 26일까지 경찰과 해경, 바다환경지킴이 등 하루 평균 140여명을 동원해 장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가 나온 한림항 일대를 집중 수색하기로 했다. 수색에는 헬기와 드론, 체취증거견, 잠수부, 경비정, 연안구조정 등이 총동원됐다. 경찰은 장씨가 머물던 한림읍 해안가와 인근 해상, 농로, 예상 이동 경로 등을 살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A 경장의 허위 종결이 장씨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주경찰청은 지난 21일 A 경장이 지난 7월 2일 종결 처리했던 60대 남성 B씨의 실종 사건도 장씨 사례와 같은 방식으로 허위 종결된 사실을 확인했다. A 경장은 B씨 가족에게도 "실종자와 연락이 닿았지만 경찰관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으며 위치도 가족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고 허위로 설명한 뒤 사건을 마무리했다. B씨 가족은 장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뒤늦게 재신고를 했다.
경찰은 지난 22일 실종자 수색 중 제주 모처에서 B씨 시신을 발견했다. B씨는 최초 신고 51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B씨 가족은 "사람이 백골이 될 때까지 경찰은 뭐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경찰의 말을 믿고 기다렸던 유족은 결국 시신으로 가족을 마주해야 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3시 28분쯤 제주시 모처에서 A 경장을 긴급체포했다. 적용된 혐의는 직무유기, 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다.
A 경장은 지난 23일 제주지법에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했다. 체포적부심은 수사기관에 붙잡힌 피의자가 체포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법원에서 다시 따져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다. 같은 날 제주경찰청은 사건이 장기화하자 장씨가 해외로 이동했을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경찰청에 장씨에 대한 인터폴 황색수배를 요청했다. 황색수배는 실종자나 신원미상자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폴 회원국 경찰에 협조를 구하는 국제 수배다. 등록까지는 통상 수일이 걸리지만 경찰청은 사안의 위급성을 고려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제주경찰청을 찾아 사건을 점검했다.
24일오전 제주시 한림읍 모 초등학교 인근 야자수밭에서 실종된 장미란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제주경찰청은 이날 오전 5시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A 경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A 경장이 실종 사건을 허위로 종결하고 관련 기록을 임의로 처리한 경위 등을 고려해 신병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약 6시간 뒤인 이날 오전 10시 46분쯤 제주경찰청은 제주시 한림읍 인근에서 합동 수색을 벌이던 중 장씨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지점은 장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한림읍 숙소에서 약 1㎞,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진 곳이다. 시신은 검정 후드 집업과 카키색 운동복 바지, 흰색 나이키 슬리퍼 등 실종 당시 장씨의 옷차림과 비슷했고, 현장에서 옷가지 등 유류품도 함께 나왔다.
A 경장에 대한 체포적부심 심사는 이날 오전 11시 제주지법에서 열렸다. 경찰은 감식을 통해 발견된 시신의 신원과 사인을 확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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