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실종된 지 104일 만에 발견된 장미란씨 시신을 둘러싸고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담당 경찰관이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정황이 드러난 데 이어, 같은 경찰관이 지난해 3월부터 혼자 종결 처리한 실종 신고가 2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일고 있다. 추가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경찰은 관련 사건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지난 5월 실종된 장미란 씨 사건을 허위 종결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A 경장이 24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체포적부심 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 뉴스1
숙소서 500m 거리 야자수 숲서 발견
제주경찰청은 24일 오전 10시46분쯤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합동 수색을 벌이던 경찰관이 야자수 농장 인근 숲속에서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장씨가 장기 투숙했던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직선거리로는 5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육안으로 외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해졌다. 경찰은 시신 주변에서 장씨가 실종 당시 소지했던 휴대전화와 입었던 옷, 일부 소지품이 함께 발견된 점을 근거로 장씨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신분증이나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신원과 사망 원인, 범죄 관련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과 부검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전했다.
장씨는 지난 5월 12일 오후 10시15분쯤 제주시 한림읍의 숙소를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전화는 이틀 뒤인 16일 오전 9시44분쯤 한림항 일대에서 마지막으로 꺼졌다. 가족은 5월 15일 오후 6시43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실종 이후 카드 결제나 출입국 등 생활 반응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통화해서 안전 확인"이라더니… 통화 기록 자체가 없었다
장씨 사건이 논란이 된 건 담당 경찰관의 처리 방식 때문이다.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경장은 장씨와 연락해 안전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신고자인 가족에게 설명한 뒤 사건을 자체 종결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A경장이 장씨와 실제 통화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고, 장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서도 실종 이후 통화 기록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A경장은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입력된 장씨 사건 기록을 정상적인 해제 절차 없이 삭제한 혐의도 받고 있다.
24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모 초등학교 인근 야자수밭에서 실종된 장미란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담당 경찰이 실종 신고를 허위 종결해 논란이 되고 있다. / 뉴스1
제주경찰청은 24일 오전 5시쯤 A경장에 대해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 위작 및 위작공전자기록행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신청 사유로 제시됐다. 제주지검은 이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고 전담반을 편성했다. 앞서 지난 14일 경찰은 A경장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고, A경장은 경찰서 내 성범죄 혐의로 지난 11일 직위해제된 상태였다.
지난해 3월부터 200여건 '셀프 종결'
장씨 사건과 별개로 A경장의 실종 신고 처리 방식 전반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A경장은 지난해 3월 제주서부서 실종팀 근무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200여건의 실종신고를 종결했는데, 대부분이 이른바 셀프 종결 방식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조사됐다. 셀프 종결은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이 별도 확인이나 충분한 보고 절차 없이 스스로 사건을 끝내는 것을 뜻한다. 경찰은 A경장이 신고자에게 사실과 다르게 설명한 뒤 사건을 허위로 종결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실종자와 신고자에게 직접 연락해 당시 처리 경위와 실제 소재 확인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중이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A경장이 종결한 실종신고 200여건을 아직 전부 확인하지 못했으며 하나씩 추려가면서 허위종결로 의심되는 사례를 파악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허위종결로 추정되는 사건이 몇 건인지는 확인해줄 수 없으며, 기존 언론보도로 알려진 3건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실종 사건이 시스템상 담당자 혼자 종결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원칙적으로는 보고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단순히 혼자 종결했다는 이유만으로 허위 종결로 단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종 허위 종결' 경찰관…'묵묵부답' / 뉴스1
60대 남성도 같은 수법... 51일 만에 백골로 발견
A경장의 허위 종결 의혹은 장씨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A경장은 지난 7월 2일 자신이 담당한 60대 남성 실종 사건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사건을 자체 종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남성은 실종 신고 51일 만인 지난 22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 백골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건 모두 A경장이 야간 근무 중 신고를 접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간 당직 때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은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 입력과 별도로 야간 당직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다음 날 밤사이 발생한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절차로, 당직자 1명이 근무하더라도 사건을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직자가 일지를 허위로 작성해도 이를 곧바로 걸러낼 장치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간에 접수된 실종 사건이 경찰관 개인 판단에 따라 부실하게 처리될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성인 실종 신고, 아동의 두 배 넘는데 못 찾은 인원은 5배
제주 지역의 성인 실종 신고는 매년 수백건씩 접수된다. 도내 만 18세 이상 성인 실종 신고는 2023년 944건, 2024년 814건, 2025년 786건이었고 올해도 지난달 말까지 370건이 접수돼 2023년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 2914건에 이른다. 같은 기간 18세 미만 아동 실종 신고 1341건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실종 신고 이후 현재까지 찾지 못한 인원 역시 성인이 15명으로, 아동 3명의 5배에 달한다.
24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모 초등학교 인근 야자수밭에서 실종된 장미란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일대를 통제하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 뉴스1
유가족들 "우리 가족 신고도 제대로 처리됐나" 불안
유가족들은 경찰이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하지 않고 수색을 이어갔다면 실종자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허위 종결된 실종자 가운데 실제 사망한 채 발견된 사례까지 나오면서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장씨 사건 보도 이후 경찰서에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가족 실종 신고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발견된 시신이 장씨가 머물던 숙소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오면서 실종 초기 수색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사건이 허위로 종결되지 않았다면 소재를 더 일찍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실종자 대응 체계 전반에 대한 책임론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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