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 정상 탈환이라는 대업 뒤에 뜻밖의 숫자가 따라붙었다. ‘0원’이다.
숨 고르는 안세영 / 뉴스1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삼성생명·세계랭킹 1위)이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지만 대회가 지급하는 공식 상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배드민턴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상금은 없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다만 세계선수권 자체의 공식 상금과 소속팀·협회·후원사가 별도로 지급하는 포상금 및 인센티브는 구분해야 한다.
야마구치 49분 만에 제압…3년 만에 되찾은 왕좌
안세영은 23일 한국시간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아레나에서 열린 2026 BWF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세계 2위)를 게임스코어 2-0으로 완파했다.
소요 시간은 불과 49분이었다. 안세영은 1게임을 21-17로 따낸 데 이어 2게임까지 21-14로 마무리하며 세계 1·2위 맞대결을 일방적인 승리로 장식했다. 안세영이 세계선수권 여자단식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23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단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3년 만에 다시 세계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다.
같은 날 여자복식에서는 백하나-이소희 조가 우승했다. 하지만 두 선수 역시 안세영과 마찬가지로 세계선수권 공식 상금은 받지 못한다.
최고 권위 대회인데 상금은 ‘0원’…이유는?
안세영이 지난해 9월 28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코리아오픈(슈퍼 500)' 여자단식 일본 야마구치 아카네를 상대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 / 뉴스1
세계선수권에 상금이 없는 이유는 일반적인 BWF 월드투어 대회와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엑스포츠뉴스에 따르면, 인도 매체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대회를 앞둔 지난 13일 “BWF 세계선수권에는 상금이 없다”며 “세계선수권은 올림픽, 토마스컵, 우버컵과 같은 Grade 1 메이저 이벤트로 분류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월드투어와 달리 국가대표로 출전해 세계 챔피언 타이틀과 국가의 명예를 놓고 겨루는 대회라는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종목의 세계선수권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 개인종목 우승자는 7만 달러, 약 9705만 원을 받았다. 세계수영선수권 경영 개인종목 우승 상금도 2만 달러, 약 2773만 원이었다.
반면 배드민턴 세계선수권은 종목을 대표하는 최고 권위의 무대임에도 BWF가 지급하는 공식 상금이 없다. 금메달과 세계 챔피언이라는 명예가 대회의 가장 큰 보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안세영에게 어떠한 금전적 보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속팀 삼성생명이나 대한배드민턴협회, 후원사 등이 지급하는 포상금과 인센티브는 대회 공식 상금과 별개다.
돈 대신 랭킹포인트 1만4500점…올림픽과 같은 최고점
세계선수권이 상금 대신 제공하는 실질적인 보상은 막대한 랭킹 포인트다. 여자단식 우승을 차지한 안세영은 랭킹 포인트 1만 4500점을 획득했다. 올림픽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점수와 함께 배드민턴 국제대회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이다.
배드민턴 '퀸' 안세영, 세계선수권 정상 탈환 / 뉴스1
BWF 월드투어의 최상위급인 슈퍼 1000 대회 우승 포인트는 최대 1만 3500점이다. 매년 12월 열리는 ‘왕중왕전’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자에게도 1만 4000점이 주어진다. 세계선수권 우승 점수가 이들 대회보다 각각 1000점과 500점 많다. 랭킹 포인트는 단순히 세계 순위를 정하는 숫자가 아니다. 주요 국제대회의 시드 배정과 올림픽·세계선수권 출전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세영은 지난 18일 발표된 BWF 여자단식 세계랭킹에서 97주 연속 1위를 지켰다. 세계선수권 결과 반영 전 점수는 11만 7787점으로, 2위 야마구치의 10만 4576점보다 1만 3211점 많다. 이번 세계선수권 우승 점수가 반영되면 기존 집계에 포함됐던 지난해 중국 마스터즈 우승 점수 1만 1000점이 1만 4500점으로 대체돼 총점은 12만 1287점이 될 전망이다. 100주 연속 세계 1위는 물론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정상 자리를 지킬 발판을 마련했다.
발 통증 딛고 돌아온 복귀전…33차례 랠리로 찍은 마침표
이번 우승이 더욱 값진 이유는 안세영의 복귀전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지난달 일본 오픈에서 왼쪽 발 통증을 호소하며 거침없던 우승 행진을 잠시 멈춰야 했다. 약 한 달간 코트를 떠났다가 돌아온 첫 대회가 세계선수권이었다.
결승전은 세계 1·2위의 대결답게 초반부터 빠르고 공격적인 랠리로 전개됐다. 안세영은 1게임 7-7에서 연속 득점으로 흐름을 가져온 뒤 11-8로 인터벌을 맞았다. 17-17로 팽팽히 맞선 승부처에서는 4점을 연달아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2게임에서는 야마구치가 먼저 공세를 높였다. 그러나 안세영은 5-6에서 전세를 뒤집었고, 7-7부터 다시 4점을 몰아치며 11-7로 달아났다. 야마구치가 11-10까지 따라붙었지만 안세영은 곧바로 격차를 16-11까지 벌렸다.
승부의 백미는 셔틀콕이 33차례 오간 장기 랠리였다. 야마구치의 맹공을 끈질긴 수비로 받아낸 안세영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드롭샷으로 포인트를 완성했다. 마지막 매치 포인트에서는 야마구치의 범실을 끌어내며 49분간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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