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비트코인이 나흘사이 15%나 오르며 한때 7만50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16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유입되 데다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백악관과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가상자산 규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기관 자금 유입과 미국의 정책 변화가 맞물리면서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렸다. 선물에 집중됐던 수요가 현물로 확산하면서 이번 반등을 공매도 포지션 청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업비트에 따르면, 오후 3시 34분 기준 비트코인은 7만5000달러대에서 거래됐다. 17일 6만4000달러대였던 비트코인은 19일 6만9000달러를 넘어섰으며 20일에는 7만3000달러선을 돌파했다. 나흘만에 1만달러 넘게 오르며 8월 초부터 이어진 하락분을 만회했다.
▲ ETF 나흘간 16억달러…현물 수요도 회복
영국 자산운용 데이터 업체 파사이드 인베스터스에 따르면,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에는 △17일 2억9750만달러 △18일 1억8930만달러 △19일 5억1720만달러 △20일 6억630만달러가 순유입됐다. 나흘간 순유입액은 16억1030만달러다. 20일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에만 5억300만달러가 들어왔다.
ETF로 자금이 돌아오면서 현물시장 수급도 달라졌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과 무기한 선물 수요는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가 이후 처음으로 동시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전 반등에서는 선물시장 레버리지 거래가 가격을 끌어올려도 현물 매수가 뒤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ETF를 통한 기관 자금과 현물 매수가 함께 유입됐다.
가격이 급등하자 하락에 베팅했던 공매도 포지션도 대거 청산됐다. 강제 청산에 따른 매수 주문이 이어지며 상승폭을 키웠다. 알렉스 쿱시케비치 FxPro 수석 시장분석가는 “수주간 좁은 범위에서 거래된 뒤 공매도 포지션 청산이 랠리에 불을 붙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청산 이후에도 ETF와 현물 자금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파생상품 중심의 단기 반등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30년물 19년 만의 최고…미 재무부 바이백 확대
비트코인 수급이 살아난 가운데 미국 국채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미 재무부는 19일, 10~20년물과 20~30년물 국채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한 바이백 규모를 건당 최대 20억달러에서 최소 4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새 기준은 내달 9일부터 11월 4일까지 적용된다.
미 30년물 국채 금리는 18일 5.337%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무부의 바이백 확대 발표 뒤에는 한때 5.187%까지 내려갔다. 장기금리가 하락하면서 달러도 약세를 나타냈다.
다만 32조달러 규모의 미 국채시장과 비교하면 바이백 확대만으로 장기채 수급 부담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 국가부채는 이제 40조달러를 넘어섰으며 인플레이션 경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에 나선 미국 빅테크의 회사채 발행까지 늘면서 장기 자금을 둘러싼 경쟁도 거세졌다.
아마존·알파벳·메타·오라클이 지난달 7일까지 발행한 채권은 약 1940억달러로 지난해 연간 발행액보다 79% 늘었다.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 자금을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하면서 미 국채와 우량 회사채가 장기 투자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가 짙어졌다.
금리 인상 기류가 저하되면서 달러 약세 속에 금과 비트코인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금은 이번 주 3% 넘게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국채 금리가 다시 반등한 뒤에도 강세를 이어갔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미국의 재정 부담과 달러 약세가 겹칠 때 금과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부채가 늘고 통화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된 비트코인의 희소성이 투자 근거로 부각되는 방식이다.
▲ 백악관·CFTC 가세…클래리티법 내달 상원 표결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백악관에서 가상자산·금융업계 경영진을 만나 디지털자산 시장구조법인 클래리티법 처리를 의회에 촉구했다.
CFTC는 다음 날 워싱턴에서 혁신자문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가상자산과 AI, 예측시장 등을 논의했다. 마이클 셀리그 CFTC 위원장은 회의에 앞서 “미국은 오랫동안 금융 혁신의 세계적 중심지였다”며 새로운 금융상품과 기술 변화에 맞춘 규제 논의를 강조했다. CFTC는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을 주요 혁신 분야로 두고 관련 규제와 정책을 정비하고 있다.
클래리티법은 다음 달 15일 상원의 클로처 표결을 앞두고 있다. 가결에는 60표가 필요하다. 클로처를 통과해도 법안이 최종 가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의 가상자산 사업 이해충돌과 스테이블코인 보상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다.
미 재무부와 가상자산 시장의 연결고리는 스테이블코인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약 3000억달러인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30년까지 10배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테이블코인과 머니마켓펀드가 성장하면 미 단기 국채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재무부의 판단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자산의 상당 부분을 미 국채로 보유한다.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단기 국채의 새로운 수요처도 늘어난다. 미국이 가상자산 제도 정비와 국채시장 수요 기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가상자산 관계자는 “ETF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과 현물 매수가 계속 이어지는지가 이번 랠리의 지속 여부를 가를 것이다”며 “장기금리와 미국의 정책 변화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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