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척박한 유배지에서 예향(藝鄕)으로 피어난 섬 진도. 그곳의 들과 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켜켜이 쌓인 노래가 거문고 여섯 줄을 타고 흐른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 이선화가 29일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에서 ‘이선화의 진도·琴·歌-거문고로 듣는 진도의 노래’를 펼친다. 2026 국립남도국악원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 우수작품 공모 선정작이다. 지역 민요의 나열을 거부하고, 한 지역의 역사와 생사관을 거문고의 언어로 해부하는 치밀한 음악 다큐멘터리다.
진도는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이 증명하듯 권력에서 밀려난 사대부들의 유배 문화와 토속 신앙이 결합해 독특한 지층을 형성한 곳이다. 첫 갈무리 ‘유배와 풍류의 땅’은 선비의 수신(修身) 도구였던 거문고가 어떻게 민중의 언어를 품었는지 ‘허튼가락’으로 짚어낸다. 거문고산조는 백낙준에서 태동해 박석기, 신쾌동으로 이어지며 정악의 절제미와 민속악의 즉흥성을 교차시켰다.
이선화는 서울대 음악학 박사이자 국가무형유산 전수자다. 지난해 국립국악원 정기공연 ‘우리 시대 명인들의 新 산조’에서 백낙준 산조를, 올해 4월 독주회 ‘가즌會上’에서 상령산부터 천년만세까지 장대한 정악을 횡단했다. 정악과 민속악을 아우른 그의 궤적은 특정 산조 유파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진도의 유배 문화와 거문고의 자유로운 선율 감각을 직조하는 든든한 뼈대가 된다.
둘째 갈무리 ‘인간 삶의 노래’는 둥노래, 길쌈노래, 산타령, 아리랑을 묶었다. 농경과 어업이 교차하는 진도의 노동 현장에서 탄생한 소리다. 메기고 받는 창법은 고된 피로를 덜고 공동체의 박자를 묶는 생존의 리듬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순서의 명칭이 ‘남도잡가Ⅰ’이라는 사실이다. 국악사전 상 남도잡가는 보렴, 화초사거리 등 전문 소리꾼의 공연용 모음곡을 뜻한다. 기획진은 진도 생활권의 노동요와 유희요를 하나의 기획 아래 유연하게 통합해 지역의 맥락을 살려냈다. 노동 현장의 소리가 거문고 선율, 타악과 교차하며 세련된 무대 언어로 치환된다.
셋째 ‘그리움과 한’은 흥타령과 육자배기가 중심이다. 이른바 ‘육자배기토리’로 불리는 굵은 떨림, 평평한 중간음, 꺾어 내리는 고음의 시김새가 극대화된다. 이선화는 성대가 토해내는 끈적한 슬픔을 술대의 강한 타격과 왼손의 치열한 농현으로 복사한다.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로 완벽히 똑같이 낼 수는 없지만, 거문고 특유의 묵직한 저음과 진동을 극대화해 성악의 애원성을 훌륭하게 묘사한다. 한(恨)이 음을 떠는 방식에 남는다는 남도 음악의 미학을 기악의 물성으로 증명하는 치열한 실험이다.
마지막 ‘삶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삶’은 장례의식요 ‘진도만가’와 천도 의례 ‘진도씻김굿’으로 채워진다. 진도만가는 1987년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지산면 인지리 향두꾼들이 애소리, 다리천근 등의 곡목을 북과 장구, 피리에 맞춰 부르던 소리다. 1980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진도씻김굿은 이승의 한을 씻어내는 굿판이다. 상가에서 유족을 위로하는 유희극 '다시래기'가 존재함에도 굳이 만가와 씻김굿을 넷째 악장에 배치한 것은, 죽음을 단절로 보지 않고 산 자를 달래며 다시 삶의 궤도로 회귀시키는 진도 고유의 생사관을 투영하기 위함이다.
명인 유인상의 연출 아래 유정임, 김나영, 이소영 등 정상급 소리꾼들이 합세하고 장단, 아쟁, 대금 연주진이 앙상블을 이룬다. 거문고라는 단일 악기의 고립을 탈피하고 타악, 관악, 성악을 교차시킨 이 90분의 여정은 진도의 시간을 꿰뚫는 가장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기록 매체가 될 것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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