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불봉 걸터앉은
고송(古松)의 푸른 장삼
샛별의 눈빛으로
고요한 깃을 씻고
그 선승(禪僧)
이슬 한 방울
아침 공양 물리신다.
Ⅱ
암벽에 잠든 미륵
언제 깨어날까
명주 같은 달빛이
억겁 스쳐 닳아질까
고송(孤松)은
정든 뿌리로
바위 속을 살핀다.
Ⅲ
헛디딘 고송(孤松) 뿌리
하늘 벽에 매달리어
밤 눈 밝은 부엉이 아슬아슬 지켜보다
거꾸로
가부좌 튼 참선
땀방울이
청정하다.
< 시작노트 >
젊은 시적 마음의 갈애(渴愛)가 심해지면 계룡산을 찾아가곤 하였다.
한번은 남선 폭포 쪽 골짜기로 올라가 삼불봉 방향의 바윗등을 타고 등반을 하는데 바위벽이 한 고비 오르면 능선에 닿을 것 같은데 오르면 또 벽이고, 오르면 또 벽이 나와 두려움 마저 들었지만 도저히 되돌아 내려올 수는 없었다. 암벽에 기대어 살아가는 해묵은 소나무를 만나면 너무나 반갑고 위로가 되었다.
그 기암절벽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옹이진 소나무의 나이가 몇 백 년이 될 지는 가늠할 수 없었으며 마치 고승(高僧?古僧) 같이 느껴졌다. 면벽하여 깊은 묵언 수행중이라 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푸른 잎으로 장삼을 날리며 평안한 모습이었다. 맑고 맑은 샛별의 눈짓으로 가슴속의 종을 울리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온몸에 맺힌 이슬로 넉넉한 아침공양을 하고는 다시 빛이 되어 보살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설한풍에도 아랑곳 않고, 뇌성번개나 태풍에도 깜짝하지 않고 해탈에 든 모습이었다.
바위 속에는 미륵보살이 살고 있다. 고송은 뿌리를 바위 속으로 들어가 마치 의사가 청진기를 들고 진단을 하듯이 미륵의 안부를 묻고 경배를 드리고 있는 듯하였다.
또 다른 소나무는 뿌리만 박아놓고 마치 곡예사처럼 거꾸로 매달려 위태로워 보였지만 청정한 땀을 흘리며 깊은 묵정에 들어 참선수행 중이었다. 밤이면 아마도 밤눈 밝은 부엉이도 궁금해서 돌아볼 것이다. 우주 만물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서로 교감하면서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간다. 참 나는 그 은신처를 바꾸어 낳고 죽는다 하지만 진정 낳고 죽음은 없다 할 것이다. 인간이든 축생이든 초목이나 물고기든 잠시 머물러 쉬도록 빌려 쓰는 존재일 뿐이다. 참 나를 깨우치면 누구나 해탈에 이른다고 한다.
박헌오/한국시조협회 5대 이사장,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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