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차트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리센느(RESCENE), 그리고 또 하나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재결합한 아이오아이(I.O.I)의 귀환이었죠! 5월 19일 발표한 미니 3집 타이틀곡 ‘갑자기’는 레트로 댄스팝과 시티팝이라는 최근 주류를 살짝 비켜간 감성에도 불구, 9년만의 재결합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그 어렵다는 멜론 TOP 100 1위를 해냅니다. 한창 어렸던 소녀들을 처음 만난 게 어떻게 벌써 10년이나 됐나 싶다가도 또 ‘프로듀스 101’ 이후 불었던 서바이벌 프로그램 열풍, 그로 인해 탄생한 수많은 그룹과 파생 그룹 등 ‘프듀’가 K팝 씬에 미친 여파를 돌아보면 10년밖에 안 됐나? 싶기도 합니다. 그룹 활동 기간이 정해져있는 서바이벌 그룹을 좋아하는 것은 ‘예정된’ 끝을 향해 그 기간 동안 팬도, 아티스트도 최선을 다해 함께 달려가는 일이죠. 팀 결성부터 관여한 만큼 한층 각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팬활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끝이 찾아올지 알 수 없어요.
1세대와 3세대 덕질은 얼마나 달랐을까
옛날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1999년 데뷔한 클릭비는 제가 가장 처음으로 ‘덕질’했던 팀입니다. 음악방송을 보다가 ‘백전무패’ 무대 위 유호석 씨와 눈이 마주친 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죠. 콘서트를 가기 위해 처음으로 은행에 가서 무통장입금이라는 것을 해보고, 혼자 서울에 가고, 멤버 싸인 폴라로이드를 받기 위해 잡지사에 정성어린 독자 엽서를 보내는 틈틈이 일주일에 두 번씩 팬레터도 쓰는 것은 물론 ‘러브장’도 썼습니다. 한 번 송출된 영상은 다시 볼 수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오빠들이 나온 모든 방송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했고, 개인 홈페이지도 운영했어요. 라디오가 소녀들의 감수성과 여가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기, 지역 방송국에는 인기 라디오의 공개방송이라는 게 종종 열렸는데요. 제가 살던 지역에서 공개방송이 열렸던 날 처음으로 클락비를 실제로 만났죠. 이들이 당시 모델이었던 의류 브랜드 행사 사인회가 열렸던 날은 오전에 조퇴를 하고 쇼핑몰 앞에 앉아있기도 했고요. 생각해 보면 상품 구매를 하지도 않았는데 선착순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니, 인심이 참 좋았던 시기입니다. 물론 이는 클릭비가 당시 ‘g.o.d’나 ‘신화’ 같은 초 인기 그룹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 수도 있지만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클릭비를 왜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끝은 상당히 가물가물합니다. 우선 제가 좋아했던 호석 오빠가 팀을 탈퇴하고 유학을 가더니 갑작스럽게 락밴드가 아닌 4인조 댄스 그룹이 되어 컴백을 했고요…. 뉴욕에서 재즈를 전공한 오빠는 에반(EVAN)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돌아왔지만 수염을 기르고 이별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감성까지 당시의 저는 사랑할 수 없었어요. (솔로 1집은 아직도 갖고 있으니 이해해주길!)
그 다음 TV 속 화면과 눈이 마주쳤던 것은 2014년 ‘Danger’를 부르던 방탄소년단 진(JIN) 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덕통사고’라는 단어로 이런 현상을 종종 표현했죠. 막상 오랜만에 팬 활동을 다시 하려니 10여 년 만에 돌아온 K팝은 상당히 복잡해져있더라고요. 음악방송 녹화에 참여하려면 실물 CD와 응원봉인 아미밤, 음원 다운로드 내역서가 필요하다는데 그나마도 팬카페에서 정해진 시간에 신청 댓글을 재빨리 달아 선착순 내에 들어야 했고(댓림픽), 팬 사인회는 특정 기간 동안 정해진 음반사 매장에서 앨범을 사서 당첨되어야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 상당히 비슷한 시스템이죠. 좋은 점도 물론 있었습니다. 멤버들이 직접 운영하는 트위터(X)와 블로그 일기, 팬들이 찍은 갖가지 직캠, 소속사에서 풀어주는 비하인드 모습이 올라오는 공식 유튜브 채널, 거기에 지금 위버스 라이브의 전신이 된 브이앱까지! 방탄소년단은 SNS 소통을 특히 활발하게 했고, 발빠르게 자컨을 만든 팀이기에 실제로 보러 가지 않아도 매일매일 즐길 거리가 넘쳐났습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요… 중학생에서 어엿한 직장인이된 만큼 싱가폴, 홍콩, 오사카 등 해외를 처음으로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덕질도 기간이 엄청나게 길지는 않았어요. 팀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2016년, ‘화양연화 ON STAGE : EPILOGUE’ 첫째날 공연을 보는데 문득 “아 이제 됐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팀은 이제 내가 굳이 응원을 더 안 해도 더 잘될 것이라는 생각. 지금은 팬덤에서 ‘완덕’이라고 지칭하는 감정이죠. 당시에는 그런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요.
아티스트와 같이 나이 들 수 있을까?
오빠들이 팬덤을 명백히 배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먼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은 팬들의 마음입니다. 저 또한 클릭비와 방탄소년단 사이 십 수년은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아티스트를 좋아했습니다. 개중에는 밴드나 해외 가수도 있었죠. 가장 여러 번 공연을 본 건 아무래도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NCT지만 스스로 ‘시즈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보이넥스트도어를 훨씬 열심히 파고 들었던 시기가 있고, 멤버십 선예매라는 게 생긴 뒤에는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앞서 말한 팀들은 물론이고 세븐틴, 오마이걸, 피원하모니, 투어스, 앤팀, 에스파 등 얼마나 많은 위버스 멤버십에 동시에 가입했었는지 몰라요. 누군가는 소위 ‘덕질’이 제일 재미있다는 2~3년 차 즈음 슬그머니 입덕해 ‘최애’ 팀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저를 ‘K팝 즐겜러’라고 부르지만 이는 콤플렉스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한 팀을 전적으로 응원하는 것은 어떤 마음일지, 그렇게 아티스트랑 쌓인 유대감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거든요. 소녀시대의 대표 팬튜브인 ‘소녀시대연구소’ 운영자나, 얼마전 SM을 떠나 처음으로 팬미팅을 연 데뷔 26년차 보아를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은 서로 어떤 마음일까요? 레드벨벳과 러비들은요? 업무 상 K팝 산업을 팔로업하는 게 일종의 당위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25년 전 좋아했던 오빠도 스무 살이었고, 지금 응원하는 멤버도 스무 살이라면 뭔가 머쓱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뜻밖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클릭비가 올해 8월, 11년만에 재결합 콘서트를 열겠다고 한 것이죠. 2015년에 신곡을 발표하며 잠시 완전체 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결국 단발성으로 끝났고, god를 제외하면 201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H.O.T. 와 젝스키스 같은 최정상 팀들의 완전체 활동 또한 지속성 없이 일정 부분 상흔 속에 끝난 가운데, 클릭비의 재결합 콘서트는 정말 뜻밖의 소식으로 느껴졌어요. 심지어 공연명은 ‘CLICK-B RE:CLICK (한여름밤의 꿈 Vol.2)’. 무려 25년 전인 2001년, 제 생애 첫 K팝 콘서트였던 클릭비의 콘서트 ‘A Midsummer Night’s Dream’을 소환하는 제목이었죠. 갈까말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둬야한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하지만 11년 전의 재결합과 달리 모든 멤버들이 40대가 된 이번 재결합은 무대 위 클릭비를 볼 수 있는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알았습니다. 오길 너무 잘했다는 걸요! 곡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노래는 자동으로 따라 부를 수 있었어요. 응원봉을 든 팬들의 떼창은 정말로 최근 갔던 코르티스나 보이넥스트도어의 공연 못지 않았고요. 1999년부터 2003년 활동기 때의 곡들로만 꽉 채워진 셋리스트로 총 세 시간을, 심지어 스탠딩으로 달렸습니다. 추억은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멤버들 각자가 겪었을 우여곡절은 물론이고 각기 다른 시간을 살다온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시간 한자리에 모일 정도로 강력한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엄청난 힘이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다소 치기 어린 선언처럼 들렸던 ‘백전무패(百戰無敗)‘의가사 “너 겁먹지 말고 일어나 세상 앞에서 너 두려워 울지마 너 모든걸 다 걸고 싸워. 한번 부딪혀 봐. 세상을 가져 봐”가 지금 들으니 얼마나 엄청난 독려처럼 느껴지던지요. 마치 ‘브라보 마이 라이프’나 ‘아빠 힘내세요’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들 20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뜨겁게 응원의 말을 건네주지 않으니까요. 이제는 ‘늙크크’라는 신조어를 쓰기에도 좀 머쓱한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대 위의 오빠들도, 그걸 보고 있는 우리도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늙지는’ 않았더군요. 무엇보다 두 번째 재결합 무대를 위해 멤버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게 느껴졌어요. 멤버들끼리 서로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도 뜻밖에 찡했고요.
사실 클릭비 뿐만이 아닙니다. 1세대 걸그룹인 ‘베이비 복스’는 데뷔 28주년을 맞이했던 작년 9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콘서트를 펼친 바 있습니다. 2002년 팀의 첫 콘서트를 열었던 그곳과 같은 장소에서요. S.E.S.의 바다 또한 최근 신곡 ‘Love Wave’를 발표하며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기도 했죠. K팝이 ‘가요’라고 불렸고, 산업의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잡기 이전에 데뷔한 그룹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금방 해체를 발표하거나, 전성기 이후 지속되기가 어려웠다면 앞으로는 멤버 변동은 있을지언정 10년, 20년 된 장수 그룹이 점점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8년 데뷔한 샤이니와 2009년 데뷔한 하이라이트(비스트)는 튼튼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팀이죠. 2PM(준케이, 닉쿤, 택연, 우영, 준호, 찬성)도 지난 8월 8, 9일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3년만의 공연을 펼쳤고, 2011년 데뷔한 B1A4(신우, 산들, 공찬)도 얼마전인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사흘간 KBS아레나에서 데뷔 15주년 단독 콘서트 ‘D-DAY’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방탄소년단, 세븐틴, 트와이스, 오마이걸 등 3세대 중에도 10주년을 넘긴 팀이 이미 많습니다.
올여름 뜻밖의 소식을 전했던 클릭비는 공연 말미 또 하나 예상치 못했던 소식을 전했습니다. 10월에 부산 콘서트가 있을 것이며, 본격적으로 ‘컴백’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추억을 불 태웠다고 생각한 순간 날아온 미래를 향한 약속이 짐짓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부산 공연에도 제 자리가 있다면 갈 것 같습니다. 당연히 예전처럼 열렬하게 좋아할 수는 없고, 1세대인 오빠들은 아직 공식 유튜브나 X 계정도 없이, 그나마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간간히 공지만 올라올 뿐이지만 이전에 흐지부지 사라졌던 마음의 끝을 다시 한번 응시해보고 싶어요. 일종의 동지애를 갖고 말이죠. 오래전 끝난 줄 알았던 것이 새로 시작했을 때, 그 끝에 어떤 게 있을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하기도 합니다.